<193> 18장 꿈꾸는 세상 [7]
(381) 18장 꿈꾸는 세상 <13>
집무실로 돌아온 서동수가 소파에 앉자 민혜영이 잠자코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러갔다.
지난번 비서실장 유병선을 시켜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제의를 청와대에 전하기는 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진전되었으니 청와대에서도 놀랐을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구내전화의 벨이 울렸다.
버튼을 누른 서동수는 민혜영의 목소리를 듣는다.
“청와대 비서실장님이십니다.”
“알았어, 받지.”
서동수가 전화기를 들었다.
“예, 서동수입니다.”
“서 회장님, 축하합니다.”
양용식이 대뜸 말했는데 목소리가 밝다.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백기현이를 우물 안에서 펄떡펄떡 뛰는 개구리로 만든 셈이지요.”
그러더니 양용식이 소리 내어 웃었다.
“대통령님이 뭐라고 하신 줄 압니까? 네 번 뛴 개구리라고 하셨습니다.”
백기현이 4선위원이다. 서동수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내용보다 두꺼비 같은 대통령이 모처럼 농담을 했다는 것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상황이 급진전되어서 자세하게 말씀 못 드렸습니다.”
서동수가 뒤늦게 해명했더니 양용식이 서둘러 말했다.
“그 정도 알려주셨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어쨌든 대단한 일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하지요.”
차츰 양용식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대통령께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에서도 벌써부터 환영 성명을 발표한다면서 법석입니다.”
“…….”
“야당은 공황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백기현은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매도되고 있는데 정치생명이 끝날 것 같습니다.
백기현 때문에 야당이 민족통일 기회에 동참하지 못할 분위기까지 되었으니까요.”
“…….”
“생명력이 강한 야당이라 털고 나서겠지요,
회장님의 사업에 동참할 것 같습니다.
거부하면 반통일 세력이 될 테니까요.”
“…….“
“제가 그랬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 안 드렸나?”
흥분해서 헷갈리는 것 같다.
서동수도 차츰 열이 오르는 바람에 누가 했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통화를 끝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민혜영과 임청이 같이 들어섰다.
둘 다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다. 먼저 임청이 말했다.
“한국당 대표님 전화입니다.”
서동수가 머리만 흔들었더니 임청이 잠자코 방을 나갔다.
“민족당 대표님이신데요.”
민혜영이 말했을 때도 서동수가 머리만 저었더니 다시 묻는다.
“내선 1번에 전(前) 부인 박서현 씨란 분이 찾으시는데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시선만 주었고 민혜영이 말을 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오전 10시 40분,
한국 시간으로는 11시 40분이 되겠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더니 민혜영은 몸을 돌렸다.
문이 닫쳤을 때 서동수는 전화기의 1번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미혜 아빠.”
박서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는 문득 인간은 갖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때 박서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그 사람, 좀 도와줄 수 없어요?”
(382) 18장 꿈꾸는 세상 <14>
서류를 읽고 유병선이 머리를 들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오후 5시 반, 탁자에 놓인 서류는 꽤 두툼했는데 표지에 붉은색 ‘극비’스탬프가 찍혀 있고
제목에는 붉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정영철과 박서현.’
남들이 보면 장관 청문회에 대비한 서류 같이도 보이겠지만 서동수의 전처 박서현과 재혼한
남편 정영철에 대한 신상보고서다.
유병선의 의뢰를 받은 ‘정보회사’가 만 하루 만에 보고서를 만들어 온 것이다.
어제 낮 12시 경이 되었을 때 유병선은 중국에 있는 서동수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서동수는 박서현, 정영철과의 관계를 짧게 설명해줬는데 몇 년 전 중국의 대동자동차에서
오더를 받도록 연결시켜 준 것까지 말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지시한 것이다.
“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당신한테 맡긴다.”
유병선의 시선이 다시 서류로 옮아갔다.
정영철은 부친한테서 물려받은 회사를 부도 내고 지금은 백수다.
한때는 잘살았겠지만 지금은 의정부의 28평 전세 아파트로 옮아간 후부터
넉 달이 넘도록 두문불출, 지금은 박서현이 편의점 알바를 뛰는 동안 집에서 애를 돌본다.
입맛을 다신 유병선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조사원이 기록한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좋은 편임. 아파트 안에서도 착한 남편,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음.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보임.”
“무슨 개뿔, 거머리 같은 족속들.”
이것은 유병선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그때 인터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유병선은 버튼을 눌렀다.
앞쪽 벽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실장님, 박서현 씨 부부가 오셨습니다.”
스피커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들어오시라고 해.”
말해놓고 나서 유병선은 문득 비서가 박서현의 이름을 앞세운 것을 떠올리자 길게 숨을 뱉었다.
그제야 마음을 굳힌 것이다. 곧 남녀가 들어섰는데 선남선녀다.
다만 박서현의 눈빛이 강했고 조금 여유가 있어 보일 뿐 닮은꼴이다.
박서현은 비서실장이 만나자고 한 것이 서동수의 배려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제 남편 정영철이 무안해지지 않도록 해주려는 배려다.
인사를 마치고 마주보며 앉았을 때 유병선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이 일을 저한테 맡기셨을 때 일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더니 상식적으로 처리하라는 말씀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유병선이 입을 꾹 다물었다.
숨을 다섯 번쯤 쉬었을 때 비서가 들어와 커피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다시 숨을 세 번쯤 쉬고 나서 마침내 박서현이 입을 열었다.
어느덧 얼굴이 굳어졌고 눈동자가 흐려졌다.
“다른 말씀은 없고요?”
“예, 없습니다.”
다시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세 번 숨을 뱉었을 때 박서현이 다시 물었다.
“그럼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유병선의 시선이 정영철에게로 옮아갔다.
“정 선생님 생각부터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정영철의 굳어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안 오는건데.”
“아니, 잠깐만요.”
그것을 본 박서현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여자가 되었다.
“아니, 나한테, 우리한테, 이렇게….”
박서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을 때 유병선이 벨을 눌렀다.
비서를 부르려는 것이다.
박서현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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