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18장 꿈꾸는 세상 [5]
(377) 18장 꿈꾸는 세상 <9>
“아, 서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국정수석 장경수는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응답했다.
서울은 지금 오후 7시다.
서동수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장경수가 물었다.
“연락받으셨군요?”
“예. 방금.”
“그 말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때서야 장경수가 잠깐 쉬었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도의상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저쪽에선 상관없다고 했지만요.”
“아아. 네.”
어쩐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대답이다.
그러나 서동수는 개의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오히려 터뜨린 것 같습니다. 믿을 사람이 못 되는 것 같군요.”
“본래 그런 의도로 회장님을 뵙자고 했던 것입니다.”
장경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을 때 서동수는 길에 숨을 뱉었다.
“그래서 제가 기자회견을 하려고 합니다.
언론사에 통보를 했으니까 모두 밝히겠습니다.”
“기자회견을 말입니까?”
놀란 듯 장경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떤 내용으로 말씀이죠?”
“모두 털어놓는 것이죠.”
핸드폰을 고쳐쥔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이 기회에 매듭을 짓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때 서동수가 잠깐 말을 멈췄다.
장경수는 당황한 모양이다.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죠. 제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피하겠습니까?”
“…….”
“그럼 다시 연락드리지요.”
“아아. 예.”
장경수의 애매한 응답을 들으면서 서동수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아직도 옆쪽에 서 있는 민혜영의 옆 얼굴이 더 굳어져 있다.
서동수는 소파에 등을 붙였다. 장경수에게 보고할 의무도 없는 입장이었으나
대통령 체면을 봐서 연락을 했다.
말은 다시 연락한다고 했지만 앞으로 안 할 것이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민혜영에게 말했다.
“여기 앉아.”
서동수가 옆쪽 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다리 아프겠다.”
“괜찮습니다.”
사양했던 민혜영이 힐끗 시선을 주더니 다가와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거리는 50센티 정도.
“편하게 앉아.”
“네. 회장님.”
민혜영의 엉덩이가 뒤쪽으로 10센티쯤 들어갔다.
그러나 시선은 앞쪽을 향한 채이고 몸은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있다.
“다 들었지?”
서동수가 묻자 민혜영이 머리만 끄덕였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이쪽은 마음을 굳혔다.
그때 민혜영이 대답했다.
“전형적인 물뿌리기 작전입니다.
저쪽은 이미 옷이 다 젖은 처지라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회장님만 밖으로 끌어내면 성공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붉은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난 이제 물벼락을 맞은 것 같나?”
“저쪽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는 민혜영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성공했다고 믿겠지요.”
(378) 18장 꿈꾸는 세상 <10>
의원회관 복도에 멈춰선 민족당 원내총무 백기현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위에는 수십 명의 기자가 제각기 마이크와 핸드폰까지 백기현을 향해 내밀고 있다.
앞이 막혀서 한 발짝도 떼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기자 하나가 소리치듯 물었다.
“서동수 회장과 창당한다는 보도, 사실입니까?”
이미 백기현의 전(前) 보좌관 이필성이 주간지 기자와 인터뷰를 했고 인터넷, 종편을 통해
보도된 상황이다.
만 하루 동안 백기현은 언론의 추적을 피해 다니다가 오늘 의원회관에서 잡혔다.
그때 백기현이 입을 열었다.
“서동수 회장이 창당을 제의했지만 제가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말이 끝났을 때 주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더 가깝게 붙으려는 기자들과 소리쳐 묻는 목소리들로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넘어지고 서로 잡고 자빠지는 기자들도 있다.
“서 회장이 제의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의원께선 왜 거절하셨죠?”
누군가가 악을 쓰듯 묻자 백기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이건 제 추측이지만 한국당에도 제의를 할 것 같았습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정치를 시작하려는 것이 저는 싫었습니다.”
“서 회장이 창당을 하리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의지가 강하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서 회장의 창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내보인 백기현이 기자들을 헤치고 방안으로 사라졌다.
TV 화면에 나온 백기현이 의원실 안으로 사라졌을 때 비서실장 양용식이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청와대 관저의 식당 안이다.
오늘은 대통령이 양용식과 둘이 다과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오후 8시반, 머리를 든 양용식이 대통령을 보았다.
“뻔한 물타기지만 서동수는 옷버렸습니다. 양아치를 만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시선만 주었으나 양용식은 이제 익숙하다.
“서동수가 중국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자청했는데 사또 행차 후 나팔입니다.”
“….”
“이미지만 더 구겨질 것입니다.
그것까지 백기현이 예상했을 테니까요.”
“….”
“백기현이란 난봉꾼 놈이 우리측 처녀 하나를 따, 아니, 버려놓은 꼴입니다.”
따먹었다고 하려다가 그렇게 바꿨다.
대통령이 가만있었으므로 답답해진 양용식이 말을 이었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특히 의원들과 당원들의 반감이 커졌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말했다.
“여론 따라 다니려면 정치인은커녕 기업가도 못해.”
양용식은 입을 다물었고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영화제작자도 통큰 놈들은 제가 선도해.
요즘은 홈쇼핑 사기꾼이나 여론 따라 다니면서 장사하는 거야.”
“대통령님.”
자존심이 상한 양용식이 우선 불러놓았다가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심기가 불편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같아.”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고 양용식이 어깨를 부풀렸지만 끼어들지는 않았다.
언중유골이다.
이 양반은 빈말을 한 적이 드물다.
그때 대통령이 우물거리듯 말했지만 양용식은 들었다.
“서동수가 저절로 밀려가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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