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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18장 꿈꾸는 세상 [4]

오늘의 쉼터 2014. 7. 28. 18:47

 

 

<190> 18장 꿈꾸는 세상 [4]

 

 

(375) 18장 꿈꾸는 세상 <7>

 

인생사(人生事)에는 예고 없이 닥치는 사건들이 많다.

따라서 준비 없이 그 사건들을 맞는 인간상(人間像)도 천차만별이다.

서동수에게 리정산의 제의는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감은 잡았지만 전혀 상상하지도 않은 미래를 펼쳐보인 것이다.

리정산이 떠나고 나서 서동수는 한동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리정산 혼자만의 제의가 아니다.

가볍게 이야기를 했지만 국가 차원의 작업이다.

문득 서동수는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몸의 원기가 증가해 있는 것을 느꼈다.

아직 뼈대만 내놓은 리정산의 제의에 저절로 살과 피부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렇다. 임기응변. 적응력이 빠른 서동수다. 반사적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을 뻗친 서동수가 벨을 누르자 곧 민혜영이 들어섰다.

민혜영은 중국과 한국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중이다.

다가선 민혜영에게 서동수가 말했다.

“유 실장을 오늘 오후에 여기서 만나자고 해.”

“예, 회장님.”

“출장 준비는 다 되었나?”

“예, 회장님.”

민혜영이 서동수의 가슴께에 시선을 준 채로 말을 이었다.

“한
감사님께도 비행 스케줄을 말씀드렸습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민혜영은 몸을 돌렸다.

내일 경성건설의 한수정과 함께 케냐의 나이로비로 가려는 것이다.

나이로비는 동성건설이 정부의 관광단지 공사 입찰에 참여한 상태다.

동성건설은 한국의 경성건설과 컨소시엄을 형성한 상태인 것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동성인 데다가 한국 경성의 기술력이 바탕에 깔려 있었으므로

입찰은 낙관적이다.

한·중 합작사업이다.

그날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방으로 비서실장 유병선이 들어섰다.

인천에서 칭다오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지만 공항 입출국 시간 때문에 다섯 시간은 잡아야 된다. 인사를 마친 유병선이 앞쪽 소파에 앉았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오전에 산둥성 당서기 리정산이 다녀갔어.”

그것까지는 알고 있는 터라 유병선은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가 리정산의 제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유병선의 눈빛이 강해지더니 마쳤을 때는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호흡까지 가누었다.

그러나 바짝 긴장한 채 서동수를 주시하고만 있다.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윽고 서동수가 말했다.

“서울로 돌아가 이 내용을 국정
수석께 전하도록.”

“예, 회장님.”

“그런 제의를 받았다고만 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단은 전하는 것이 예의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서동수가 입을 다물었고 유병선도 외면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말할 것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다.

다시 서동수가 입을 연 것은 한참 후였다.

“정치도 비즈니스와 맥이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 주고 받는다는 것 말이야.”

“…….”

“일방적인 관계는 없어. 있다고 해도 곧 끝나게 되지.”

눈을 가늘게 뜬 서동수가 앞쪽을 보았다.

“서로 이용가치가 있어야 만나게 돼.”

이윽고 눈의 초점을 맞춘 서동수가 유병선을 보았다.

“내가 중국, 한국, 북한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얻는 것은 무엇일까?”

 

 

 

 

(376) 18장 꿈꾸는 세상 <8>

 

비서실장 유병선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그것은 민족당 총무 백기현의 창당 제의다.

백기현은 이야기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서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민정수석 장경수한테도 민족당에 입당하라는 제의를 받았다고만 한 것이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전에 서동수는 케냐 정부로부터 35억 불 공사 승인을 받았다. 동성과 경성의 컨소시엄이 공사를 수주한 것이다.

장관과 함께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서동수가 호텔방에 돌아왔을 때는 오전 11시 반이다.

방으로 따라 들어선 민혜영이 말했다.

“비서실장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서동수의 저고리를 받아든 민혜영이 말을 이었다.

“급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넥타이를 풀어 건네준 서동수가 소파에 앉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고는 안 했어?”

“네. 회장님.”

민혜영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으므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유병선이 말해주었을 리는 없지만 분위기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서동수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서울은 오후 6시 반이다.

“전화 연결해.”

민혜영이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면서 서동수는 35억 불짜리 오더를 수주했다는

언론보도는 내일쯤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관과 계약서 사인하는 장면까지 KBC 방송팀이 취재해간 것이다.

카이로 오더에 이어서 또 한번 터뜨렸다.

그때 민혜영이 핸드폰을 내밀었으므로 서동수가 받아서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회장님, 유병선입니다.”

유병선의 목소리는 가라앉아있다.

“응. 무슨 일이야?”

“문제가 생겼습니다. 회장님.”

“…….”

“백기현이를 만나셨지 않습니까?”

그 순간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유병선이 백기현의 이름만 부른 것으로도 대충 짐작을 한 것이다.

유병선의 목소리에 점점 열기가 올랐다.

“그자가 회장님 하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정보를 뿌렸습니다.

한 시간 반쯤 전부터 언론이 떠들고 있는데 백기현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자가 흘린 것입니다.”

“…….”

“제가 추적을 했는데 백기현의 보좌관 하나가 총대를 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보좌관을 그만두면서 소문을 낸 것인데 백기현과 짜고 한 짓입니다.”

“…….”

“한국당은 곧 반박 성명을 낼 것 같습니다.

모두 분개해서 구태 정치의 표본이라느니 지저분하다느니 하고

벌써부터 몇 명이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다.

비서실 전화는 불이 나있을 것이다.

그렇다. 백기현이 흘렸다.

백기현으로서는 내가 만나러 간 것만으로도 이제 되었다고 무릎을 친 것 같다.

얼마든지 말을 만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유병선이 그렇게 물었을 때 서동수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올랐다.

비스듬한 옆쪽에서 옆얼굴을 보이고 선 민혜영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내 이름으로 유 실장이 발표를 해.”

“예. 회장님.”

“내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웃음띤 얼굴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을 칭다오로 불러. 거기에서 하는 것이 낫겠다.”

“알았습니다.”

유병선의 목소리에 활기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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