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37. 심판자 (4)

오늘의 쉼터 2014. 7. 29. 10:03

37. 심판자 (4)

 

 

 

 

핸드폰을 귀에 붙인 박운기가 눈을 치켜 떴다.

그리고는 앞에 앉은 조철에게 다급히 손짓을 하더니 대답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태도와는 달리 목소리는 느긋했고 굵었다.

조철이 상반신을 기울이며 박운기를 본다.

벽시계 바늘이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수화구에서 사내가 물었다.

"세무서장님. 최광규씨를 아시지요?"

"예? 누구라구요?"

되물은 박운기가 심호흡을 했다.

기다리던 전화인 것이다.

세무서장 윤경문한테서 핸드폰을 받은지 오늘이 사흘째가 되는 날이다.

그때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졌다.

"최광규 말입니다.

모른다고 하신다면 증거를 대 드리겠는데. 알고 있다는 증거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최광규한테서 3년간 총 8회에 걸쳐서 3억7500만원을 받으셨더군요.

장부상 기록이 되어 있는 것만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통."

"알겠습니다.

정 그렇게 오리발을 내미신다면 이 자료를 각 언론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총리실과 청와대에 보내지요. 물론 국세청 감찰부에도 보내야겠고."

"여보세요."

"전화 끊읍시다."

"잠깐만요."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 박운기가 힐끗 앞에 앉은 조철을 보았다.

몸을 기울인 조철은 수화구에서 울린 사내의 말을 거의 들었다.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박운기가 묻자 사내는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이보쇼,

최광규가 누군지 아시죠?

겉으로는 사업가지만 유흥가를 장악한 폭력조직 보스 아닙니까?

그놈한테 세금 깎아주는 대가로 돈 먹은거 아뇨?"

"아니. 누가, 말도 안되는."

"내가 증거자료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을 듣는거요?"

그러자 힐끗 조철의 눈치를 살핀 박운기가 말했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십시다."

"만나서 뭘하게?"

"서로 이야기하면서 해결을…."

"뭘 해결해? 누가 문제를 냈는데?"

"그러니까, 어쨌든."

"시간 소모하지 말고, 현금으로 10억을 만들어놔요.

사과상자 같은데 말고 헝겁 가방에 담아서."

"……."

"세무서장이니까 그쯤은 금방 마련할 수 있을 거야."

"아니, 그건 너무 많습니다."

울상을 짓고 말한 박운기에게 조철이 손바닥을 펴고 누르는 시늉을 했다.

깎으라는 표시 같았으므로 박운기가 열심히 말했다.

"내가 그만한 능력은 없습니다. 좀 깎아 주시오."

"안돼. 10원도 깎아줄 수 없어."

"내가 그 돈을 다 넘긴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돈 받으면 나도 공범이 돼 버리는 거야.

그럼 둘이 같이 죽을텐데 내가 그짓을 왜 하겠어?"

그러자 조철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고 박운기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만납시다."

"알았습니다."

"잡았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박운기를 노려보며 조철이 잇사이로 말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이놈이 강한일까요?"

박운기가 핸드폰에 녹음기를 연결시키면서 물었다.

핸드폰에 녹음된 대화를 녹음기로 옮겨 저장하려는 것이다.

"누구건 간에 상관없어. 그놈 팀중 한 놈만 잡으면 다 잡히게 돼.

 불 때까지 사지를 다 떼어 낼테니까."

 

 

 

 

저녁 7시10분 전.

여의도의 중식당 북경장 주차장은 차들이 꽉 차 있어서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고급 대형 승용차였지만 국산이다.

그것은 국회나 정부기관 손님들이 왔다는 증거였다.

기업체나 연예인 또는 자영업자는 그들보다 차종 선택에 자유로운 편이다.

"저건가?"

하고 황택수가 눈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검정색 그랜저 한 대가 주차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짙게 선팅을 해서 뒷좌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랜저는 주차장을 지나더니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때 조재일이 핸드폰을 집어들고 버튼을 눌렀다.

강한은 조재일을 이번 작전의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조재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광규 조직의 간부였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다.

강한에게 정보를 빼돌렸다가 탄로나기 직전이었다.

"여보세요."

연결이 되었는지 조재일이 목소리를 높이고 말했다.

"거기 어딥니까? 찾기 쉽게 비상 라이트를 켜요."

그러더니 저쪽 이야기를 듣고나서 핸드폰을 내렸다.

"5분 거리라는데."

"형, 괜찮을까?"

이맛살을 찌푸린 황택수가 옆에 선 조재일을 보았다.

그들은 중식당 왼쪽의 오피스텔 빌딩 10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중이다.

"서둘지만 않으면 돼."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조재일이 창가에 기대앉았다.

한동안 숨어만 있던 조재일은 처음 작전을 맡고 활기에 차 있었다.

황택수 등 강한의 팀원과도 금방 융화가 되어서 분위기도 좋다.

"만일에 말야."

담배연기를 내뿜은 조재일이 웃음띤 얼굴로 황택수를 보았다.

"저게 놈들의 함정이라면 서로 기다리기 경쟁을 하는거다."

"기다리다니?"

"놈들은 우리가 나타나길 기다릴 것이고 우린 놈들이 보이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럼 어떻게 돼?"

"성질 느긋한 놈이 이기는 거지."

그러자 황택수가 입맛을 다셨다.

"난 그건 자신 없는데."

"내가 있잖냐?"

그때 왼쪽 차도에서 비상 라이트를 켠 검정색 그랜저가 다가왔으므로 둘은 말을 멈췄다.

"저놈인데."

황택수가 잇사이로 말했다.

남부세무서장 윤경문이다.

윤경문은 차 안에 현금으로만 10억을 싣고 있어야만 한다.

그때 이번에는 조재일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떨었다.

전화가 온 것이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조재일이 수화구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 왔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요?"

윤경문의 목소리였다.

조재일이 아래쪽 차를 내려다 보면서 심호흡을 했다.

"차를 북경장 주차 관리요원한테 맡겨요. 거기서 알아서 할 테니까."

"나한테 준다는 자료는 어디 있어?"

"내가 돈 확인하고 넘길 테니까 걱정말고."

그리고는 상대방의 말을 막듯이 덧붙였다.

"이건 우리가 돈 먹고 일 끝낸다면 되는 거지 그따위 자료가 무슨 소용이 있어?

얼마든지 복사해서 뿌릴수도 있는데."

"약속 지켜야 돼."

"차나 맡겨."

그러자 주차장 입구에서 차가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사내 하나가 내렸다.

윤경문일 것이다.

사내가 마침 다가온 주차요원한테 뭐라고 말하더니 키를 건네 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자식, 느긋하네."

황택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망원경을 눈에 붙이고 있던 조재일이 입맛을 다셨다.

"저 자식, 많이 본 놈인데."

그러더니 코웃음을 쳤다.

"윤경문이 아냐. 저건 함정이다."

 

 

 

"7층은 이상 없습니다."

건물의 비상계단을 달려 올라오면서 이석재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이석재의 뒤로 다섯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 맨손이었지만 몸에 무기를 감추고 있다.

"우린 지금 11층으로 내려간다."

무전기에서 우경환의 목소리가 울렸다.

우경환은 14층부터 훑고 내려오는 중이다.

8층 복도로 나온 이석재가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보았다.

8층에는 조사할 방이 4개였다.

807, 809, 815와 819호이다.

조사할 방이란 빈 방이거나 최근에 입주한 방,

방 주인이 변경되었거나 용도가 불분명한 방이었다.

한 시간 전에 놈들한테서 여의도의 중식당을 접선 장소로 통보받은 후에

경호실장 조철은 근처의 빌딩 3곳에 대한 수색을 지시했다.

지금 중식당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빌딩 두 곳도 수색하고 있을 것이었다.

먼저 이석재가 뛰어들어간 807호는 비어 있었다.

809호는 아예 문까지 열려 있어서 들어갈 필요도 없다.

이석재는 가쁜 숨을 뱉으며 앞쪽 815호를 가리켰다.

"서둘러!"

부하들이 앞장서 달려갔다.

관리인한테서 14층 전체 입주자 내역을 받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석재는 경찰 행세를 했고 관리사무소에는 부하 하나가 지켜서 있는 것이다.

815호는 문이 잠겨 있었는데 부하 하나가 관리사무소에서 받은 비상키로 열었지만

안에서 사슬 고리로 잠가놓았다.

"누구요?"

밖의 자물쇠가 열리는 서슬에 안에서 사내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사무소인데 문 좀 여세요."

부하 하나가 말했고 나머지는 일제히 벽에 붙어섰다.

그리고 제각기 무기를 빼 들었는데 날이 시퍼런 회칼들이다.

그때 철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눈을 크게 뜬 40대쯤의 사내가 서 있었는데 안에는 박스가 가득 쌓였다.

건강식품이다.

이석재는 박스로 창문까지 가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사내가 이석재의 등에 대고 물었지만 대답은 부하 하나가 했다.

"사람을 찾고 있어요.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다가간 819호는 젊은 두 남녀가 문을 안에서 잠그지도 않고

섹스를 하고 있다가 기겁을 했다.

"9층으로!"

이석재가 다시 비상계단을 향해 뛰면서 말했다.

그때 무전기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우경환이 10층으로 간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면 이 건물의 수색은 다 끝난다.

"여긴 4 곳이다."

우경환이 쪽지를 들여다보고 말했다.

그는 10층의 비상계단 입구에 서 있었는데 주위에 부하 다섯이 둘러섰다.

"영구, 철이, 태호 너희들은 이쪽 1004호, 1007호를 맡고 나머지는 나하고 저쪽이다."

우경환이 턱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셋씩 분담을 해서 수색 속도를 빠르게 하려는 것이다.

우경환이 앞장서 달려간 1014호는 빈방이다.

문까지 열려 있어서 그냥 지나갔다.

남은 방은 1019호, 복도 끝쪽 방이다.

앞장서 달려간 부하가 키로 열쇠를 열었지만 안쪽 고리가 걸려 있다.

"누구요?"

안에는 묻는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고 부하가 대뜸 대답했다.

"관리사무소입니다. 안의 냉방장치를 점검해야 되는데."

"잠깐 기다려요."

우경환은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다시 보았다.

이 방은 지난달 명의가 바뀌었다.

지난달까지는 오퍼상 사무실이었는데 지금은 주인이 쓰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때 고리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우경환은 눈앞이 하얗게 되는 것을 느끼고는 입을 딱 벌렸다.

가스 분사기다.

"아악!"

비명소리는 옆에 선 부하가 터뜨렸다.

"아이고!"

뒤쪽 동료들이 들으라고 지르는 고함이다.

 

 

 

문앞에 선 셋은 얼굴에 가스를 뒤집어쓰고 복도 바닥에 딩굴고 있었지만

조재일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셋을 보았다.

모두 손에 번득이는 칼을 들었다.

"지기미."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 조재일이 방 문고리를 채우더니 황택수를 보았다.

"밧줄."

조재일이 턱으로 창틀 밑의 스팀대에 매어 놓은 밧줄을 가리켰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매어 놓았으므로 매듭도 엉성했다.

"타고 내려가 열린 창문이 있으면 들어가고, 어서!"

그때 문앞으로 달려온 사내들이 힘을 모아 와락 잡아당기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어서!"

조재일이 소리치자 황택수가 밧줄을 잡고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야, 시바, 부숴!"

밖에서 누군가 소리치더니 쇠사슬 고리가 부서질듯 당겨졌다.

조재일은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황택수는 8층쯤 내려가고 있다.

그때 다시 문이 요란하게 당겨지더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쇠사슬 고리가 풀리는 것이다.

그 순간 문으로 달려간 조재일이 벌려진 틈으로 가스 분사기를 뿜었다.

"아아악!"

정통으로 얼굴에 최루 가스를 맞은 사내 2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눈을 치켜뜬 조재일이 고리를 잡아채며 풀고는 문을 열었다.

손에는 가스 분사기 둘을 쥐었다.

조재일이 뒤쪽에 아직 멀쩡하게 서있는 사내에게로 분사기를 품었다.

놀란 사내가 얼굴을 돌린 순간 한걸음에 다가간 조재일이 발길로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컥!"

사타구니를 채인 사내가 허리를 꺾었을 때 분사기를 눈앞에 댄 조재일이 방아쇠를 당겼다.

"아이고!"

복도에 커다랗게 비명소리가 울렸다.

조재일은 아직도 바닥에 기대 앉거나 얼굴을 감싼 채 몸부림을 치는 사내들을

잠깐 둘러보고 나서 다시 방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창가로 다가가 밧줄을 움켜쥐고 몸을 날렸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거리에서는 다 보일 것이다.

황택수는 이미 보이지 않았으므로 조재일은 거침없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러다가 5층의 열린 창문을 발견하고 다리부터 안으로 집어 넣었다.

황택수도 이곳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5층 방은 사무실이었다. 여직원 하나가 눈과 입을 딱 벌린 채 문 밖으로 뛰어나거는

조재일을 바라만 보았다.

복도로 나온 조재일은 비상계단을 찾아 내고는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2층 계단에서 열려진 창문을 통해 옆쪽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땅에 닿았을때 다리를 접질렸지만 견딜만 했다.

정원 옆쪽은 골목이다.

골목안은 통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조재일은 거리 반대쪽으로 달렸다.

골목 끝으로 나왔을때 그곳은 반대쪽 사거리였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조재일이 그때서야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버튼을 눌렀다.

황택수를 찾는 것이다.

신호음이 여섯번 울리는 동안 초조해진 조재일은 침을 세번이나 삼켰다.

"여보세요."

황태수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조재일은 눈을 치켜떴다.

길가의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조재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너, 지금 어디야?"

"동성생명 옆이야. 형."

그러면 황택수는 조재일과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셈이다.

그러나 그쪽도 북경장과는 사거리 하나만큼 떨어져 있다.

길게 숨을 뱉은 조재일이 말했다.

"좋아, 철수다. 거기서 곧장 숙소로 돌아가."

"어디로 말야?"

황태수가 묻자 조재일은 심호흡을 했다.

숙소는 여러개인 것이다.

"논현동으로. 내가 형님한테도 보고 할테니까 거기서 만나자."

 

 

 

수화구에서 조철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최광규는 숨을 삼켰다가 한참만에 뱉었다.

달리는 차 안은 조용했다.

앞쪽에 앉은 부하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조재일이."

최광규가 혼잣소리처럼 한 자씩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때 조철의 말이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잡을 수 있었는데 저희가 방심했습니다."

"……."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야, 닥쳐."

입맛을 다신 최광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게 쉽게 잡힌다면 별로 재미도 없다. 기회는 많다."

"예, 회장님."

"서울 바닥에 있다면 언제건 꼬리가 잡힌다. 현상금을 1억으로 올려."

최광규가 씹어뱉듯 말하고는 핸드폰을 옆쪽으로 던졌다.

차는 원효대교를 건너가는 중이다.

"야, 논현동으로 가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댄 최광규가 말하자

운전사가 핸들을 틀었고 옆자리의 부하는 무전기를 귀에 붙였다.

뒤를 따르는 경호차와 연락을 하려는 것이다.

최광규는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곡절도 겪었지만

이번 경우처럼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골머리를 썩힌 경우는 없었다.

드러내지 않고 안에서 좀먹는 암세포처럼 강한 그놈은 점점 조직을 분해시키고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둘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번쩍 눈을 뜬 최광규가 창 밖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이미 그놈 동생을 죽게 한 원인을 제공했고

그놈 또한 내가 아끼던 여자 한미연을 납치해 간데다가

집안에 숨겨둔 비자금을 모두 강탈해갔다.

그것을 생각하면 혈압이 치솟아서 약을 먹어야만 한다.

거기에다 그놈은 경리부장을 꼬여 세금 탈루 자료를 다 빼내간 후에 변호사를 시켜

당국에 고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여의치 않자 뇌물 준 사람들을 협박해서 오늘처럼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철천지 원수였다.

그때 차가 논현동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최광규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한미연이 납치된 후로 최광규가 새로 살림을 차려준 백수진의 빌라로 가는 것이다.

이곳은 고급 주택단지여서 담장도 높고 저택은 대개 3층 높이였다.

차가 높은 돌담을 꺾어 지나 저택 대문 앞에 멈춰서자 곧 철제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대지 3백평에 건평이 2백평인 이 저택은 시가로 70억이 넘는다.

최광규는 팔목시계를 보았다.

저녁 8시반이다.

백수진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침대로 끌고 들어가면 기분전환은 될 것이다.

그순간 최광규는 차체 지붕에 부딪치는 커다란 소음을 듣고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다음순간 최광규는 앞쪽 유리창으로 불덩이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불! 불이야."

하고 조수석에 앉은 부하가 엉겁결에 소리쳤다.

최광규는 머리를 돌려 옆쪽 창문도 불길에 싸여 있는것을 보았다.

화염병이다. 화염병에 맞은 것이다.

"나가!"

버럭 소리친 최광규가 문의 손잡이를 쥐고 열었다.

그 순간 가스 냄새가 맡아지면서 불덩이가 안으로 흘러 떨어졌다.

최광규는 차 밖으로 몸을 굴렸다.

차에서 운전사와 부하가 뒤를 따라 뛰어내렸다.

그때 뒤쪽의 경호차에서 부하들이 달려왔다.

"저쪽이다!"

경호 책임을 맡은 이택상이 손으로 뒤쪽 저택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뒤쪽 저택은 불만 켜져 있을뿐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최광규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저택 정원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가 아끼던 벤츠600은 이제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소화기! 소화기!"

누군가가 뒤늦게 소리쳤고 두어 명은 저택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불을 끄려는 것이다.

 최광규는 이를 악물었다.

강한의 짓이다.

그놈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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