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34. 심판자 (1)

오늘의 쉼터 2014. 7. 27. 23:45

34. 심판자 (1)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강한이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유기호의 전화였다.

"아, 유 선생 웬일입니까?"

강한이 묻자 유기호는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 때 박 부장이 잡혔습니다."

숨을 죽인 강한의 귀에 유기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발각이 된 거죠. 난 정보원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겨우 빠져 나왔습니다."

"……."

"정보가 어디에서 새 나갔는지 아직은 모릅니다만 강 사장도 알고 계셔야 될 것 같아서요."

"박 부장은 괜찮을까요?"

"자료 빼내서 강 사장님한테 전달했다는 건 이미 실토했을 겁니다.

아마 10분도 견디지 못했을 걸요?"

"……."

"최광규와 강 사장님은 이미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할 지경까지 되어 있는 터라

더 나빠질 것도 없죠."

"박 부장을 빼내와야 할 텐데요. 가만 두면 안될 텐데."

"놔두면 죽겠지요. 아마 산속에 묻거나 물속에 넣을 겁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최광규가 박순홍이를 납치해 갔다구요.

가족들한테도 그렇게 말했고 신문사 3곳에도 제보를 했어요."

"……."

"최광규는 울화통이 터지겠지만 곧 박순홍을 돌려 보낼 겁니다.

지금쯤 반 병신이 되었겠지만 나오긴 하겠죠."

"아니, 우리한테 사과하실 이유가 없죠."

유기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당분간 저도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만 자금은 있으니까요."

강한은 유기호와 박순홍에게 이미 약속한 대금을 준 것이다.

유기호가 말을 이었다.

"강 사장님도 이번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 아직 모르는 상태니까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제가 수시로 정보를 드리지요. 최광규를 잡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다.

강한은 소나무 둥치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유기호는 한중훈 변호사가 사건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주위는 짙게 어둠에 덮여 있었으므로 아래쪽 별장의 불빛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별장 안에는 이복만과 장미 둘뿐이었지만 아래쪽 국도변의 민가에 별장 관리인 노부부가 산다.

노인들은 오후 5시경까지 별장 안팎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갔는데 보안장치는 설치되지 않았다.

이복만이 별장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노인 부부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체가 나타났다.

황택수다.

손에 비닐 봉지를 쥔 황택수가 가쁜 숨을 뱉으며 다가왔다.

"지기미."

비닐봉지를 내려놓은 황택수가 투덜거렸다.

"연놈들은 열심히 방아를 찧고 있는데 우린 이거 뭡니까?"

"방아는 무슨."

비닐봉지 안에서 음료수 병을 꺼낸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넣자마자 끝났어."

"예? 왜요?"

"왜라니?"

벌컥이며 음료수를 마신 강한이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넣고나서 10초쯤 되었을 때 끝났다니까."

"으음."

그때서야 이해를 한 황택수가 탄성을 뱉었다.

"미사리 귀신한테서 배운 보람이 있네요."

"그런가보다."

"그럼 지금은."

침을 삼킨 황택수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망원경을 집어들더니 별장을 보았다.

"끝내고 둘은 떨어져 누웠다."

강한이 보지도 않고 설명했다.

"여자는 건넌방에, 남자는 안방에. 한번 빼고 나니까 진이 다 빠진 모양야."

어둠속에서 강한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다음 다음 날 오후 5시 반이 되었을 때 외출복 차림을 한 이복만이 응접실로 나왔다.

 

"나 갈테니까 너도 김 사장한테 연락해서 차 오라고 해."

 

소파에 앉아 있는 장미에게 말하고는 이복만이 지그시 웃었다.

 

"내가 다시 김 사장한테 연락하마."

 

"네, 오빠."

 

자리에서 일어선 장미가 따라 웃었다.

 

"꼭 연락 주셔야 돼요."

 

"이놈아, 내가 네 그걸 왜 잊겠냐?"

 

이복만의 시선이 장미의 다리 사이로 옮겨지더니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아이, 참."

 

하면서 장미가 두 다리를 꼬는 시늉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복만을 더 자극시켰다.

 

"간단하게 한번만 더 하자."

 

이복만이 브리핑을 한번 더 듣겠다는 얼굴로 바지 혁띠를 풀더니

팬티까지 한꺼번에 벗어 던졌다.

 

"넌 요물이다."

 

"오빤 너무 너무 세요."

 

"다 너 때문야."

 

장미에게 다가간 이복만이 거칠게 몸을 뒤로 돌리더니 등을 밀어 엎드리라는 시늉을 했다.

장미는 이복만의 와이셔츠 한 장만 걸쳤을 뿐이다.

뒤로 다가붙은 이복만이 셔츠 끝을 들쳐올리더니 거침없이 껴안았다.

 

"으으윽."

 

이복만의 비명같은 외침이 방안에 울렸다.

그러더니 그 자세 그대로인 채 연거푸 신음을 뱉어 내었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는다."

 

장미는 입을 꾹 다문 채 이제는 숨도 가쁘지 않았다.

신음을 내지르던 이복만의 몸이 떨어졌을 때는 20초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복만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어서 실성한 것 같게도 보였다.

 

"아이구 죽겠다."

 

옆쪽 소파에 주저앉은 이복만은 헐떡이며 말했다.

위쪽은 넥타이까지 맨 정장 차림에 아랫도리만 벗고 있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난 몸서리가 처질 만큼 좋았지만 넌 별로인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또, 또. 그런 말씀 마시라고 했죠? 난 나대로 즐긴다구요."

 

"내가 바빠서 오늘 헤어지지만."

 

이복만이 장미의 어깨를 감싸안고 부드럽게 말했다.

주름진 얼굴에 땀이 배어 있었지만 만족한 표정이었다.

 

"내가 연락하면 꼭 나와야 한다."

 

"알았어요. 오빠."

 

그러자 이복만이 바지를 챙겨 입더니 다시 작별 인사를 했다.

 

"나, 간다. 차 불러라. 응?"

 

"네, 오빠."

 

"그냥 가도 돼. 아랫집 노인들이 곧 올라올 테니까."

 

"안녕히 가세요."

 

현관 앞까지 이복만을 배웅한 장미는 유리창 밖을 보았다.

이복만이 손수 승용차 운전석에 오르더니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몸을 돌린 장미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낸 장미가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두번 울리고 나서 곧 응답소리가 났다.

 

"응, 나야."

 

장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운전사 전화기에서 강한의 목소리가 울린 것이다.

 

"차 가져와."

 

장미가 차갑게 말했다.

 

"서둘러."

 

그 순간 현관문이 벌컥 열렸으므로 장미는 기겁을 했다.

몸을 돌린 장미는 강한이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강한은 장미의 차림에는 시선도 주지않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탁자를 딛고 서서 천장에 붙은 전등 옆을 뜯더니 소형 촬영장치를 꺼냈다.

강한이 조금 전에 장미가 엎드려 있던 곳과 천장을 번갈아 보았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장미가 버럭 소리치자 강한이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각도 보는 거야. 조금 전의 장면이 제대로 찍혔나 하고."

 

"뭐?"

 

그러나 가방에 장치를 넣은 강한이 안방으로 향했으므로 장미가 정신없이 따라갔다.

 

"너, 그럼 다 찍었단 말야?"

 

장미가 뒤에서 소리쳐 물었지만 강한은 침대 위로 올라서더니

모퉁이의 천장을 들치고 다시 촬영 장치를 꺼냈다.

 

"야, 이 새끼야!"

 

이제는 두 손을 휘저으며 장미가 달려들었다.

눈을 치켜뜨고 이를 드러낸 모습이 악착같았지만 강한은 가볍게 어깨로 밀고는

장치를 가방에 넣었다.

 

"어, 왜 그래?"

 

하고 방문 앞에서 사내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장미가 다시 기절초풍을 했다.

황택수였다.

침대에서 내려온 강한이 황택수에게 말했다.

 

"서둘러 천장을 제대로 해놔. 아랫집 노인들이 오기 전에 말야."

 

"노친네들 오려면 30분은 더 걸려."

 

침대 위로 올라가면서 황택수가 말했다.

 

"난 둘이 엉켜있길래 형이 한번 해주나 했네."

 

"야 이 새끼들아."

 

장미가 마침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사과 하나를 집어 황택수에게 던졌다.

그런데 그것이 정통으로 황택수의 뒤통수에 맞고 떨어졌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사과가 반으로 쪼개졌다.

 

"아이고."

 

머리를 움켜쥔 황택수가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장미를 보았다.

 

"이 년이 사람잡네."

 

장미도 맞는 바람에 놀랐다.

그래서 눈만 치켜뜨고 식식거렸을 때 강한이 응접실에서 불렀다.

 

"뭐해? 그렇게 셔츠 차림으로 나갈 거야?"

 

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곧 현관문이 열렸다.

 

"어이, 갑시다."

 

들어선 사내는 자라 백용철이다.

그들이 별장을 나왔을 때는 그로부터 10분쯤 후였다.

차가 별장지기 노인네 집을 지날때까지 노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휴, 산속에 웬놈의 벌레가 그렇게 많은지."

 

앞자리에 앉은 황택수가 투덜거렸다.

 

"모기약을 발라도 문다니까. 독한 놈들이야."

 

"고생했다."

 

운전석에 앉은 백용철이 위로했다.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못잤을 테니까 사우나나 갔다와."

 

"다른 건 다 참을수 있었지만 그건 못참겠더라."

 

황택수가 말했을 때 강한이 장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수고했어."

 

눈을 치켜뜨고 있던 장미가 그 모습 그대로 노려 보았지만 강한은 말을 이었다.

 

"이 자식들 말은 신경쓰지마. 악의는 없으니까 말야."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띄워졌다.

 

"저 놈들은 다 널 좋아해. 내가 다 알아.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아니, 형."

 

하고 먼저 황택수가 소리치듯 말하고는 강한을 노려보았다.

 

"형, 무슨 그런 택도 없는 말씀을."

 

"야, 시끄러."

 

장미가 황택수의 말을 잘랐다.

눈을 치켜뜬 장미가 황택수에게 물었다.

 

"넌, 네 어머니 이름을 걸고 거짓말 안한다고 맹세 할 수 있어?"

 

"무슨 어머니? 이게 갑자기."

 

황택수가 눈을 부릅떴을 때 장미가 쏘아붙이듯이 다시 물었다.

 

"너, 나 생각하며 자위해봤어? 안 했어? 솔직히 말해봐."

 

그러자 백용철이 쿡쿡 웃었고 강한은 심호흡을 했다.

황택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강한은 2층의 인터폰을 받았다.

한미연이 강한을 부른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간 강한은 소파에 앉아있는 한미연을 보았다.

강한과 함께 숙소에 도착한 장미는 안방에 있는지 장롱 여닫는 소리가 났다.

강한이 앞쪽에 앉았을 때 한미연이 입을 열었다.

눈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조금 긴장한 것 처럼 느껴졌다.

 

"저, 한국을 떠나기로 했어요."

 

강한은 눈만 크게 떴고 한미연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서 폐만 끼치기도 미안하고 아버지 일도 잘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요."

 

한미연의 부친 한경호는 며칠 전 최광규 소유인 안국상사 총무부장에서 물러난 것이다.

최광규는 순순히 사직서를 받았다고 했다.

이것으로 한미연은 최광규와의 인연을 끝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디로 가려고 그래?"

 

강한이 묻자 한미연이 앞쪽 벽을 보았다.

눈의 초점이 멀어지면서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했다가 눈의 초점을 잡고 강한을 보았다.

어느덧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떠올라 있다.

 

"몇 곳을 여행하다가 프랑스에 정착하고 싶어요."

 

"지난번 최광규 집에서 거금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건 한미연씨 덕분이야.

내가 정착비를 대지."

 

"제가 돈 달라고 이런 말씀 드리는 것 아닌데."

 

"내가 떼어줄 의무가 있어. 정착비로 얼마가 필요한지 말만 해."

 

그러자 시선을 내렸다가 든 한미연이 말을 이었다.

 

"50만 달러만 주세요. 그 돈이면 충분할것 같아요."

 

그때 안방에서 장미가 나오더니 옆쪽에 섰다.

장미는 머리를 뒤로 모아 묶고 가운만 걸쳤는데 맨발이었다.

 

"한미연씨, 50만달러 갖고 어떻게 살아가겠다고 그래요?

거기 집값이 얼만지나 알아요?"

 

놀란 한미연이 눈만 크게 떴고 강한은 헛기침을 했다.

소파에 두 손을 짚고 선 장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연씨 프랑스어 알아요?"

 

한미연이 엉겁결에 머리를 젖자 장미의 말이 쏟아졌다.

 

"그럼 먼저 프랑스어부터 배워야겠군요.

집을 빌린다고 해도 파리 시내 집세가 한달에 1000달러 이상 나가요.

거기에다 식비, 옷값, 교통비. 또 밥만 먹고 사나요?

술도 마시고 영화도 봐야지. 또 여행비는 어떻게 하고. 50만달러는 금방 없어져요.

잘 하면 3년쯤 갈까?"

 

머리를 돌린 장미가 강한을 노려보았다.

 

"이봐, 동업자. 한미연씨 말 듣고 얼씨구나 하면서 50만달러만 줘 보내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 마세요."

 

한미연의 목소리가 컸으므로 강한은 물론이고 장미도 놀란 것 같았다.

눈만 크게 뜬 장미를 보더니 한미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했다.

 

"전 불어 공부는 하겠지만 다른 건 다 틀려요.

월 150달러짜리 기숙사도 알아보았고 한달 생활비는 350달러면 충분해요.

그리고 1년 후에는 직장을 가질 것이라구요. 50만달러도 너무 많습니다."

 

장미는 눈만 깜박이며 대꾸하지 않았고 강한이 말했다.

 

"어쨌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는지가 첫번째 문제야."

 

맞는 말이다.

최광규가 사람 시켜서 공항을 지키고 있다면 떠나지도 못하고 끝난다.

 

"정착할 곳의 숙소, 학원 수속까지 다 끝낸 후에 떠나는게 나아."

 

그리고는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국에 남은 가족 문제까지 마무리를 해야겠지."

 

장미는 몸을 돌렸고 강한도 부드러운 시선으로 한미연을 보았다.

 

"나한테 맡겨.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난 날 의지한 사람은 책임져."

 

 

 

 

 

 

 

 

"양 사무장입니다."

수화기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별일 없으시죠?"

"아, 예."

건성으로 대답한 강한이 팔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반이다.

한중훈 변호사의 사무장 양문수와는 여러번 만난데다 통화도 많이 해서 목소리도 안다.

"저기, 변호사님이 만나서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하시는데요."

양문수가 용건을 꺼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오늘 저녁에 말씀이죠?"

하면서 잠깐 생각했던 강한이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어디서 몇 시에 만나면 될까요?"

"변호사님이 저녁 7시에 천호동의 대성호텔 지하1층 한식당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한식당 이름이 한양입니다."

"알았습니다."

"저기, 변호사님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7시에 뵙겠다고 말씀 드리세요."

핸드폰을 귀에서 뗀 강한이 머리 들고 운전석에 앉은 천상태를 보았다.

"한 변호사 사무장인데 변호사가 날 보자고 한다는구나."

"무슨 일일까요?"

앞쪽을 본 채 천상태가 물었다.

그들은 지금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달려가는 중이다.

좌석에 등을 붙인 강한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첫째 한 변호사가 나한테 직접 전화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때 천상태가 백미러를 보았고 그곳에서 강한의 시선과 마주쳤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둘째 천호동 대성호텔 한식당에서 만나자는데 한 변호사 이름으로

예약해 놓는다고 했어. 날 만나는데 말야."

 

"그렇군요."

 

긴장한 천상태가 차의 속력을 늦췄다.

천상태는 팀원 셋 중 머리회전이 가장 빠르다.

그래서 전 회사에서 추적 담당을 맡았다.

도망친 채무자나 채무자가 숨긴 재산을 찾아내는 데는 귀신이다.

 

"형님, 한 변호사한테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만일 사무장이 무슨 음모를 꾸민다면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해놓았겠지?"

 

"그랬겠지요, 아마."

 

잠깐 생각했던 천상태가 말을 이었다.

 

"변호사하고 직접 통화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있을 겁니다."

 

"사무장이 변호사 핸드폰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지금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변호사는 자리에 없겠지요?"

 

"그럴 가능성이 많지. 음모를 꾸민 경우라면 말야."

 

"제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도 확인하는 작업이 발각될 수 있겠군요."

 

"그렇다."

 

"그럼 휴게소에서 공중전화를 쓰겠습니다. 그럼 우린 줄 모르겠지요."

 

"해봐."

 

마음이 통한 둘은 백미러에서 다시 눈을 맞췄고 차는 속력을 내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휴게소는 곧 나타났고 차에서 내린 둘은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 붙어섰다.

버튼을 누른 천상태가 심호흡을 하더니 응답소리를 듣고 말했다.

 

"변호사님 계십니까? 제가 오늘 전화드리기로 했던 후배인데요."

 

천상태가 느릿느릿 말했다.

 

"네, 학교 후배 이경훈입니다. 그렇게만 말씀드리면 아십니다."

 

그러더니 저쪽의 말을 듣고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알았습니다. 다시 연락 드리지요."

 

전화기를 제자리에 놓은 천상태가 쓴 웃음을 지은 얼굴로 강한을 보았다.

 

"변호사님은 오후 6시까지 연구원 강의가 있어서 연락이 안된다는 겁니다.

 

지금 사무장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7시 약속이니까 확인할 시간이 거의 없구만."

 

따라 웃은 강한이 공중전화 부스를 나왔다.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낀 강한이 팔목시계를 보았다.

 

10시 10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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