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심판자 (2)
12시 40분.
변호사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은 양문수는 계산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서 시원하게 물줄기를 뽑아낸 양문수가 진저리를 친 순간에 뒤통수에
깨지는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컥!"
소변기 앞의 양문수가 외마디 신음을 뱉으며 늘어지자 뒤에 선 사내가 재빠르게
허리를 부둥켜 안았다.
화장실 안에는 사내가 또 한 명 있었는데 양문수를 들쳐메도록 도와준 후에
앞장 서서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서 쓰러졌어요."
앞장서 카운터로 다가간 사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분 아시죠? 우리 일을 맡은 변호사실 사무장인데, 우리가 병원으로 데려 가지요."
그리고는 사내가 설렁탕 값을 내밀었으므로 주인은 미안해서 황송한 표정까지 짓고
그들을 내보냈다.
양문수는 설렁탕 집에 자주 왔지만 반찬 타박을 많이 한데다 제가 돈 낸 적이 별로 없어서
인기가 없다.
그래서 주인은 양문수가 그 꼴에 인덕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싸다가 쓰러졌다니 보나마나 혈압 때문인 것 같은데 다행인 것은
외상값이 없다는 점이다.
죽든 살든 장사에 전혀 지장이 없는 인간이었다.
양문수가 깨어났을 때는 그로부터 2시간쯤 후였다.
뒷머리가 부서져버린 것 같은 통증이 왔으므로 신음을 뱉은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도 없는 시멘트 방 안이었다.
자신은 철제 의자에 온몸이 공업용 테이프로 감겨져 있었는데 겨우 목 윗부분이 자유로울 뿐이다. 천장에 형광등 한 개만 켜져 있어서 열 평쯤 되는 시멘트 방안은 어둑했다.
그리고 비린 냄새가 난다.
음식이 썩는 냄새 같았다.
다시 신음을 뱉은 양문수가 앞쪽에 나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철제 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사방은 조용했다.
그 흔한 자동차 소리도,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아이구."
와락 겁이 난 양문수가 신음 대신 비명을 질렀다.
외침이 벽에 부딪치면서 울렸다.
"거기 누구 없습니까?"
양문수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뒷머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통증이 왔지만 다시 악을 썼다.
"여보시오. 대체 왜 이러는 거요!"
양문수가 악을 쓰고 있는 건물의 2층 응접실에서 강한과 천상태는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핸드폰은 2개였다.
한 개는 양문수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한중훈 변호사 핸드폰이다.
양문수가 한중훈의 핸드폰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변호사를 어떻게 하고 저걸 빼앗은 건 아니겠지요?"
천상태가 자신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놈을 족치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요."
그때 2층 계단으로 황택수가 올라왔다.
"저놈이 이젠 우는데요."
계단 끝에 선 황택수가 입맛을 다셨다.
"저 혼자 악을 쓰더니 흐느껴 웁니다.
저러다간 얼마 안가서 머리가 돌 것 같은데."
황택수가 손가락 하나를 머리 끝에 대고 빙빙 돌렸다.
"기다려. 바쁠 것 없다."
팔목시계를 내려다 본 강한이 정색하고 말했다.
오후 3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중훈의 핸드폰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연락을 차단하려는 의도였고
그것은 곧 양문수가 음모에 가담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음모의 배후는 최광규다.
최광규는 한중훈의 사무장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강한은 한중훈의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만에 하나의 경우지만 한중훈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핸드폰을 사무장한테 맡겨 놓았을 수도 있다.
그때 천상태가 입을 열었다.
"형님, 대성호텔 한식당은 그냥 둘까요?"
강한의 시선을 받은 천상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기다리는 놈들 뒤통수를 치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요."
천상태는 최광규 일당에게 한번 잡혔다가 도망친 후로 이를 갈고 있다.
한중훈 변호사와 통화가 된 것은 그날밤 11시가 되었을 때였다.
종합검진을 받으려고 국제병원에 입원해있던 한중훈의 병실 전화로 연결이 된 것이다.
"아니, 웬일인가?"
한중훈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일 있냐?"
핸드폰을 귀에 붙인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중훈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은 20분전에야 알았다.
상처하고 혼자 사는 처지여서 한중훈은 가족이 없는데다 병원에 간다고 양문수한테만
말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무장이 최광규한테 정보를 팔았더군요."
강한이 말하자 한중훈은 듣기만 했다.
오전에 양문수의 전화를 받은 이야기부터 다 듣고난 한중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국상사 박부장이 최광규한테 잡힌것도 그놈 때문이었군."
"박부장은 잡힌지 사흘만에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양문수 이놈이 장난을 칠 줄 몰랐어."
한중훈의 목소리는 더 가라앉아서 강한은 겨우 들었다.
"그래, 그놈은 아직도 잡고 있나?"
"네, 변호사님."
"최광규한테서 얼마 받았다던가?"
"선금으로 1억을 이미 받았고 오늘 일이 잘되면 3억을 더 받기로 했다는군요."
"그놈이 오늘 내가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핸드폰까지 맡긴 기회를 잡았군.
내가 부주의했어,
자네 전화번호는 고객 명단에 끼어서 서랍 안에 놓았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얼마든지 들어와 찾아낼 수 있었을 거야.
이니셜을 적어 놓았거든."
"……."
"미안하네."
"아닙니다. 제가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놈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 팀원이 좀 고문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풀어주면 입 다물겠다고 애원을 합니다만 믿을 수가 없네요."
"저기."
한숨 돌린 한중훈이 물었다.
"안국상사 박부장이 잡혔다가 풀려났는데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고 했지?"
"네, 변호사님."
"어떻게 된건가?"
"맞았습니다."
그러자 한중훈이 입을 다물었으므로 강한도 잠자코 핸드폰을 귀에 붙인 채로 앉아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지하실에는 양문수가 늘어져 있었는데 황택수와 천상태에게 하도 맞아서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그때 수화구에서 한중훈위 목소리가 울렸다.
"난 그놈 만날 일이 없네."
"네 변호사님."
"그놈이 갈 데가 있는 것 같구만 그래."
"알겠습니다."
"몸조심하게."
"변호사님도."
그러자 한중훈이 풀석 웃더니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곳은 구리시에 위치한 안가로 대지가 300여평에 건평이 150평이나 되는 이층 저택이다.
강한이 아랫층으로 내려오자 황택수와 천상태가 시선을 들었다.
둘 다 묻는듯한 표정이었다.
"저놈을 정신병원에 넣어야겠다."
강한이 말했을때 먼저 황택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제일 낫죠."
"그럼 지하실에 며칠 가둬 놓았다가 손을 댑시다."
천상태의 표정은 마치 포도주 담그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훨씬 쉬워질 테니까."
강한의 시선을 받은 천상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웃었다.
"내가 그놈들한테 잡혔을 때도 맞고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끔찍했거든,
어쨌든 겪어봐야 도사가 된다니까."
그러나 강한은 물론이고 황택수도 웃지 않았다.
"이게 뭔데?"
여의도의 동남아민주발전연구소 소장실에 앉은 이복만이 앞에 놓인
노란색 서류봉투를 보며 물었다.
"예, CD가 들어있습니다.
지역구 당원이라면서 후원금을 20만원 동봉시켰더군요."
보좌관 유기철이 봉투 옆에 명함을 놓았다.
"이 CD는 의원님이 이루어 놓으신 지역개발사업 현황을 찍은 것이라는군요.
의원님 홍보용으로 직접 만들었답니다."
"허, 이렇게 고마울 수가."
감동한 이복만이 명함을 집어들고 보았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있는 명함이어서 조금 실망했지만 CD를 보고나서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틀어봐."
소파에 등을 묻으면서 이복만이 지시했다.
오전 10시반이다.
오늘은 국회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동민발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에 들러 반년 후로
다가온 총선에 대비하여 전략회의를 할 참이었다.
유기철이 DVD에 CD를 넣고는 소파 옆쪽에 앉았다.
소장실 안은 조용했으므로 유기철은 볼륨을 중간 정도로 놓았다.
그때 화면이 켜지면서 환하게 웃는 농부와 아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음, 화면이 깨끗하군."
이복만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으므로 유기철은 볼륨을 조금 높였다.
"그렇지. 처음은 저런 장면이 좋아."
머리를 끄덕이며 이복만이 말한 순간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억. 억."
신음이 귀를 울리면서 주방에 엎드린 여자를 뒤에서 공격하는 이복만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고, 아이고."
한번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이복만이 비명같은 신음을 지르더니
곧 온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이고. 나, 쌌다."
이복만의 일그러진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마치 바지에 오줌을 싼 초등학생같은 모습이었다.
"어, 저, 저."
그때서야 말문이 트인 이복만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쩍 벌어진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본인은 모르는 것 같았다.
놀란 것은 유기철도 마찬가지였다.
이복만의 모습이 처음 드러난 순간부터 유기철은 벼락을 맞은듯이
몸을 굳히고는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저, 저놈."
하고 이복만이 다시 화면을 가리킨 순간이었다.
화면에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이번엔 장면이 침실로 바뀌었는데 여자는 눕고 이복만은 위에 있다.
정상위여서 이번에도 이복만의 얼굴만 정면으로 찍혔다."
"어이구, 어이구."
방아를 찧으면서 이복만이 비명을 질렀고 이번에는 더 일찍 끝났다.
"악, 나, 쌌다."
이복만은 꼭 끝났을때 쌌다고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때 이복만의 부릅뜬 눈에 화면 오른쪽 밑에 6.5초라고 찍혀진 글짜가 보였다.
조금 전에는 놀라서 그냥 넘겼지만 그때도 밑에 숫자가 나타나 있었던 것 같았다.
"꺼! 꺼!"
그때서야 이복만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유기철이 엎어질듯 다가가 TV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는 5분쯤 방안에는 숨소리만 들렸다.
유기철은 시선도 들지 못했고 이복만도 치켜뜬 눈으로 TV만 노려보았다.
"이, 이놈들이."
겨우 이복만이 입을 열었지만 낮았다.
이복만은 이 장면이 어디에서 찍혔는지를 아는 것이다.
첫 장면이 나왔을 때부터 알아차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유기철은 물론이고 이복만도 소스라쳤다.
핸드폰 벨이었고 유기철의 주머니에 든 것이었다.
당황한 유기철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화면을 보았다.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메시지를 읽은 유기철이 돌덩이처럼 굳어진 얼굴로 이복만을 보았다.
"CD 보낸 사람이라는데요.
의원님하고 통화를 하고 싶다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이복만이 유기철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당황한 유기철은 시선을 내렸고 그 상태에서 5초쯤 시간이 흘렀다.
유기철이 쥐고있는 핸드폰도 조용했다.
이윽고 이복만이 유기철을 향해 말없이 손만 내밀었다.
핸드폰이 이복만에게로 옮겨진 순간 유기철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여보세요."
핸드폰을 귀에 붙인 이복만이 물기없는 목소리로 응답했을 때 저쪽에서 말했다.
"CD 다 안보셨지?"
"너, 누구냐?"
하고 이복만이 잇사이로 물었다.
내친 김에 이복만이 눈을 치켜뜨고서 요절을 낼듯이 말했다.
"너, 무사할 것 같으냐?
내가 누군지나 알고 있는 거냐?
내가 그런 장난에 넘어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섹스 6번 장면을 편집했는데도 총 소요시간이 44초밖에 안돼."
사내가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회 평균 7초3이야.
이건 100m 달리기라면 세계 신기록이겠지만 천하의 이복만이 1회에 7초라니.
지역구 유권자한테 웃음거리가 되겠어."
"네 이놈, 이 쳐죽일놈."
"그래서 1분도 안되는 장면 외에 나머지 20분을 채우는데 애먹었어.
하지만 재미는 있을 거야. 애무하는 장면도 찐하거든."
"너 이놈, 내가 네놈 협박에 넘어갈것 같으냐? 난 맹세코 네놈을 잡는다."
"이 CD를 5000장 쯤 복사해서 지역구하고 여의도에다 뿌릴 거야.
언론사,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청와대에도 당연히 보내야지."
"네놈은 날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난 두번 말 안한다."
사내의 목소리가 단호해졌으므로 이복만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때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대답만 해, 이 의원. 당신 나하고 협상 안할 거지? 그럼 간단해지는 거야.
나 3일 안에 그 CD를 다 뿌린다. 대답해."
"너, 이놈. 나한테."
"협상 안한다는 것으로 알겠다. 그럼 전화 끊는다."
"잠깐."
부르고 난 이복만이 이를 악물고는 이마에 덮여 있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너,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지금 열 받아서 그 조건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너, 아직 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살면 못쓴다. 내가 적극 도와줄 테니까…."
"닥치고 내말 들어."
사내가 차갑게 말을 잘랐으므로 이복만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당장 뭘 내놓으라는건 아냐.
이건 우리 사이의 담보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폭발성 담보물 말이지. 폭발장치는 내가 갖고 있고."
그리고는 사내가 짧게 웃었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여. '왜 이렇게 되었나?' 하고 지랄 발광을 하면 그냥 터질 테니까
결과나 겸손하게 받아들이란 말야. 그리고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자구."
"이봐, 너무 그러지 말고…."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직통 핸드폰 번호를 불러줘.
괜히 보좌관이나 비서 통했다간 소문만 퍼질 테니까."
그러자 이복만이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좋아."
번호를 확인하듯 읽어본 사내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다시 연락하지."
통화가 끊겼을 때 이복만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유기철을 보았다.
"이봐, 저 CD 빼내."
"예, 의원님."
다급하게 일어선 유기철이 CD를 빼내더니 우물쭈물했다.
어떻게 처리할까 망설인 것이다.
"그거, 이리내."
손을 내민 이복만이 다가온 유기철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이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구. 이건 자네하고 나만 알고 있어야 돼."
대성호텔 지하 한식당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이 허탕을 치고나서 사무장 양문수 마저
실종된 것을 확인했을때 최광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빌라가 털린 이후로 최광규는 만사 젖혀두고 강한을 추적했는데 안국상사의 세무자료까지
빼내 검찰에 고발하려던 일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강한을 잡으면 아주 없애버릴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무장 양문수를 이용해서 강한을 잡으려던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길길이 뛸 만도 한데 반응이 예상밖이었던 것이다.
언성도 높이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두 눈만 치켜뜨고 있는 것이 부하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경호실장 조철 만큼 최광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조철은 3년간 최광규를 그림자처럼 수행했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정도였다.
그런 조철도 최광규의 반응을 대하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다음날 오후에 최광규가 불렀을 때 잔뜩 긴장했다.
최광규는 웃다가도 살인을 할만한 놈이었다.
이렇게 가만 있다가 불쑥 터지는 경우가 위험했다.
방 안으로 들어선 조철에게 최광규가 말했다.
"강한이가 가져간 서류에 내 후원자 명단이 들어있어.
박순홍이가 후원금 내역까지 다 준건데."
조철은 숨만 죽였고 최광규의 말이 이어졌다.
"강한이 그놈이 그걸 쥐고 가만 있을 리가 없어. 아마 협박용으로 쓸 거다."
시선을 든 최광규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조철을 노려보았다.
"아마 하나씩 증거를 흘리면서 협박한다면 일이 터져도 날 도와줄 수가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회장님."
겨우 대답한 조철이 헛기침을 했다.
지금까지 조철은 계획을 입안하거나 하다 못해 방법을 건의해 본적도 없다.
오직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이다.
이렇게 어려운 때 머리를 써서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고 최광규에게
미안했으므로 조철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때 최광규가 말을 이었다.
"내 후원자 중 강한이가 가장 녹록하게 볼 사람 중의 하나가 남부 세무서장 윤경문이야.
그렇지 않겠나?"
"예, 그럴 것 같습니다."
"강한이는 윤경문한테 협박을 할 거야. 아마 돈을 내라고 하겠지.
안 내면 증거를 뿌리겠다면서."
"예, 아마도."
"그럼 우리가 윤경문이가 되는 거다."
"예?"
하고 조철이 되물었을 때 최광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가엾다는 표정을 짓고 조철을 보았다.
"윤경문한테 말하고 핸드폰을 받아와. 아마 얼른 내줄 거다."
"아, 예."
이마의 진땀을 손바닥으로 닦은 조철이 복창했다.
"핸드폰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사무실 전화는 일절 받지 말라고 해. 물론 강한이한테서 온 전화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윤경문이 대역을 할 놈을 골라서 교육을 철저히 시키도록."
"예, 회장님."
"아마 강한이는 윤경문이를 만나지도 못했겠지만 그럴 듯하게 보여야 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강한이를 만나는 거야."
"만나서 잡는 것이지요."
겨우 한마디 말을 이었지만 최광규는 못들은 척 말을 이었다.
"강한이 부하라도 한 놈 잡으면 전세가 역전된다.
우린 다시 그놈을 미끼로 강한이를 잡을 테니까."
"예, 회장님."
"알아들었으면 나가서 서둘러."
눈을 치켜뜬 최광규가 조철을 노려보았다.
"이 밥버러지 같은 새끼야."
"예, 회장님."
놀란 조철이 머리끝을 곤두세운 채 허둥지둥 방을 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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