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23 회
그렇게 3월이 지나고 4월도 그럭저럭 흘러갔다.
양광은 요동성에서 서쪽으로 사오십 리 떨어진 곳에 이동식 전각인 육합성(六合城)을 짓고
기거하면서 성곽 밖의 백성들이 사는 촌락을 둘러보고 사람들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문덕이 항복해올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훗날을 대비해 요동의 민심을 얻어두려고 애썼다.
양광은 마치 요동 정벌에 성공한 정복자처럼 행세했다.
그리하여 죄수를 사면할 것과 향후 10년 동안 조세를 감면하겠다는 조서를 미리 발표하고,
요동 전역에 수나라와 같은 군과 현을 설치한 뒤 이를 다스릴 관리까지 정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형부상서 위문승의 재상 임명이었다.
양광은 자신이 총애하던 장수 위문승을 육합성으로 불러 요동군의 재상으로 봉작한 뒤 말하기를,
“이제 곧 요동땅을 얻고 나면 그대는 이곳에 머물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흡사 봄볕이 만물을
찾아가듯이 요동의 미물들에게도 짐의 덕이 골고루 미치도록 하라.”
하니 감격한 위문승이 한술 더 떠서,
“요동은 지세가 험준하여 전답이 귀한 곳입니다.
마침 군사들이 이곳에 한가로이 유할 적에 그 힘과 시간을 빌려 산을 깎고 경작지를 개간한다면
민심도 얻을 뿐더러 황제 폐하의 밝은 덕업이 만천하를 뒤덮지 않겠나이까?”
하고 건의하여 당석에서 양광의 허락을 얻었다.
이때부터 육합성에서 요하에 이르는 남북간의 광활한 지역에서 군사들이 개미 떼처럼
동원되어 논밭을 일구는 대대적인 공역이 일어나게 되었다.
싸우러 온 군사가 남의 논밭까지 갈아주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졌다.
전쟁에 징발되어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싸움을 하러 온 군사가 창칼 대신 농기구를 들고
한뎃잠을 자가며 남의 땅이나 개간하고 있으려니 수나라 병졸들의 불만 하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북의 각 진영에서는 연일 군기와 군율이 무너져 참수당하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사기는 저하되어 언제부턴가는 군령도 먹히지 않았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요하를 건너 달아나기도 했다.
5월이 되면서는 전군의 식량 사정도 급격히 나빠졌다.
본래 수군이 노하와 회원의 2진을 출발할 때 말과 사람이 먹을 1백일분의 식량을
빠짐없이 나눠주고, 갑옷과 속옷, 무기와 화막(火幕) 등을 골고루 배급하였는데,
이것들의 무게가 무려 석 섬을 웃돌아서 웬만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버거운 중량을 견디지 못하였다.
양광은 군중에 영을 내리기를, 한 톨의 군량이라도 버리는 자가 있으면 베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병졸들은 감시하는 눈을 피해 다투어 구덩이를 파고 양곡을 묻어버렸다.
그 바람에 7월까지는 가야 할 양식이 5월에 접어들어 그만 서서히 동이 나기 시작했다.
비록 황제가 철저히 금지하여 발각이 나면 목이 달아날 판이어도 주린 군사들이 할 짓이라곤
백성들의 양식과 가축을 약탈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군사들을 동원한 대대적인 개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광과 수나라에 대한 요하 주변 민가의 평판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상황이 어려움에 빠지자 9군의 제장들은 저마다 양광이 기거하는 육합성으로 달려와서
어찌하여 군사를 일으키고도 싸움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양광은 할 수 없이 배구가 을지문덕을 만나 밀약한 바를 몇몇 장수들에게 털어놓았다.
신성 북방에 머물던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이 내막을 알고 나자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폐하께서는 을지문덕의 교활한 계책에 속으셨습니다!
이는 시일을 끌어 우리의 대병을 도탄과 궁지에 빠뜨리려는 술책이올시다.
지금이라도 총력을 기울여 성을 공격한다면 요동을 공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군이 면한 어려움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문술의 말에 이어 우익위대장군 우중문도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
“황문시랑 배구는 입만 살았지 실로 어리석기 한량없는 자입니다!
어찌 삼척동자도 능히 알 수 있는 간계에 속아 일을 여기까지 그르친단 말입니까?
을지문덕의 말은 공연한 헛수작이므로 털끝만큼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당장 각군에 출병을 명하여 더 이상 아까운 시일을 허송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 뒤를 이어 우효위대장군 설세웅과 탁군 태수 최홍승도 한목소리가 되어 배구를 비난했다.
그 중에 특히 최홍승은 등주에서 배를 내어 비사성을 공략할 수군(水軍)의 일을 거론하면서,
“지금쯤은 비사성의 북동간을 취하고 압록수에 이르러야 할 시깁니다.
그런데 아직도 요동을 수중에 넣지 못했으니
내호아 장군의 군대는 바다에서 고립될 공산이 큽니다.
당장 배구를 참하여 바닥에 떨어진 군사의 사기를 높이고
그 여세를 몰아 번개처럼 요동을 지나도록 하소서!”
하며 배구를 참수하자고까지 극간하였다.
양광은 장수들의 한결같은 말을 듣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기왕 날짜는 흘러갔고, 문덕이 약속한 두 달 기한이 목전에 다다랐으므로
완전히 미련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는 성성하게 날뛰는 제장들에게 뚜렷한 대답을 미룬 채
상서우승(尙書右丞) 유사룡(劉士龍)을 불러 계책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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