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3장 요하(遼河) 22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7. 09:26

제13장 요하(遼河) 22

 

 

 

“을지문덕을 만나보니 그가 어떤 사람이던가?”

“문덕은 소문에 듣던 바대로 과연 풍모가 수승하고 영웅의 기상을 갖춘 사람이온데 말에 조리가 있고,

강함과 부드러움을 고루 지녔으며, 능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 듯했습니다.

또한 그는 황제 폐하를 기리고 흠모하여 수나라의 장수가 될 뜻을 품은 지 오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는 오히려 폐하의 제업을 진심에서 고민하고 걱정하였나이다.

그가 요동의 민심을 거론하며 백성들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당부한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이었습니다.

또한 문덕은 황제께서 백만 대병을 낸 목적이 싸우는 데 있지 아니하고 숫자와 규모로 기선을 제압하여 항복을 받아내려는 데 있음을 벌써 간파하여 우리의 바라는 것과 피하려는 것을 손금 보듯

통연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하면 큰일이 아닌가?”

배구의 말에 양광은 기겁을 하며 물었다. 배구가 태연히 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하지만 과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문덕은 도리어 그 바람에 폐하께 마음을 뺏기게 된 듯했습니다.

그는 남의 나라 백성을 애호하고 긍휼히 여기는 폐하의 덕업을 높이 말하였을 뿐 아니라

마치 못에 갇힌 고기가 강을 그리듯,

눈 속의 초목이 해를 기다리듯 폐하를 흠모하고 존앙하게 되었노라고 흉금을 털어놓았습니다.”

“을지문덕이 정녕 그런 말을 하던가?”

“그렇습니다.”

놀란 가슴을 추스린 양광의 입이 돌연 귀 밑까지 찢어졌다.

“허허, 과연 을지문덕은 현명한 사람이구나!

소문에 듣기로는 우리 수나라를 싫어할 뿐 아니라 천품이 어리석고 우직한 데가 있어

쉽사리 절개를 바꿀 위인이 아니라고 하던데……”

“문덕이 수나라에 항거한 것은 선제 때의 일이요,

따라서 그와 관련된 소문 역시 모두 선제 때에 나온 것입니다.

그가 선제를 따르지 아니한 것과 폐하를 흠모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로,

본조에도 신을 위시하여 그 같은 예는 허다하지 않습니까?

신이 보기에 문덕은 그 뜻과 그릇이 커서 결코 소국의 장수로 머물지만은 않을 사람입니다.

요동의 일은 당분간 문덕에게 맡겨두시고 폐하께서는 그가 요동을 들어 항복하여 온다면

하사할 벼슬자리나 골라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쩌면 그가 은근히 탐내고 있는 것이 고구려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양광은 그제야 알 듯 말 듯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공이 현저하다면야 마땅히 그래야지.

어차피 요동을 다스리자면 새로운 제후를 정해놓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 뒤로도 배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문덕을 칭찬하자 양광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요동성 앞에 쳐놓았던 군진을 서쪽으로 물렸다.

그리고 남북의 각 군영으로도 사람을 보내어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공격을 자제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몇몇 장수들이 사유를 물었으나 양광은 이미 배구한테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문덕과 맺은 밀약을 밝히지

아니하므로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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