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21 회
그런데 그가 막 막사를 나오려고 할 때였다.
별안간 성주 고신이 칼을 차고 성큼성큼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고신은 가자미눈을 하고 배구의 위아래를 훑어본 뒤 대뜸 문덕을 향하여 불손한 태도로 소리쳤다.
“내가 저 교활한 내시놈을 상장군께 데려온 것은 단칼에 목을 베어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양광에게는 요동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저 자를 그대로 되돌려보낸단 말이오?”
그리곤 순식간에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더니,
“요동성의 성주는 나 고신이다! 네 감히 어디를 기어들었다가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려 하느냐?
우리 상장군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너를 용납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산 채로 돌려보낼 수 없다!”
말을 마치자 당장 목이라도 칠 험악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배구가 백변한 얼굴로 황망히 몸을 피하며,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양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다급하게 문덕을 찾았다.
“멈춰라!”
그때 문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막사 지붕이 내려앉을 정도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고함소리에 고신이 무춤하여 문덕을 바라보자 문덕이 노한 낯으로 고신을 꾸짖었다.
“싸움터에 사신이 오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대는 소위 나라의 이름 있는 장수로서 어찌하여
사신으로 온 이를 해쳐 누대의 조롱거리가 되려 하는가?”
그리고 문덕은 배구를 돌아보며,
“공은 나를 따라오시오.”
온화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친히 그를 데리고 성문 근처까지 배웅하였다.
창졸간 목이 떨어질 뻔한 배구가 정신없이 문덕의 그림자를 쫓아가며 생각하니
그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요,
따라서 문덕에게 더욱 신뢰가 가고 진심으로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헤어지면서 문덕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나의 세 치 혀만 믿으시고 성밖의 일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돌아가는 즉시 황제 폐하를 설득하여 진을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사람을 보내어 먼저 알리겠습니다.
황제의 곁에 이 배구가 있는 한 급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두 달이 아니라 석 달이라도 좋으니 사정에 따라 느긋하게 일을 꾀하십시오.
너무 급하게 서두르시다가 도리어 장군께서 해를 입지나 않을지,
그것이 두렵습니다.”
수나라 군영으로 돌아온 배구는 즉시 양광에게로 가서 을지문덕이 요동성에 있음을 아뢰고
성안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전하였다.
“두 달이라면 시일이 너무 길지 아니한가?”
잠자코 배구의 말을 듣고 난 양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배구가 고개를 저었다.
“요동은 지세가 험하고 민심이 고르지 아니한 데다 문덕이 휘하의 장수와 성주들을
한 사람씩 만나 그 마음을 뺏는 것이므로 결코 긴 시일이 아닙니다.
창칼로써 성을 무너뜨리는 데도 그만한 시일은 걸릴 것이지만 그렇게 성을 얻어도
다시 민심을 얻기에는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알 수가 없으니
오히려 문덕이 말한 기간은 짧다고 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 뜻을
가볍게 여기지 마소서.”
배구는 그사이에 일이 진척되는 바를 성루에 깃발을 꽂아 신호하겠다는 문덕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양광은 비로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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