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20 회
“요동의 일은 당분간 내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만 단지 공이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황제께 아뢰어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입니까?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공이 돌아간 뒤부터 나는 표나지 않게 한 사람씩을 만나서 그들의 본심을 알아볼 작정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나의 뜻에 동조할 기색이 엿보이면 살려둘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주살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참으로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다소 시일이 걸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올시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배구가 맞장구를 쳤다.
“또한 그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도 역시 내 말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역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일을 다 보도록 말미를 넉넉히 주십사는 것과, 각 성에서 군사를 물리고
비록 이쪽에서 싸움을 걸더라도 응전하지 말아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물론 그럴 리야 없을 테지만 만물을 애호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제업의 덕을 투항의 명분으로 삼는
마당에 수나라 군사들이 요동의 백성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이 생겨서도 곤란할 것입니다.
특히 요동은 지세가 험하고 민심이 거칠어 예로부터 다스리기 어려운 고장입니다.
반드시 내가 꾸미는 일 때문이 아니라 훗날의 수나라를 위해서도 황제께서는 이곳의 인심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이를 무시하거나 가벼이 여긴다면 수나라가 요동을 취하고 난 뒤에라도 반란을 꾀하는
무리 때문에 틀림없이 후회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배구는 이때 문덕의 말을 양광에 대한 지극한 충절로 받아들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장군의 말씀은 어느 한 가지도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 없으니
황제께서 기꺼이 허락하실 줄로 압니다.”
배구가 장담하자 문덕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 일에 이름과 목숨을 걸었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을지문덕은 변절한 고구려 장수로 망나니의 칼에 목숨을 잃을 것이요,
일이 잘되면 요동 정벌에 대공을 세운 수나라 장수로 만대에 그 이름이 오르내릴 뿐 아니라,
죽는 날까지 황제를 가까이서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같은 일이 먼저 파설되어 사전에 소문부터 나돈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지 않습니까?
공은 돌아가시더라도 황제께만 긴히 아뢰고 일이 성사될 때까지 당분간
이런 사실들은 비밀에 부쳐주시기 바랍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장군이 조금도 염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배구는 문덕을 안심시킨 뒤에 조심스레 물었다.
“황제께는 대략 그 말미를 어느 정도로 잡아 아뢰는 것이 좋겠습니까?”
“넉넉잡아 두어 달 기일이면 족할 것입니다.”
그는 문덕이 말한 날짜가 자신의 짐작보다 길었지만
그런 일로 문덕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항차 문덕은 스스로 목숨을 걸었다고 공언한 마당인 데다 일변 성주들을
일일이 한 사람씩 만나 의중을 확인하고 설득을 하자면 그만한 시일은 걸릴 법도 했다.
두 달이 아니라 석 달이라도 일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때 문덕이 말했다.
“하기야 나는 오늘 공과 헤어지면 당분간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사이에 마냥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궁금할 것이니 성주들과 담판을 짓는 대로
그 결과를 성루에 깃대를 세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황색 깃발은 뜻을 같이하기로 한 사람의 숫자요, 홍색 깃발이 오르거든
그 숫자만큼 목을 베었다고 생각하십시오.
나중에 일이 끝나면 백색 깃발을 올려 황제를 알현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문덕의 제안에 배구는 대단히 흡족해하였다.
“잘 알겠습니다. 장군께서는 아무것도 근심하지 마시고 모쪼록 휘하의 성주들을 잘 설복하십시오.”
“공의 조정에는 신하들이 많습니다.
혹시 이견이 분분하여 황제께서 공과 나의 밀담을 신용치 아니하신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조정의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배구는 다시 한 번 장담한 뒤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문덕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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