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3장 요하(遼河) 19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4. 19:36

 

제13장 요하(遼河) 19

 

 

 

“고구려 사람들은 대체로 목전의 손익에 초연하고 창칼을 앞세운 위협에는

좀처럼 굴복하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신망과 의리를 위해서는 능히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기질들이 있소.

나 역시 마찬가지지요.

만일 수군이 대병으로 위협하였다면 죽는 날까지 손에서 창칼을 놓지 않고 싸웠을 테지만

백성을 애호하는 황제의 크고 깊은 뜻을 읽고는 그만 마음이 움직여 이처럼 공과 무릎맞춤을 하고

앉아 있지 않소?”

배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문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이 비록 평상에는 나를 믿고 따라주었지만 내가 사전에 아무 의논도 없이

훌쩍 수나라로 간다면 뒤에서 나를 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오.

요동의 성주와 장수들은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나와 혈주를 나눠 마시며

결사항전을 다짐한 바 있고, 평소에도 장부가 한번 뜻을 세우면 사정이 궁할수록

이를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는 말로 깊은 신뢰를 쌓아온 터요.”

문덕은 후한의 고사에 나오는 ‘장부위지 궁당익견(丈夫爲志 窮當益堅)’이란 말을 인용하며

요동의 결연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배구의 표정이 굳어지자 문덕은 때를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

“그러니 자칫 경솔히 움직였다가는 그들의 나에 대한 신뢰가 도리어 미움과 증오로 바뀌어

더욱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소.

내가 혼자 움직여서 황제께 별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황제께도 송구스러울 뿐더러 나 또한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것이 낫소.

별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절개만 버려 수나라의 눈칫밥이나 얻어먹는 구차한 식객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소?

해서 만일 내가 움직이면 압록수 북방을 모두 들어 황제께 바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용단을 내리고

결행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오.”

그때까지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의구심을 품은 채 상대의 의중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배구가 돌연 뛸 듯이 기뻐하며 문덕의 손을 덥석 맞잡았다.

“과연 장군의 깊은 심중은 범인이 헤아리기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신다면 황제께서는 틀림없이 재상의 작위를 내릴 뿐만 아니라

어쩌면 대원왕을 폐한 뒤에 장군으로 하여금 의동삼사와 요동군공으로 삼아 고구려를

다스리게 할지도 모를 일이오!

평양의 장안성에 입성하거든 내 특별히 황제께 아뢰어 장군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도록 힘써보겠소!

황제께서는 아직 한 번도 내 말을 가납치 아니한 적이 없으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오!”

배구의 말에 문덕도 짐짓 희색이 만면하여 맞장구를 쳤다.

“일이 그렇게만 된다면 내 어찌 공의 은혜를 잊겠소!”

“한데 만일 요동의 다른 성주들이 끝까지 장군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땐 어찌하오?”

한동안 정신없이 좋아하던 배구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근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그것은 나로서도 아직 알 도리가 없지만 모든 이가 다 나를 따르기야 어렵지 않겠소?”

배구는 문덕의 대답에 더욱 신뢰가 갔다.

“장군께서 따로 무슨 묘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가까운 사람부터 만나서 은밀히 의향을 떠보아야지요.”

“장군을 따를 사람이 얼마나 될 듯합니까?”

배구가 문덕의 코앞으로 한층 무릎을 당겨 앉았다.

“본래 사람의 마음이야 크게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내가 황제께 감동하고 탄복한 점은 다른 이들도 그렇게 느낄 만한 것이요,

오로지 장부로서 섬기던 주군을 버리고 배신하는 것이 고민거리이겠지요.”

문덕은 잠시 사이를 두어 배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가 별안간 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뜻을 밝히고 앞장을 선다면 따르지 않는 사람보다는 따를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배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금 밝은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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