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16장 영웅의 조건 [11]
(346) 16장 영웅의 조건 (21)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오전 10시경에 이집트 정권은 내부 혁명을 일으켰다.
국가비상대책위원장 모하메드가 주도한 숙정, 이른바 ‘클린 혁명’이다.
혁명 작업은 전 세계에 보도되었는데 KBC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하메드를 인터뷰하는
특전을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대특종이어서 오태곤은 인터뷰 통보를 받자
호텔 로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오후 1시 반,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8시 반이 되었는데 한국 시청자는 TV 앞에 몰려 앉았다.
이미 두 시간 전부터 뉴스 속보로 예고한 터라 대부분의 술집, 가정에서는 KBC를 켜놓고 있다.
시청률 62%, 뉴스 속보로서는 초유의 기록이다.
그것은 미리 ‘동성’의 회장 서동수가 이집트 정권의 내부 혁명을 촉발,
또는 목숨을 건 기업가의 도전 정신, 또는 동성의 서동수 과연 죽었는가
혹은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등으로 사흘 동안 KBC가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쑤셔대었기 때문이다.
모두 오태곤의 작품이다.
오태곤은 영웅캠프를 위해 불을 지른 셈인데 인터뷰가 성사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이것은 영웅캠프 이전에 오태곤에게 ‘최고 취재상’의 타이틀을 보장해 주고도 남는다.
오늘의 인터뷰어는 오태곤, TV 화면에 모하메드와 나란히 앉은 오태곤이 한국어로 물었다.
“각하, 클린 혁명을 축하드립니다. 이 혁명의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지요?”
그러자 모하메드가 열띤 목소리로 혁명과 집권 세력의 목표,
이집트의 미래에 대해서 열변을 토해내었다.
그것이 5분 이상 길어졌지만 한국 시청자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지루한 시청자들은 잠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꼭 돌아왔다.
모하메드의 말이 끝났을 때 오태곤이 어깨를 부풀리며 물었다.
“각하, 한국인 기업가 서동수 회장이 지금 구속되어 있습니다.
서동수 회장이 이집트 클린 혁명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이것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조용해진 것 같았는데 사실이었다.
모두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그때 모하메드가 빙그레 웃었다.
짙은 콧수염과 턱수염 사이로 흰 이가 다 드러났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계기가 되었지요.”
통역을 맡은 교환교수 김 박사가 한국어로 번역을 하기도 전에
시청자의 90퍼센트 이상이 바로 알아들었다.
모하메드가 말을 이었다.
“서 회장의 용감한 행동이 계기가 되었지요. 그는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이것도 시청자의 대부분이 알아들었다.
술잔을 쥔 샐러리맨들의 눈은 벌게졌으며 집에서 혼자 TV를 보던 아주머니들은 목이 메었다.
방송으로 듣던 운전자들은 숨을 들이켰으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며칠째 농성하던 노동자들은
숙연해졌다.
그때 오태곤이 다시 물었다.
“서 회장을 한국 KBC의 영웅캠프에 출연시키려고 합니다. 그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때 모하메드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곧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는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제 모하메드의 얼굴이 엄숙해졌다.
“용기 있는 인간만이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진정한 영웅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습니다.
나는 서 회장의 몸을 부딪쳐온 그 용기를 존경합니다.”
시청자들은 오태곤의 콧구멍이 벌름거리는 것 따위는 보지 않았다.
그렇다. 영웅은 다 같다. 영웅은 어느 곳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그것이 진정한 영웅이다.
그때 KBC 시청률이 68.5%였다.
(347) 16장 영웅의 조건 (22)
서동수가 석방되었을 때는 다음 날 오전 9시경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4시, 미리 통보를 받은 KBC팀이 군 감찰대 앞에서
서동수를 맞는 장면이 전국으로 방영되었다.
그런데 환영 인사들이 거창했다.
서울에서 날아온 국회의원이 몇이나 되었던 것이다.
국회 외교위원장 고동배 의원, 야당 측 간사 조성팔 의원,
그리고 서동수의 고교 선배인 이대용 의원에 지역구 의원 백춘식이다.
제각기 명분이야 있었지만 서동수의 고향인 대전 지역구 의원 백춘식까지 온 것은 기가 막혔다.
지금까지 서동수는 고향이 대전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총선 투표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강한 국회의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태곤은 KBC 사장의 직접 지시를 받고 넷을 감찰대 앞 요지에 배치해줘야만 했다.
외교위원장은 서동수와 대담하는 장면을 요구했지만 오태곤이
사생결단의 자세로 막아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감찰대 정문을 나온 서동수가 화면에 비쳤을 때 시청자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동수는 면도를 깨끗하게 했고 옷도 단정했다.
시청자 대부분은 TV를 하도 많이 보아서 오히려 연출가 뺨칠 만한 재목이 많다.
이럴 때 서동수는 수염을 깎지 못한 덥수룩한 얼굴과 꾀죄죄한 차림으로 나와야
심금을 울려주는 효과를 낸다.
그것이 30여 년 닦아온 TV쪽 내공이다. TV 연속극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으로
나가야 대박이 난다는 것이 정설인 것이다.
그런데 서동수는 말끔한 용모로 나왔다.
8일 동안 수염을 길렀으면 볼 만했을 터였다.
그것을 내심 기대했던 오태곤도 서동수를 본 순간 실망했다.
그러나 10초쯤이 지났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전혀 연출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다.
그리고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었다.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은 초딩 3학년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이런 다큐는, 영웅 캠프만은.
“감상이 어떠십니까?”
자꾸 옆으로 붙으려는 이대용과 백춘식을 제지한 오태곤이 묻자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아유, 힘들었어요, 감옥이 다 그렇죠.”
“이집트 국가비상대책위원장께서는 서 회장님이 영웅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 칭찬을 받은 소감을 한 말씀….”
그때 앞쪽에서 작가 김은정이 두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생방송이에요’라고 적혀 있다.
그것을 본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는데 오태곤의 질문과 제법 어울렸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내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죠, 영웅이라니, 어림도 없습니다.”
서동수가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정색한 표정이다.
“세계 각국에, 아니, 한국 안에서도 묵묵히 일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하는
영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말문이 막힌 오태곤이 입만 벌렸을 때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 기회에 말씀드리지요. 난 영웅캠프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내가 영웅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데다 만일 내 말에 청소년들이 속아 넘어가서
나중에 실망하면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니까요.”
“아, 아니, 회장님.”
마이크를 끄고 싶은 오태곤이 말까지 더듬었고
접근할 기회를 노리던 국회의원 넷이 주춤했다.
그때 서동수가 발을 떼면서 말했다.
“인간은 제 분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저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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