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16장 영웅의 조건 [7]
(338) 16장 영웅의 조건 (13)
법인장 알리가 황망히 아질란을 따라 나갔으므로 룸에는 서동수와 경성건설 담당자들만 남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서동수에게 카림이 다가왔을 때는 10분쯤이 지난 후였다.
“법인장이 아질란과 함께 차를 타고 가셨습니다. 저한테 같이 식사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카림이 영어로 말하자 이영만과 최 부장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카림에게 말했다.
“저녁 준비 다 되었다면 식사를 하지.”
“다 되었습니다. 가시지요.”
대답을 들은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영만 쪽을 보았다.
“자, 이제 식사하십시다.”
밥맛이 있을 리가 없지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둘이 굳어진 표정으로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을 때 서동수가 식탁을 둘러보며 말했다.
“진수성찬을 버리고 간 아질란은 오래 못 살겠군.”
이것은 한국말이다.
“저기, 회장님.”
이영만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물론 한국말이다.
“이렇게 돼도 괜찮을까요?”
정중하게 물었지만 추궁하는 언사다.
그때 머리를 올린 서동수가 식탁 반대쪽에 앉아 있는 카림에게 말했다.
영어다.
“카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잘하셨습니다.”
바로 대답한 카림의 시선이 이영만과 최 부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두 분은 걱정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네. 아질란이 어떻게 나올 것 같나?”
“곧 아질란은 개발부에 돌아가 경성건설에 대한 조치를 내리겠지요.
영업허가 취소나 미수금 지급정지,
또는 건설자재나 기계 압류 따위의 조치 말씀입니다.”
이영만과 최 부장의 얼굴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졌다.
그러면 망하는 것이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이 두 분이 내가 왜 그랬는지 불안하신 모양이야, 자네가 설명해 드려.”
“예, 보스.”
카림이 검은 눈동자로 두 한국인을 똑바로 보았다. 둘은 긴장하고 있다.
“아질란은 부패했다는 소문이 나 있어요.
곧 감찰국의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것을 본인과 측근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카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적을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법인장도 아질란의 소문은 모르고 계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식당 안에는 카림의 지시로 그들 넷뿐이다.
그러나 목소리를 낮춘 카림이 말을 이었다.
“아질란이 경성건설에 대한 불이익을 주면 줄수록 경성건설은 깨끗한 회사가 됩니다.
아질란이 숙청되었을 때 말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카림이 묻자 이영만은 길게 숨부터 뱉었고 감동한 최 부장이 머리를 커다랗게 끄덕였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최 부장이 서동수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 계획을 갖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것은 한국말이다. 이영만도 서동수를 향해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무슨 지시를 하셔도 따르겠습니다.”
“자, 드십시다.”
서동수가 식탁에 쌓인 요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통째로 삶아 내놓은 어린 양이 커다란 은쟁반 위에 놓여 있다.
그때서야 음식 냄새가 맡아졌다.
(339) 16장 영웅의 조건 (14)
비서실장 유병선의 전화가 왔을 때는 다음날 오전 9시경이다. 한국은 오후 4시일 것이다.
“회장님, KBC에서 보내온 질의서에 답변을 채워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읽어 보시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유병선은 영웅캠프에 집중하고 있다.
활기 띤 목소리로 유병선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스피치 훈련 일정이 잡혔습니다.
교사는 오만홍 선생이라고 스피치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분으로 대선후보만 전문으로 교육시킨….”
“이집트 모하메드 국가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서 조사해보도록.”
서동수가 말을 끊자 유병선은 당황했다.
“예? 모하메드 국가비상대책위원장….”
“가족관계, 성격, 영향력과 세력, 그리고 외국과의 관계까지.”
“예. 회장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하는 방법이 좋은지를 말이야.
유 실장이 비밀리에 전문가를 모아 자료를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것이 시급한 일이야. 사흘 안에 알려주도록 해.”
영웅 캠프는 한 달 후다.
그러나 이집트 일을 놔두고 캠프에 참가하지는 않겠다.
전화기를 귀에서 떼는 순간 서동수가 결심했다.
오전 10시가 되었을 때 이영만과 최상호 부장, 박주신 부장 셋이 룸으로 들어섰다.
서동수가 부른 것이다.
룸에는 어젯밤에 중국과 서울 본사에서 도착한 비서 임청과 민혜영이 서동수를 도와주고 있다.
민혜영이 칭다오에 들러 임청을 만나 함께 이집트에 온 것이다.
화상통신은 여러 번 했지만 만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젯밤 늦게 서동수의 룸에 도착한 둘은 제각기 방을 하나씩 배정받았으므로 프레지던트 룸에
투숙객은 셋이 되었다.
그래서 회의실 테이블에는 여섯이 둘러앉았다.
서동수의 좌우에 임청과 민혜영이 앉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본 경성 측 남자 셋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지만
서동수는 간단하게 둘을 비서라고만 소개하고 본론을 꺼내었다.
“동성 법인은 이집트에서 연간 6억 불 물량의 수출입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경성건설의 대리인 역할까지 겸하게 되면서 정부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많아졌어요.”
놀란 셋이 얼굴을 굳혔지만 서동수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경성건설의 일을 맡게 된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입니다.”
“어, 어떻게 되고 있는데요?”
이영만이 주저하면서 물었으므로 다시 서동수가 대답했다.
“오늘 오전 9시에 이집트 개발부에서 동성 현지법인의 지난 3년간
통관 내역과 자금 입출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이 왔습니다.”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아질란은 동성을 흔들어 놓을 작정을 한 것 같습니다.”
말문이 막힌 셋이 눈만 끔벅였을 때 서동수가 임청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청, 어떻게 되었나?”
한국어로 묻자 임청이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네. 대사관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담당부대사가 분명히 받았다는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 임청이 입을 딱 닫았으므로 경성맨 셋은 어리둥절했다.
셋을 번갈아 보던 서동수가 곧 이유를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중국 대사관에 신고를 한 겁니다. ‘동성’의 모체는 중국이고 본사도 중국에 있어요.
이집트 개발부는 중국 회사를 건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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