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16장 영웅의 조건 [6]
(336) 16장 영웅의 조건 (11)
다음 날 오후에 경성건설의 책임자들이 도착했다.
부사장 이영만은 50대 초반으로 현장 전문가라고 했다.
이집트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부장 둘은 각각 계약, 행정 전문가로 한수정이 골라 보낸 것이다.
셋은 카이로 시내에 위치한 동성의 사무실로 찾아왔는데 회의실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이영만이 먼저 서류를 서동수 앞에 내밀었다.
벽시계가 오후 5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 대행 계약서입니다.”
경성건설과 동성의 대리인 계약서인 것이다.
영문으로도 번역되어 있어서 이집트 정부 측에도 제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계약서류 밑에는 또 한 종류의 계약서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수수료에 대한 계약이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사인을 하고 나서 이영만에게 말했다.
“제가 추진 중인 일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셋을 둘러본 서동수가 물었다.
“그동안 정부 측과 어떻게 접촉해 왔는지를 들읍시다.”
서동수가 탁자 위의 벨을 누르자 기다리고 있던 카림이 들어와 옆쪽에 앉았다.
“영어로 부탁합니다.”
서동수가 말하자 곧 이영만이 입을 열었다.
“개발장관 아질란에게 그동안 여섯 번이나 정식 공문을 보내 면담을 신청했지만 회신이 없습니다.”
“실력자라는 로비스트를 통해서도 접촉해 보았는데도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자금 결재 라인은 아시지요?”
서동수가 묻자 대답은 부장 하나가 했다. 최 부장이라고 소개한 사내다.
“예, 개발장관 결재가 나면 비서실장을 통해 국가비상대책위원회 모하메드 위원장의
결재를 맡으면 됩니다. 그럼 위원장이 재정위원에게 지시를 하는 것이지요.”
“…….”
“비서실장 키슈렉과 재정위원 할라비의 영향력이 세다고 들었습니다.”
알 만큼은 알고 있는 셈이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카림을 보았다.
“카림, 오늘 스케줄을 말씀드리도록.”
그러자 카림이 무표정한 얼굴로 셋을 보았다.
“오늘밤 8시 반에 개발장관 아질란이 회장님을 방문합니다.
지금 호텔방에서 영접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놀란 셋이 제각기 숨을 들이켰고 카림은 말을 이었다.
“오늘밤 경성건설의 대표 자격으로 회장님이 참석하실 것입니다.
보좌역으로는 누가 동행하시겠습니까?”
카림이 묻자 이영만이 바로 대답했다.
“저하고 최 부장 둘이 가겠습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이영만이 웃었다.
“제가 가야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영만의 검게 탄 얼굴을 본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카림의 설명이 끝났으므로 이영만이 서동수에게 말했다.
“오시자마자 면담을 성사시키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우리 현지 법인장이 한 겁니다.”
했지만 결국은 서동수의 능력이다.
그것도 줄을 잡아서 성사가 되었지만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과정상 어려운 점은 물론이고 아질란이
부정 의혹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때 카림이 서동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스, 가시지요. 가서 기다리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호텔에서 아질란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337) 16장 영웅의 조건 (12)
아질란은 60대 초반쯤으로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55세다.
전(前) 육군소장, 탱크사단장 출신이다.
둥근 얼굴, 예외 없이 배가 나왔다.
맞춤양복 차림에 손목에는 무거운 롤렉스,
방으로 들어선 아질란이 먼저 알리에게 다가왔다.
“살람 마리쿰.”
알리와 아질란이 서로의 볼에 입을 맞춘다.
한 번, 두 번, 그러고나서 아질란이 알리의 소개로 서동수와 악수를 나누었다.
웃음 띤 얼굴, 그러나 검은 두 눈이 탱크포의 구멍 같다.
이영만까지만 인사를 나눈 아질란이 소파로 안내되어 앉았다.
방은 프레지던트룸이어서 전에 힐러리가 묵었던 곳이다.
식당, 회의실, 대기실까지 구비되어 있다.
응접실의 푹신한 소파에는 아질란이 상석에, 좌우로 서동수와 알리가,
앞쪽에는 이영만, 최 부장이 앉았다.
카림과 아질란의 수행원들은 옆방인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고용된 남녀 종업원 여섯 명이 마실 것을 날랐고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찻잔을 든 아질란이 살찐 얼굴을 들고 서동수를 보았다.
“알리 사장의 체면을 봐서 여기 온 것입니다.
난 기업체 사람들하고는 사적으로 만나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장관님.”
속으로는 개뿔, 하면서도 서동수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사적으로 안 만나면 공적으로 만나 그따위 소문이 났단 말인가?
서동수가 지그시 아질란을 보았다.
“장관 각하, 경성건설은 완공시킨 지 2년이 지나도록 잔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자사항이 없는 데도 대금 지급이 지연되어서 회사는 부도가 날 것 같습니다.”
서동수의 목소리는 발음이 분명했고 컸다.
그래서 시중들던 종업원도 숨을 죽였다.
경성 측의 이영만과 최 부장은 바짝 긴장했지만
똑같이 이것은 식을 시작하기 전의 애국가 제창 같다는 생각으로 이해했다.
둘은 예비역으로 학군단 장교, 병장 출신이다.
아질란이 멀뚱한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그때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장관 각하, 이달 안에 잔금을 지급해 주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사실을 신고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한 인간이 동성법인장 알리였다.
“아니, 회장님.”
알리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져 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시면 안 되지요. 국제사법재판소라니요?”
이영만과 최 부장은 어깨를 추켜올렸다가 알리의 말이 끝났을 때에는 늘어져 있었는데
온몸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다만 이영만의 절망적인 표정과는 반대로 최 부장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다.
그때 아질란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했소? 국제사법재판소?”
“그렇습니다. 장관 각하.”
어깨를 편 서동수가 똑바로 아질란의 시선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경성건설의 명예를 살려야겠습니다. 장관 각하.”
“회장님, 왜 이러십니까?”
그렇게 낮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도 한국어로 물은 것은 최 부장이다.
40대 중반의 최 부장은 검게 탄 얼굴에 마른 체격이다.
토목부장, 이집트 아파트는 그가 다 지었다.
그때 아질란이 몸을 솟구쳐 일으켰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감히 누구 앞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이야기를 꺼내 협박하는가?”
눈을 가늘게 뜬 아질란이 소시지 토막 같은 손가락으로 서동수의 코를 가리켰다.
“경선건설이 그렇게 해서 잔금을 받을 것 같은가? 앞으로 이집트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거다.”
그러고는 아질란이 발을 떼었다.
끝났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3> 16장 영웅의 조건 [8] (0) | 2014.07.26 |
---|---|
<172> 16장 영웅의 조건 [7] (0) | 2014.07.26 |
<170> 16장 영웅의 조건 [5] (0) | 2014.07.26 |
<169> 16장 영웅의 조건 [4] (0) | 2014.07.26 |
<168> 16장 영웅의 조건 [3] (0) | 2014.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