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14장 주고받는다 [4]
(289) 14장 주고받는다 (7)
결재서류에서 시선을 뗀 서동수가 진관을 보았다.
30대 중반의 진관은 ‘동성’ 현지법인의 경리부장이다.
경리책임자인 것이다.
“진 부장, 회사용 기물 구입에 대한 기준이 있어?”
“없습니다. 사장님.”
진관이 바로 대답했다.
미국계 전자부품 회사에서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진관은 4개월 전에 동성에 채용되었다.
전(前) 회사가 폐업해서 반 년간 실직 상태였던 것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기준을 만들어야겠죠.
회사용 기물은 모두 중국산 제품을 구입하도록 하지.”
“예, 사장님.”
진관이 결재서류를 집더니 한쪽에 메모를 했다.
“비품에서 자동차까지 모두 말이야.”
“알겠습니다.”
“중국에서 번 돈은 중국에서 소비한다는 것이 내 신조야.”
서동수가 중국어로 한마디 한마디씩 분명하게 말했다.
적기를 멈춘 진관이 서동수를 보았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그것을 공지시켜 알리도록.”
자리에서 일어선 진관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경리부장은 심복이 맡아야 된다. 사주와 함께 온갖 금전거래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동수는 중국인이며 전혀 인연도 없었던 진관에게 회사의 자금 관리를 맡겼다.
그것은 숨길 것이 없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진관이 나가고 30분쯤이 지났을 때 역시 결재서류를 든 소천이 들어섰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사장님, 전 사원에게 메일로 공지가 돌았는데 읽으셨어요? 경리부장이 보냈는데.”
“아직 안 읽었어.”
소파 앞쪽에 앉은 소천이 결재서류를 내려놓고 무릎 위로 스커트를 당겼다.
흰 다리가 드러났고 행동이 의도적이지만 신선하다.
“사장님 지시인데요. 앞으로 동성은 모든 기물, 자재, 업무용 차량, 교통편까지
중국산을 이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조금 전에 말했는데 빠르군.”
“잘하셨어요.”
소천이 눈웃음을 쳤다.
“동성은 중국 회사로 인정받게 될 거예요.”
그렇다. 이미 동성은 ‘중국화’되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니 중국 회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서동수의 신조다.
그래서 ‘동성’ 본사의 직원도 한국인 국적은 서동수를 포함하여 디자이너,
영업 전문의 10여 명뿐이다. 95%가 중국인 직원이다.
그때 결재서류를 편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소천의 출장계획서였던 것이다.
소천은 계획서를 두 장 작성했는데 하나는 회사 제출용이었고
또 한 장은 서동수에게 보이는 것이다.
서동수가 잠자코 회사용 계획서에 사인을 하고는 다른 한 장은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은 서동수의 출장계획서다.
소천은 제 계획서의 첫 기착지에서 일정을 바꿔 서동수와 합류하게 될 것이었다.
“조사는 다 해놓았지?”
“네, 사장님.”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소천의 눈 밑이 조금 상기되었다.
“제가 하루 먼저 출발하게 되었으니까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방은 두 개 잡아놔.”
“알겠습니다.”
서동수의 시선이 다시 소천의 미끈한 다리로 옮아졌다가 떼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소천이 몸을 돌리더니
문을 향해 걸었는데 엉덩이가 더 흔들리는 것 같다.
(290) 14장 주고받는다 (8)
방콕에서 미얀마 양곤의 밍글라돈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경.
공항에는 레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양곤을 향해 출발하자 레이가 서동수를 보았다.
“사장님, 마이란 씨가 내일은 언제든지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오전 10시에 만나지.”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소천은 이미 아테네에 도착해 있을 것이었다.
양곤의 일정은 일박이일로 내일 오후에 출발해야만 한다.
레이는 한국산 쏘나타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서동수가 구입해준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서동수가 레이의 옆모습을 보았다.
콧날과 입술의 선이 깎은 것처럼 곱다.
“레이, 네 의견을 듣자, 마이란 씨의 호텔 공동설립건은 어떻게 생각하나?”
소천은 미얀마의 투자는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아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이가 잠깐 머리를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매물로 나와 있는 오션호텔의 가격이 너무 높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앞쪽을 응시한 채 레이가 말을 이었다.
“객실 120개짜리 호텔인데 수리 비용도 많이 들 것입니다.”
마이란의 제의를 레이에게 검토시키지도 않았으므로 서동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것이 사원의 자세다. 시킨 일만 하는 것은 로봇이나 같다.
“또 있나?”
그러자 레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투숙률이 마이란 씨가 보내온 투자계획서의 57%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제가 뇌물을 써서 지난 1년분 호텔 장부를 체크했더니 36%였습니다.”
“…….”
“그리고 내부 직원들의 부패가 심해서 모두 갈아 치우는데도 경비가 많이 들 것입니다.”
“조사를 많이 했군, 레이.”
“제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보스.”
보스라는 호칭에 서동수가 다시 웃었다.
“사장이나 선생님 호칭보다 낫다.”
레이는 이제 미얀마 지사장이다.
시내 사무실에는 직원 2명이 더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도 가장 문제는 마이란 씨하고의 동업입니다. 보스.”
서동수의 시선을 옆 얼굴에 받은 채 레이가 말했다.
“동업 관계가 증명이 되더라도 보스가 외국으로 추방되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면 호텔 경영권을 찾기 힘들어집니다.”
잠깐 머리를 돌린 레이가 서동수를 보았다.
“이것은 최악의 경우지요.
제 아버지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레이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는데 10년쯤 전에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고마워, 레이. 참조하겠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다시 의자에 등을 붙이면서 문득 물었다.
“대우 박 사장은 요즘 납기가 며칠씩 늦어지던데, 무슨 문제가 있나?”
“보고 드리려고 했습니다.”
레이가 다시 서동수를 보았다.
차는 이제 양곤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 사장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달 직원 임금을 주지 못해서 4일간 휴업을 했습니다.
저한테는 공장 수리 관계로 휴업을 했다고 했는데 제가 알아보니까
직원들이 작업 거부를 했더군요.”
임가공비를 선수금으로 지급해 주었는데 임금을 주지 않았다니.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현지 사무소가 없었다면 이런 일도 모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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