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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14장 주고받는다 [1]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53

<144> 14장 주고받는다 [1]

 

 

(283) 14장 주고받는다 (1)

 

 

동성 브랜드의 매장은 소규모다.

대부분이 10평 남짓에 직원 세 명 안팎이다.

동성은 동대문 상가에서 유행하는 제품을 시차를 두지 않고

동시에 중국 대륙으로 공수해와 판매했다.

그렇게 일정과 운송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동성 매장에 가면 한국에서 오늘 판매되는 제품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동대문의 디자이너 박세영의 아이디어를 서동수가 차용하여 사업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동업자로 참가했던 박세영은 또 다른 동업자였던 한영복의 정보를 팔아먹고

지금은 잠적한 상태다.

한영복마저 중국을 떠난 터라 서동수만 남았다.

이제 동성 매장은 중국 전역에 180개, 한 달 매출이 3천만 위안이 되었다.

한화로 60억 원이다.

동성 브랜드로 시작한 지 1년 반만의 결과다.

그동안 서동수는 ‘동양대리인’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본사로부터 실적을 인정받아

고정 대리인이 되었다.

동양에서 퇴직한 후에 오히려 동양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맺어진 셈이다.

그것은 또한 서동수가 동양에 재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양 직원들이 하지 않고 하지 못했던 일을 나가서 시도했던 것이다.

이른바 ‘틈새사업’이다. 동성 브랜드도 대기업, 대규모 유통회사의 손에 닿기 어려운

시장 틈새에 파고들었다.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사장실로 소천이 들어섰다.

소천은 동성의 기획실 과장이다.

기획실장이 공석인 터라 소천이 직원 둘과 함께 기획실을 이끌고 있다.

동성에 입사한 지 반년이 되어가는 데다 서동수의 업무 스타일에 익숙해진 소천이다.

앞쪽 의자에 앉은 소천이 물었다.

“사장님, 미얀마의 호텔 설립건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미얀마의 전(前) 장군 마이란이 레이를 통해 호텔 설립을 제의해온 것이다.

서동수가 소천에게 되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상황은 좋지만 불쑥 진행하기엔 위험 부담이 큽니다.”

둘은 지금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미얀마의 공장은 이미 궤도에 올라

박기출 사장은 동성 제품만 생산하는 데도 라인을 3배로 증설했다.

“미얀마도 좋지만 유럽 쪽에 더 좋은 상품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소천이 말을 이었다.

단정한 얼굴에서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열기를 띤 모습이 아름다웠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스, 터키, 이태리 등에 매물로 나온 호텔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경기가 풀리지 않아도 그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투자비용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서동수가 지그시 소천을 보았다.

“소천, 너, 몇 살이지?”

“스물일곱입니다.”

바로 대답한 소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민감한 여자다.

눈 밑이 붉어진 것도 같다.

서동수가 다시 물었다.

 

“유럽 쪽 호텔 자료는 언제까지 준비할 수 있지?”

“일주일이면 됩니다.”

“나하고 같이 출장갈 수 있지?”

“그것 때문에 나이 물으신 건가요?”

쓴웃음을 지은 소천이 머리를 기울였다.

“둘이 같이 다닌다면 소문이 날 것이고 회사 내부에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방을 따로 쓴다고 해도 말이야. 하루 이틀도 아닌 출장인데.”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이 여자 임원이 드문 이유 같다.”

그러자 소천이 정색하고 말했다.

“제가 따로 출장을 가서 만나면 안 될까요?”

 

 

 


 

(284) 14장 주고받는다 (2)

 

 

이은실의 전화가 온 것은 퇴근시간이 되어갈 무렵이었는데

서동수는 핸드폰을 귀에 붙이기 전에 달력부터 보았다.

이집트에 다녀온 후에 서너 번 전화만 했을 뿐이다.

그것도 이은실과 안부 전화만 하고 끊었다.

서동수도 일이 바쁜 데다 왠지 내키지 않아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7개월 가깝게 지난 것이다.

“웬일이야?”

인사가 끝났을 때 서동수가 부드럽게 물었더니 이은실이 바로 대답했다.

“오늘 시간 있으시면 만날 수 있어요?”

그동안 우명호는 파트너 김옥향을 서너 번 더 만났다고 했다.

금강산식당은 그런 대로 영업이 잘된다는 것이다.

잠깐 이은실의 알몸을 떠올렸던 서동수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그래, 저녁 같이 먹을까?”

“아뇨. 방 잡고 전화 주시면 갈게요.

오늘은 오후 8시 이후에는 아무 때나 좋습니다.”

사무적인 대화가 싫을 때도 있지만 호감이 가는 분위기도 있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가 될 것이다.

저절로 웃음이 번진 얼굴로 서동수가 대답했다.

“알았어. 방에서 9시쯤 전화하지.”

서동수가 시내 국제호텔에서 전화를 했을 때는

9시 10분이었는데 문에서 벨소리가 들린 것은 9시 40분이다.

금강산식당에서 국제호텔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으니

전화를 받고 바로 차 타고 온 셈이다.

“안녕하셨어요?”

인사를 한 이은실의 얼굴이 핼쑥해졌지만 더 교티가 풍겼다.

몸매도 더 날씬해진 것 같다.

소파에 앉은 이은실이 어색한 듯 모은 무릎 위에 두 손을 짚고는 외면했다.

그래서 농담을 뱉으려던 서동수가 냉장고로 다가가며 물었다.

“마실 것은 뭘 줄까?”

“아무거나요.”

오렌지주스 캔을 들고 온 서동수가 이은실 앞에 내려놓고 옆쪽에 앉았다.

“오랜만이네. 그렇지?”

“네.”

“오래되어서 네 몸을 잊어먹었어.”

안하려고 했다가 이은실이 굳어 있는 바람에 농담이 나와버렸다.

이은실의 무릎이 더 딱 붙여진 것을 보자 서동수의 말이 더 야해졌다.

“어때? 너도 내 그것 잊어먹었지? 두꺼운지, 긴지, 다 잊어버린 것 아냐?”

“…….”

“아, 네가 지르던 고함소리는 생각난다.”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이은실이 묻자 서동수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소파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이은실을 보았다.

“뭔데?”

“저, 한국으로 가고 싶어요.”

“한국으로?”

“네, 탈북하고 싶단 말입니다.”

“왜?”

“이렇게 살기 싫어서요.”

서동수는 입을 다물었고 이은실의 말이 이어졌다.

“평양에 아버지가 계시지만 새엄마하고 살아서 얼굴 안본 지 10년도 넘어요.

하나 있었던 오빠는 4년 전에 군에서 사고로 죽었고요.”

“…….”

“사장님하고는 요즘 만나지 않는 줄 다 알고 있어요.

오늘도 옷 산다고 나왔어요.

그러니까 사장님한테 피해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나?”

그렇게 물었지만 대답은 알고 있었다.

돈이다. 탈북도 돈이면 다 해결된다.

그때 이은실이 대답했다.

“돈을 모을 수가 없었어요. 돈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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