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14장 주고받는다 [5]
(291) 14장 주고받는다 (9)
오후 7시,
양곤의 한국관에서 서동수와 대우섬유 사장 박기출, 그리고 레이까지 셋이 둘러앉았다.
주위에는 손님이 많았고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샤부샤부에다 고기구이까지 시킨 박기출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해외의 한국 식당이 한국의 식당보다 맛이 있는 이유는 한국보다
몇 배나 더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죠.”
손으로 식당 안을 가리키며 박기출이 말을 이었다.
“한국 손님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몇 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손님을 빼앗기게 됩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손님이 많은 것을 보면 맛있는 식당이다.
한국에서도 맛있는 식당을 찾으려면 손님이 많은 곳을 골랐는데 대부분 들어맞았다.
요리가 날라져 왔을 때 서동수가 영어로 말했다.
“레이도 들어야 하니까 영어로 하시죠.”
“그래야겠군요.”
박기출이 영어로 대답하더니 레이에게 말했다.
“앞으로 레이 씨가 한국어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얼굴을 붉힌 레이가 대답했다.
샤부샤부는 맛이 있었다.
음식에 곁들여 소주를 마시면서 서동수가 박기출에게 물었다.
“지난달에 선적이 지연된 물품이 5건이나 되었는데 공장 수리는 다 끝났습니까?”
“네, 다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자신 있게 말한 박기출이 서동수의 잔에 소주를 채우면서 물었다.
“사장님, 오신 김에 말씀드려야겠는데 임가공비 선금을 주실 수 없습니까?
공장에 자동 벨트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인데요.
그럼 생산량이 15%는 증가되거든요.”
박기출의 영어는 유창했다.
술잔을 든 박기출이 서동수와 레이를 번갈아 보았다.
“45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시설은 약 100만 달러가 드는데 제가 55만 달러는 만들어 놓았거든요.”
“검토해 보지요.”
옆얼굴에 레이의 시선을 받으면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본사에 돌아가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임가공비 선금이란 계약분 이외의 자금을 빌려달라는 뜻이다.
박기출의 매월 임가공비가 10만 달러 정도였으니
4개월 반 분의 대금을 미리 달라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이다.
레이가 앞쪽을 향한 채로 말했다.
“보스, 어떻게 하실 계획이죠?”
임가공비 선금을 묻는 것이다.
서동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거절했을 경우의 상황을 검토해보도록.”
“알겠습니다. 보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어. 임가공비 선금은 양 측에 좋지 않아.”
“그렇습니다. 보스.”
“내가 잘 왔군. 직접 듣고 너한테서도 바로 조언을 받을 수 있어서 말이야.”
“제가 소문을 들었어요.”
레이가 말했으므로 서동수가 옆얼굴을 보았다.
가로등이 드문 양곤의 거리여서 레이의 얼굴 윤곽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슨 소문인데?”
“제가 보스의 현지처라는 소문요.”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지만 레이는 앞쪽을 향한 채로 말을 이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최 사장이더군요.
한식당의 한국분한테서 들었어요.
절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때 레이가 핸들을 쥔 채 서동수를 보았다.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292) 14장 주고받는다 (10)
차가 호텔 앞에 멈출 때까지 둘은 말을 잇지 않았다.
양곤은 미얀마의 전(前) 수도고 랭군(Rangoon)이라고 불렸다.
양곤은 ‘분쟁의 끝’이라는 뜻인데 랭군의 영국식 발음인 것이다.
차에서 내리면서 서동수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현지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방에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못 하겠군.”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레이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방에 따라 갈까요?”
레이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말 신경 안 씁니다. 보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레이는 주차요원에게 키를 넘기더니 다가왔다.
그러고는 서동수를 향해 웃었다.
“그런 소문은 당연한 것이죠.
우리 직원들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데요, 뭐.”
“너한테 불이익이 오는 거 아닌가?”
엘리베이터로 다가가면서 서동수가 묻자 레이는 옆으로 붙었다.
“오히려 일하는 데 편리합니다.
그런 소문이 없었다면 여러 곳에서 유혹을 해왔을 테니까요.”
엘리베이터 손님은 둘뿐이다.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레이가 말을 이었다.
“특히 박 사장 같은 분이 절 유혹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박기출이 제집에 가자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여자들을 준비해 놓았다고 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나란히 걷던 레이와 어깨가 부딪쳤다.
레이한테서 약한 향내가 맡아졌다.
독특한 향내다.
체취에 꽃향기가 섞인 것 같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마침내 레이에게 물었다.
“레이. 그래서 넌 내 현지처 취급을 받아도 좋단 말이야?”
“노 프러브럼.”
자르듯 말한 레이가 옆에서 발을 멈췄다.
어느덧 방문 앞에 다가섰기 때문이다.
서동수는 키를 꽂으면서 문득 이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간다면
온전하게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온전하게 나오지 못할 당사자는 레이다.
그러나 서동수가 문을 열고 말했다.
“들어가, 레이.”
레이가 먼저 들어섰고 뒤를 따른 서동수가 방 안의 불을 켰다.
“레이, 편히 앉아.”
소파를 가리키면서 서동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 앞에서도 현지처 행세를 해도 괜찮아, 레이.”
“감사합니다, 보스.”
레이가 소파에 단정하게 앉으면서 말했다.
“레이, 마실 것 줄까?”
“오렌지주스 주세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 캔을 꺼낸 서동수가 유리잔과 함께 들고 와 앞쪽에 앉았다.
잔에 주스를 따르면서 서동수가 정색하고 레이를 보았다.
“레이, 넌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다.
지성적인데다 내가 원하는 지사원의 자격을 갖춘 여자야.”
어느덧 레이도 서동수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혈기가 넘치는 남자다.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를 보면 성적 충동을 느끼는 남자란 말이야.”
그러고는 서동수가 레이의 시선을 받은 채 빙그레 웃었다.
“너는 이미 내가 준 대가 이상을 지불한 상태야.
그러니까 더 이상 내놓지 않아도 돼. 그걸 명심하도록.”
그러자 레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는 제 본의의 행동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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