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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13장 대한국인 (6)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47

<138> 13장 대한국인 (6)

 

 

(272) 13장 대한국인 (11)

 

 

슈나는 스물일곱,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지 4년이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 오마르도 영국 유학파였으니 대를 이은 셈이다.

호텔 아래층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슈나가 말했다.

“오빠 무스타파는 터키 여자하고 결혼해서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지요.

그곳에서 꽤 큰 건설회사를 해요.”

오마르는 일부일처제로 살았고 일남일녀를 둔 것이다.

식당 안은 서양인 손님들이 많았는데 남자들의 시선이 슈나에게로 모아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녀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같다.

그리고 요즘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기준도 같아졌다.

슈나의 시선이 출입구 쪽 테이블에 앉은 카림과 동료에게로 옮아갔다.

둘도 식사를 하는 중이다.

“24시간 경호를 받으시는군요.”

“여러 가지로 편리해서요.”

“경호비가 비쌀 텐데 빨리 끝내고 가셔야겠지요?”

포크를 내려놓은 서동수가 잠자코 슈나를 보았다.

슈나의 검은 눈동자가 똑바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1m 정도의 거리여서 눈동자 속의 제 얼굴이 보이더니

곧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서두르면 안 되지요.”

“룩소르에 가 보셨어요?”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커피 잔을 쥐었다.

“한 번 가 보았지요.”

“차로 가셨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유람선이 갑니까?”

“그럼요. 유람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그러고는 슈나가 지그시 서동수를 보았다.

슈나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다시 숨을 죽였다.

눈빛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동수는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고 자신했다.

이 눈빛은 호감, 호의, 성적인 유혹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시선을 떼지 않고 서동수가 물었다.

“룩소르는 왜 묻습니까?”

“유람선으로 가 보시지 않을래요? 저하고 같이요.”

오렌지 주스 잔을 든 슈나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었다.

“3박 4일 일정쯤 될 거예요.

유람선은 안전하니까 경호팀은 데려가지 않아도 되고요.”

“…….”

“경호팀 경비만으로도 유람선 특등실을 탈 수 있을 거예요.

룩소르 관광보다 유람선 여행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서동수는 문득 슈나의 입을 막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만해라. 슈나. 이건 제의가 아니라 유혹이다.

이 뜨거운 눈빛, 클레오파트라가 이런 얼굴이었을까?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 피부, 곧은 콧날 밑의 육감적인 입술,

시바 여왕의 후손일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소리 죽여 숨을 뱉은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슈나, 난 내일 요르단으로 떠날 예정이오. 티켓도 끊어 놨습니다.”

“그래요?”

슈나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덮어졌다.

“같이 유람선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서동수의 가슴이 다시 답답해졌다.

이것은 마치 100억 원짜리 저택이 5억 원 경매로 내놓아진 것 같다.

도대체 왜 저러는가?

정색한 서동수가 슈나를 보았다.

“슈나, 나한테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

“네.”

금방 대답한 슈나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혀졌다.

“시장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한두 시간으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요.”

슈나의 눈빛이 다시 뜨거워진 것 같았으므로 서동수는 당황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오해했다면 이런 실례가 없다.
 

 

 

 

 

(273) 13장 대한국인 (12)

 

 

그렇다. 슈나가 남자였다면 룩소르 여행 제의를 받았을 때 바로 할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눈빛이 뜨겁게 느껴지느니 어쩌느니 저 혼자 북치고 장구를 쳤다.

그때 슈나가 서동수를 보았다.

이제는 눈빛이 차분하게 느껴진다.

“서,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어요? 사업계획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야지요.”

어깨를 편 서동수가 바로 대답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맞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했던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오후 5시부터 시간이 있어요. 저녁식사까지 같이 하십시다.”

“방에서 상담하는 것이 낫겠네요.”

머리를 끄덕인 슈나가 냅킨으로 입술을 눌러 닦았다.

그것을 본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갑자기 목구멍이 막힌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붉은 입술, 흰 냅킨, 손톱의 검은 매니큐어가 섞여져 움직이는 것에도 충동을 받다니.

한심해진 서동수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눈꺼풀에 뭔가 씌었다.

그래서 멀쩡한 여자를 마녀로 보았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나 같은 놈들의 소행이라고 서동수는 자책했다.

“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가방을 집어든 슈나가 말했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만 끄덕였다.

다시 남자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슈나가 화장실로 간다.

단단한 엉덩이와 쭉 뻗은 다리, 발을 뗄 때마다 온몸이 한들거리며 움직였는데 선정적이다.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슈나의 매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저런 여자의 눈짓 한번, 말 한마디에 보통 남자는 이성을 잃는 것이다.

잠시 후에 다가오는 슈나를 본 서동수는 숨을 삼켰다.

슈나는 차도르로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차도르를 꺼내 걸친 것이다. 얼굴만 드러낸 차도르 차림이 된 슈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집에 가려면 이렇게 해야 시선을 끌지 않죠.”

앞쪽에 선 슈나한테서 은근한 향내가 맡아졌다. 체취가 섞인 독특한 냄새다.

“그럼 5시에 돌아올게요. 서.”

“기다리지요.”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에게 슈나가 검은색 차도르에서 빠져나온 손을 내밀었다.

서동수는 슈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쥐었다.

눈길이 마주쳤고 슈나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저녁에 봐요.”

슈나의 손이 빠져나가는 순간 서동수는 온몸이 찌릿한 느낌을 받는다.

조금만 방심해도 이렇게 끌려 들어간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동수의 시선은 슈나의 뒷모습에서 떼어지지 않았다.

차도르가 출렁이면서 잠깐씩 드러나는 엉덩이 쪽 흔적을 애타게 쫓고 있는 것이다.

오후 2시 반이 되었을 때 서동수는 호텔 로비에서 김상덕과 마주앉아 있다.

김상덕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씻지도 않은 듯 더러워진 얼굴을 들고 김상덕이 말했다.

 

“아, 글쎄, 이규황 씨 형이 대구 근처에 살고 있다는데 형편상 이곳에 오지 못한다는군요.”


서동수는 눈만 끔벅였고 김상덕이 갈증이 난 것처럼 냉수를 들이켜더니 말을 이었다.

“이규황 씨가 이혼했다는 말을 안 했단 말입니다.

형한테 들었는데 이규황 씨는 10년쯤 전에 이혼을 하고 생활비, 자식들 학비는

여기서 보내줬다고 합니다. 에이.”

입맛을 다신 김상덕이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대사관에서 시신은 한국 형한테 보내기로 했습니다.

전처하고 자식들은 연락이 안 되니 나중에야 알게 되겠구만요.”

이렇게 살다가 가는 한국인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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