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136> 13장 대한국인 (4)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45

<136> 13장 대한국인 (4)

 

 

(268) 13장 대한국인 (7)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옆쪽 테이블에 앉은 사내가 한국어로 묻는 바람에 서동수가 머리를 들었다.

오후 6시 반, 저녁을 먹으려고 호텔 식당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옆 테이블에는 두 사내가 앉았는데 둘 다 한국인 같다.

그중 뿔테 안경을 쓴 사내가 다시 물었다.

“사업 때문에 오셨지요?”

“예.”

그러자 사내는 빙그레 웃었다.

“딱 표시가 나거든요. 혼자 아니면 둘이 다니고 옷차림이나 행동이….”

그건 서동수도 알아볼 수 있다.

현지 거주인, 관광객, 사업 출장자까지 세 부류로 구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것은 기본에 든다.

서동수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40대로 현지 거주인 같다.

“카이로에 계십니까?”

서동수가 묻자 지금까지 가만 있던 검은 피부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거 봐. 내가 현지인 다 되었다니까.”

곧 사내들은 자신들을 소개했는데 검은 피부가 한국에서 출장을 나와

석달째 머물고 있는 김상덕, 먼저 말을 건 사내는 포트사이드에서 무역상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카이로에 들어온 이규황이라고 했다.

김상덕은 조명기구 회사의 영업부장인데 미수금 4백만 불을 받으려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출장비도 부담이 되어서 숙소를 시내 여관 수준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인 회사는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여기서 미수금을 받지 못하면

거지가 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조명기구 회사는 사장이 김상덕의 형이었으니 가족회사나 같았다.

김상덕의 사연이 끝나자 이규황이 이어받았다.

“난 포트사이드에 10년 있었는데 그럭저럭 살았지.

자식 둘을 영국 유학 보낼 만큼은 살았다는 거요.”

뷔페 식당이어서 그 사이에 김상덕은 음식을 가지러 갔고 서동수는 양고기를 씹으면서 듣는다.

경호팀원 하리드는 입구쪽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쪽을 힐끗거리는 중이다.

김상덕 등은 하리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이규황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권이 바뀌면서 난리가 일어났을 때

카이로에서 한탕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포트사이드 장사도 내리막길인데다 마누라하고 자식들은 영국에 있지.

내 나이 마흔여덟이야.

다시 한 번 도약할 시기라고 생각했단 말요.”

“그래서, 뭐 좀 잡으셨습니까?”

흥미가 일어난 서동수가 묻자 음식을 들고 와 앉은 김상덕이 대신 대답했다.

“잡기는, 정권 실세라고 장군 한 놈을 잡았다가 그놈이 숙청당하는 바람에

죽그릇이 엎어져버렸지.”

“그놈이 재기만 하면 난 순식간에 기반을 굳혀. 그때 자네 미수금도 받아줄 테니까.”

그때 김상덕이 서동수에게 물었다.

“소속이 어디쇼?”

“동양에이전시올시다.”

“아.”

둘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규황이 먼저 말했다.

“이번에 완전히 박살이 났지요? 그걸 수습하러 오셨구먼.”

현지인의 정보가 가장 정확하긴 하다.

서동수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이제는 지구 구석구석까지 한국인이 파고들었다.

거기서 한국인끼리 서로 피 튀기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만약 둘이 경쟁업체였다면 서동수는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다.
 

 

 

 

(269) 13장 대한국인 (8)

 

 

밤 10시, 올드 카이로의 제법 번화한 거리에서 서동수는 카림을 따라 걷는다.

허름한 셔츠에 바지 차림이어서 뒤에서 보면 근처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거리는 좁고 좌우 건물은 낡았지만 상가여서 행인이 많다.

관광객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대부분이 서양 남녀다.

카림이 옆쪽 골목으로 꺾어지더니 눈으로 앞을 가리켰다.

이곳은 주택가 같다.

상점 간판이 없는 대신 건물 베란다마다 빨래가 가득 널려 있다.

“왼쪽 건물 302호실이요. 지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카림이 말하더니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지요.”

“한 시간쯤이면 될 거요.”

서동수가 왼쪽 건물로 다가가며 말했다.

거리의 공터에서 차와 팀원 한 명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불도 켜놓지 않아서 어두웠지만 계단 쪽의 불빛으로 앞은 보였다.

퀴퀴한 냄새에다 고기 비린내까지 섞여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가 진정되었다.

시멘트 계단은 지저분했다.

사방에서 소음이 울렸지만 계단과 복도는 텅 비어 있다.

이윽고 3층 복도로 들어선 서동수는 오른쪽 문에 흰색 페인트로 써진 302를 보았다.

오마르의 은신처다.

벨이 보이지 않아서 노크를 했더니 금방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여자다.

그것도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정도의 미인. 어두웠던 복도가 갑자기 환해진 것 같다.

그때 여자가 다시 말했다.

“제가 오마르의 딸 슈나입니다.”

유창한 영어다.

여자가 비켜섰으므로 서동수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서동수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집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깨끗했고 컸다.

안으로 들어서자 오마르가 두 손을 벌리며 다가왔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잘 오셨습니다. 미스터 서.”

“만나서 기쁩니다.”

명함을 건네준 서동수가 들고 온 술과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선물이다.

오마르가 기쁜 얼굴로 받더니 슈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내 딸 슈나가 보좌역을 맡고 있습니다. 내 대를 이어갈 자식이죠.”

이집트는 경제력으로 중동 산유국가에 뒤지지만 정치, 문화면에서는 리더 역할을 해왔다.

중동의 유력자들은 카이로에 유학을 다녀온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집트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하다.

그때 슈나가 서동수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오신다고 해서 시장 동향과 오퍼를 작성해 놓았습니다.”

서류를 받아본 서동수가 감탄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슈나는 현 시장상황을 분석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종류별 오더까지 만든 것이다.

금액은 5백만 달러 정도였지만 반년 가깝게 거래가 끊겼던 이집트 시장이다.

본사에서는 크게 반길 것이다.

서동수가 오퍼시트를 끝까지 읽고 나서 머리를 들었다.

“90일 외상거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본사에서는 오더를 포기한 상태거든요.”

오퍼시트에 신용장 거래조건이 90일 외상거래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수입업자는 물품을 인도받고 90일 후에 대금을 입금 시킨다는 방식이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오마르가 머리를 끄덕였다.

“정국이 안정될 때까지는 현금거래 방법을 쓰도록 노력해보지요. 이해합니다.”

슈나는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오마르가 이쪽 반응을 떠본 것 같다.

상담에서는 급하게 서두르는 쪽이 언제나 진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8> 13장 대한국인 (6)  (0) 2014.07.26
<137> 13장 대한국인 (5)  (0) 2014.07.26
<135> 13장 대한국인 (3)  (0) 2014.07.26
<134> 13장 대한국인 (2)  (0) 2014.07.26
<133> 13장 대한국인 (1)  (0) 201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