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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장 대한국인 (5)

오늘의 쉼터 2014. 7. 26. 08:46

<137> 13장 대한국인 (5)

 

 

(270) 13장 대한국인 (9)

 

 

숙소인 게지라섬의 알 게지라 셰러턴 호텔로 돌아오던 중에 길가에서 불타오르는 차량을 보았다. 앰뷸런스가 세워졌고 군경이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을 보면 폭탄 테러다.

“정부 관리나 또는 반군 차량이겠지요.”

서동수의 표정을 본 카림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특수부대 소령으로 제대했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모두 전에 내 동료였으니까요.”

그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어느 한쪽에 줄을 대었다가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난리통에는 가만있는 것이 낫다고 서동수가 어릴 적에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로 말해주었다.

6·25 때 인민군이 내려왔을 때는 군, 경, 공무원, 지주 가족이 죽고, 국군이 수복하면

다시 부역자 가족이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있었던 사람들만 살았다고 했다.

카림이 말을 이었다.

“오마르는 정부 측에서 수배자 리스트에 올렸지만 곧 풀린다고 합니다.

오마르는 정부 측에도 친구가 있더군요.”

“그렇군요.”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가만있는 것보다 양 측에 친구를 갖고 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되면 두 배로 위험해진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카림과 함께 로비를 질러가던 서동수가 걸음을 멈췄다.

로비 구석의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김상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수금을 받으려고 온 조명회사 부장이다.

한 손에 핸드폰을 움켜진 김상덕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으므로 주춤거리던 서동수가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카림이 비켜서더니 기둥 옆으로 다가가 서동수를 주시했다.

서동수가 바짝 다가가 섰을 때에야 김상덕이 눈동자의 초점을 잡더니 알아보았다.

“아, 서 사장님.”

“이 시간에 혼자 뭐 하십니까?”

김상덕의 숙소는 시 북서쪽의 모한디센 지구다.

차로 30분이면 갈 수는 있다.

그때 김상덕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이규황 씨가 카페 안에 있다가 폭발 사고로 죽었답니다.”

서동수는 숨을 멈췄고 김상덕의 말이 이어졌다.

“이규황 씨하고 같이 일하던 이집트 사람한테서 연락을 받았어요.”

“…….”

“누구하고 만나고 있었는데 어떤 놈이 폭탄을 던졌다는 겁니다.”

“이거, 어떻게 하죠?”

“글쎄, 나도, 이거.”

손에 쥔 핸드폰을 들어 보인 김상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국에 있다는 이규황 씨 가족 전번도 모른단 말입니다, 내가.”

“…….”

“여기서 석 달 전에 만나 수십 번 같이 밥 먹고 술도 마셨지만 가족 전화는….”

“대사관은 알게 되겠지요.”

“그, 그거야.”

눈동자의 초점을 잡은 김상덕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대사관한테만 맡기기에는 내가 너무 미안하고 그 양반이 불쌍해서.”

“…….”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죽어 나가는 것이 너무 허무하단 말이요.

내가 그 양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도 가슴이 미어지는구먼.”

“…….”

“몸뚱이가 다 찢어져서 머리만 찾았다고 합디다.”

그러고는 마침내 김상덕이 눈물을 흘렸다.
 

 

 

(271) 13장 대한국인 (10)

 

 

“방으로 들어선 슈나가 히잡을 벗자 풍성하게 파마한 머리가 드러났다.

히잡은 이슬람계 여성이 머리카락만 감추는 헤드스카프다.

오전 11시, 슈나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방문했다.

“슈나,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서동수가 정중한 표정으로 말했더니 슈나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고맙습니다. 서.”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슈나에게 소파에 앉기를 권하고 나서 물었다.

“슈나, 뭘 드실래요.”

“제가 찾아 먹어도 되죠?”

“물론이죠.”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슈나가 냉장고로 다가갔다.

슈나는 몸에 딱 붙는 검정 원피스를 입었다.

그래서 풍만한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등의 곡선, 치솟은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엉덩이 부분의 스커트는 터질 것만 같다.

그리고 무릎 15센티 정도까지 올라간 원피스 덕분에 미끈한 두 다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냉장고 문을 연 슈나가 뭘 꺼내느라고 허리를 숙였기 때문에 엉덩이가 더 탱탱해졌다.

숨을 삼켰던 서동수가 결국은 외면했다.

그때 오렌지주스 캔을 꺼내 든 슈나가 서동수를 보았다.

똑바로 선 슈나의 키는 1미터70쯤 될 것이다.

서동수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고 현기증이 났다.

아까부터 슈나가 풍긴 강한 향내가 방안을 뒤덮고 있다.

“서, 이것 마시겠어요.”

“마음대로.”

다시 서동수의 옆을 지나 소파로 가면서 슈나가 말했다.

“어젯밤 아버지하고 검토를 해보니까

1차 오더는 3백만 달러 정도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현금 준비가 그것밖에 안 됩니다.”

소파에 앉은 슈나가 말을 이었다.

“물론 2차 오더는 물량이 많아지겠지요.

그동안 수입을 못했기 때문에 제품은 금방 소진될 테니까요.”
무바라크 시절에 현지 지사를 통한 오마르의 수입량은 연간 1천만 달러 정도였다.

전체 수입량의 16퍼센트 수준이다.

앞쪽 자리에 앉은 서동수가 슈나를 보았다.

초승달 같은 눈썹 밑에 눈동자는 흑수정 같다.

곧고 높은 콧날과 단정하지만 육감적인 입술, 갸름한 얼굴형에 피부는 티 한 점 없이 매끄럽다.

신(神)은 아랍 땅에도 이런 미인을 창조하셨다.

“슈나, 아버지 오마르 씨와 무역업을 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3년 됐지요.”

검정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 세 개가 서동수 앞에 펼쳐졌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과 스커트, 눈동자와 머리칼이 모두 검정이다.

입안의 침을 삼킨 서동수가 다시 묻는다.

“참고로 묻겠습니다. 슈나 씨는 결혼했습니까?”

“물론 미혼이죠.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개방된 국가 축에 들지만

와이프를 이렇게 호텔방으로 혼자 내보낼 정도는 아니에요.

미혼이니까 찾아왔죠.”

“그렇군요.”

“저도 참고로 묻겠는데 미스터 서는 결혼하셨나요?”

“이혼했습니다.”

서동수가 이혼했다는 말을 이렇게 거침없이 뱉은 것은 처음이다.

슈나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일곱 살 된 딸이 하나 있지요. 그 딸을 내가 키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할머니,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키우니까 별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서동수는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도 미처 못하고 있다.

물론 바로 깨닫게 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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