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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장 독립 6

오늘의 쉼터 2014. 7. 26. 07:40

<105> 10장 독립 6

 

 

(206) 10장 독립-11 

 

 

 

공장장실로 들어선 서동수가 윤명기를 보았다.

오전 10시 반, 책상에 앉아 있던 윤명기가 눈으로 앞쪽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잠자코 소파에 앉은 서동수에게 윤명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면서 물었다.

“집 옮겼다고? 어디로?”

“해산(海山) 아파트입니다.”

“거긴 대형 아파트라던데.”

앞쪽에 앉은 윤명기가 다시 묻는다.

“딸하고 두 식구가 살기엔 너무 크지 않겠어?”

“어머니하고 형수, 그리고 형님의 두 아이까지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그렇구나.”

눈을 크게 떴던 윤명기가 곧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래. 어머니, 형님 가족하고 같이 살면 아이가 외롭지 않겠지.”

“형님 가족까지 이용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윈윈 아닌가? 서로 좋은 점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공장장님.”

정색한 서동수가 윤명기를 보았다.

윤명기가 서동수의 표정을 보더니 눈썹이 모아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저, 회사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털어놓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묻는 윤명기의 목소리도 굳어져 있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미 성동실업을 한영복 사장하고 합작 투자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칭다오에 의류 매장을 2개 개업했는데 곧 3개를 더 늘릴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까지 중국에 15개의 매장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

“사직 날짜는 공장장님이 본사로 옮기신 직후로 잡고 있습니다.”

“이 자식이.”

이 사이로 말한 윤명기가 외면하더니 곧 길게 숨을 뱉었다.

“네가 가만 있을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았어. 하지만 충격이군.”

“배신하기 싫었습니다.”

“넌 이미 배신한 거야, 인마.”

머리를 든 윤명기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그러나 표정이 굳어져 있지는 않다.

“그리고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네놈하고 손을 잡은 나도 책임이 있어.”

“죄송합니다.”

“서로 이용한 것이지.”

말을 자른 윤명기가 소파에 등을 붙이더니 불쑥 묻는다.

“한영복과 손을 잡았다고? 그 사람을 믿고 있는 거냐?”

“서로 의지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한 사장의 생산 노하우와 자금력을,

그리고 한 사장은 제 영업과 기획력을 말씀입니다.”

“너, 알고 있어?”

상반신을 편 윤명기가 다시 물었다.

“한 사장이 과거에 두 번 동업했다가 동업자하고 갈라선 사건 말이다.”

“모릅니다.”

“동업관계를 비밀로 해서 몇 명만 알고 있는 일인데 한 사장이 알맹이를 빼먹고

동업자를 배신한 거다. 난 동업자한테서 직접 들었다.”

그러더니 윤명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자식, 진짜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너, 나한테 털어놓은 게 잘했다는 생각 안 드냐?”

 

 

 

 

(207) 10장 독립-12 

 

 

 한영복에 대해서는 회사를 그만둔 이인섭한테서 들은 것이 대부분이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이며 수백억대의 자산가, 국교수립 전부터 중국에서 사업을 한 중국통 등이다.
 
서동수는 정보력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윤명기로부터 보상을 받은 셈이 되었다.
 
인생사는 물론 사업에서도 하나를 내놓으면 꼭 다른 보상이 온다는 서동수의 신조(信條)가
 
다시 한번 맞았다.

그로부터 보름쯤이 지난 날 아침에 화란이 다가와 말했다.

“부장님, 오늘 저녁에 대아건설 호 사장하고 약속이 있으십니다.”

대아건설은 이번에 공장 창고 건설을 맡았는데 공사비가 1500만 위안으로 한화로 27억 원이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화란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눈에는 더 생기가 띠워진 것 같다.

“저도 따라갑니까?”

“그래야지.”

그렇게 대답한 순간 서동수는 화란에게는 끝까지 새 사업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이미 화란은 오염되었다.
 
한마디로 돈맛을 안 것이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이곳을 떠나 눈보라가 휘날리는 벌판에서
 
함께 싸우자고 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수작이다.

놔둬라,
 
한영복의 진면목을 알게 된 마당전장(戰場)은 더욱 살벌해졌다.
 
일찍 퇴근을 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더니 미혜가 뛰어나와 반겼다.

“아빠, 오늘 노래 배웠어.”

“어, 그래?”

서동수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어머니가 웃었다.

“나는 미혜한테 배웠단다.”

“재미있어요, 노래가.”

형수 박애영이 거들었다.
 
미혜는 사립유치원에 다니는데 국제학교다.
 
외국인 자녀가 많아서 시설도 좋았고 정미가 다니는 사립초등학교 수준도 월등했다.

미혜와 정미의 등하교와 집안일을 돕는 가정부까지 채용했으므로
 
집안은 어머니와 미혜, 형수 박애영과 정미에다 가정부 둘,
 
서동수까지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산다.
 
그리고 곧 정미의 오빠 영진도 이곳 사립초등학교로 전학을 올 것이었다.

“저, 다시 나가야 돼요,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에게 말하자 형수 박애영이 대신 대답했다.

“그럼 들어오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세요. 미혜는 노느라 정신없는데.”

아닌 게 아니라 미혜는 아빠한테 잠깐 안겨 있더니 정미하고 제 방에 들어가 버렸다.
 
둘이 우애가 좋아서 모두 만족하고 있다.

“아뇨, 그래도 미혜 얼굴은 보고 나가야지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이고, 이놈아.”

혀를 찬 어머니가 다가와 앞쪽 소파에 앉았다.
 
이제 어머니는 밭일하는 할머니 차림이 아니다.
 
면바지에 카디건을 걸쳐서 어엿한 사모님 모습이다.
 
어머니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진작 이랬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니,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는 웃으려다 말았고 박애영은 주방 입구에 서서 시선만 주었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떤 이유를 대든지 헤어지게 되어 있어요.
 
저녁에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서동수의 생활철학이다.
 
한번 끝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마치 흘러간 시간이나 같다.
 
새로 시작하되 전혀 달라야 한다.
 
연연하면 저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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