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10장 독립 3
(200) 10장 독립-5
“난 단숨에 무엇을 이룰 생각은 없어. 그리고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말했다.
카페 안은 떠들썩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안정감을 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밤 11시,
서동수와 진영아는 아파트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진영아의 아파트 근처다.
조금 전에 진영아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딸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진영아 씨도 명심해야 될 거다.
차곡차곡 쌓아 가자는 뜻이야.
그러려면 시장을 더 깊게, 더 넓게 공부하고 나 자신을 단련시켜야 돼.”
“알았습니다.”
서동수의 시선과 마주친 진영아가 맥주잔을 들더니 벌컥이며 삼켰다.
단숨에 잔을 비운 진영아가 잔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사장님이 자꾸 저를 불러 교육을 시키시는 의도도 알았구요.”
“그것이 무슨 의도인 것 같으냐?”
“저를 사장님 심복으로 만드시려는 것이지요.”
“오버하고 있군.”
“틀렸나요?”
진영아가 다시 잔에 맥주를 5분의 4쯤 따르더니 위스키로 나머지를 채웠다.
그들은 지금 폭탄주를 마시고 있다.
이 카페에서 벌써 세 번째 만나고 있는 터라 진영아의 태도도 자연스럽다.
서동수가 잠자코 제 술잔을 들더니 폭탄주를 삼켰다.
진영아는 전장에서 싸우는 전사(戰士)다.
전장, 즉 시장을 모르면 작전계획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가게를 찾아갔고 진영아로부터 시장 상황을 들어왔다.
그것이 밑바닥에서부터 단련해온 서동수의 장점이다.
공장 기술자였다가 사장이 된 한영복과 사고(思考)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잔을 비운 서동수가 숨을 고르더니 진영아를 보았다.
“내가 너한테 공을 들이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어?”
“네, 사장님.”
술잔을 든 진영아가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웃었다.
입술 끝도 함께 올라가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아이하고 엄마까지 데려온 놈이라 쉽게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생각했니?”
“2호점장 미스 양은 박 실장 심복이죠.
그쪽을 견제하려면 제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옳지, 그런 관계가 있군.”
“저를 여자로 보시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가끔 사장님 눈빛이 수상하긴 하지만요.”
“그런가?”
그때 진영아가 다시 폭탄주를 마셨다.
지금 넉 잔째를 마시고 있다.
진영아가 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서동수가 말했다.
“첫째 넌 시장을 보는 눈이 예민했고 시야가 넓었어.
난 네 보고를 듣고 마음에 들었다.”
진영아가 이제는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는 말을 잇는다.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알게 돼.
장래성이 있는 놈,
일을 맡길 만한 놈인가를 말야,
난 너한테서 그걸 본 거야.”
“….”
“그게 심복으로 키우려는 의도로 생각했는지,
난데없는 박 실장까지 끼워 넣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는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박 실장이란 박세영을 말한다.
박세영이 기획실장인 것이다.
그때 진영아가 말했다.
“절 믿으셔도 돼요. 그리고….”
심호흡을 한 진영아가 서동수를 보았다.
“가끔씩 절 여자로 봐 주셔도 돼요.
그때마다 제가 자극을 받았거든요.”
(201) 10장 독립-6
텅 빈 아파트로 돌아온 서동수가 냉장고에서 물병부터 꺼내 마신다.
아파트는 썰렁했지만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매일 청소를 하기 때문인데 혼자 있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성품이 아니다.
벽시계가 밤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진영아 하고는 카페 앞에서 헤어진 것이다.
저고리를 벗은 서동수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술을 마셨지만 자기 전에 중국어 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이제는 듣기와 말하기에 지장은 없다.
TV를 봐도 90퍼센트 이상은 다 알아듣는다.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서동수가 눈을 감았다.
이제 곧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독립이다.
모든 직장인의 꿈이 독립이라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극소수일 것이다.
독립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과연 나는 그 의지가 바탕에 깔려 있는가?
눈을 뜬 서동수의 시선이 TV로 옮겨졌다.
중국 연속극으로 삼각관계의 남녀가 다투는 중이다.
서동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꺾이지 않겠다는 자신도 있다.
다만 한영복과의 동업으로 시작된 것이 조심스러울 뿐이다.
지금은 서로의 장점을 이용하는 단계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갈라서야만 한다.
그것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겠는가?
한영복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서동수는 상반신을 세웠다.
이 시간에 누구인가?
핸드폰을 집어든 서동수의 몸이 굳어졌다.
전처(前妻) 박서현이다.
이 시간에 웬일인가?
핸드폰을 켠 서동수가 귀에 붙였다.
“나야.”
“왜 나만 묶여 있어야 되니?”
하고 불쑥 박서현이 물었으므로 서동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음 순간 가슴에서 머리끝까지 불덩이가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부릅뜬 서동수가 소리쳤다.
“네가 데리고 있겠다고 했지 않아? 이년아!”
미혜를 데리고 있겠다면서 고집을 피운 것은 박서현이고
이 모정(母情)에 꺾여 서동수는 양보를 했다.
그때 박서현이 말했다.
“너만 홀가분하게 즐기는 것이 분해, 미혜 데려가.”
“내일 당장 갈 테니까 준비해라.”
서동수가 이 사이로 말했다.
“말 잘했어. 데려갈게”
박서현은 서동수의 서슬에 질린 듯 잠깐 주춤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알았어. 준비할 테니까.”
정지 버튼을 누른 서동수가 심호흡을 세 번 하고 나서 벽시계를 보았다.
1시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동수는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고는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동수냐?”
신호음 세 번 만에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니다.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 어머니다.
가장 이해심이 많은 인물도 어머니다.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어머니, 나, 미혜 데려오기로 했는데.”
대뜸 그렇게 말했더니 어머니도 대번에 말을 받는다.
“오냐, 잘했다.”
미혜에 대한 서동수의 그리움을 아는 것이다.
어머니가 말을 잇는다.
“내가 키우마, 내가.”
“아니, 어머니, 내가 여기서 키워야겠어.”
“그렇다면 내가 거기로 가마.”
어머니가 당장에 고속버스라도 타고 올 기세로 말했다.
“나하고 미혜하고 너하고 살자. 여기 농사는 네 형이 잘할 것이다.”
어머니는 중국땅이 아니라 시베리아라도 상관이 없다.
아들 있는 곳이면 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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