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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장 승자와 패자 4

오늘의 쉼터 2014. 7. 25. 23:11

<92> 9장 승자와 패자 4

 

 

(180) 9장 승자와 패자-7 

 

 

 

“엄마 친구 아들이 있어.”

인사를 마치고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박서현이 외면한 채 말했다.

 

대문 밖에는 미혜까지 셋이 나왔다.

 

미혜의 손을 하나씩 나눠 쥔 채 박서현이 말을 이었다.

“중소기업 사장, 재작년에 와이프하고 사별했는데 자식은 없어.”

“…….”

“한번 만났는데 좋대, 미혜 데리고 와도 좋다는 거야.

 

하지만 그쪽 엄마가 조금 미혜가 걸리나 봐. 그래서 내가 못하겠다고 했어.”

“…….”

“그랬더니 엄마가 저러는 거야.”

“미혜는 내가 데려가지.”

정색한 서동수가 미혜의 손을 치켜들었다가 내렸다.

 

몸이 공중으로 떴다 내려간 미혜가 깔깔 웃었다.

“넌 결혼하고 나서도 언제든지 보러 와도 돼, 그럼 되지 않겠어?”

“안 돼, 미혜 없으면 못 살아.”

박서현이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얼굴이 다시 붉어져 있다.

“날 매정한 여자로 만들지마. 차라리 혼자 살면서 미혜 키울 테니까.”

“가면 곧 잊더라. 그리고 다시 아들딸 낳고 잘만 살더라. 내가 그런 경우 많이 보았어.”

“그건 짐승 같은 부류지.”

“그들도 가기 전에 다 너처럼 그런 말 했을 거다.”

“여자 있어?”

이번에는 박서현이 불쑥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자야 많지.”

“정을 준 여자말야. 섹스 파트너 말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정 주고 다니는 놈이냐?”

그때 미혜가 서동수와 박서현의 팔을 끌며 말했다.

“놀이터 가자. 응?”

둘은 두말 않고 발을 떼었는데 박서현이 낮게 말했다.

“집 나와야겠어. 미혜를 눈칫밥 먹이는 것 같아서 싫어.”

“그건 안 돼.”

“왜?”

박서현이 서동수를 노려보았다.

“거기가 무슨 상관야?”

“또 그런 놈 만날 가능성이 많아. 넌.”

“글쎄, 네가 무슨 상관이냐구.”

“미혜가 불쌍해서 그런다.”

“응? 왜?”

하고 미혜가 물었으므로 둘은 말을 그쳤다.

 

놀이터가 보이는 바람에 미혜의 관심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둘의 손을 놓은 미혜가 놀이터로 달려간다.

“빈집에 미혜 혼자 남겨두고 남자 만나서 놀려고?”

미혜 뒷모습을 보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너, 지난번에도 내가 수습해 주지 않았으면 넌 돈 다 빼앗기고

그 남자 만나지도 못했을 거다.”

“난 도저히 저기서 못 살겠단 말야!”

박서현이 이 사이로 말을 이었다.

“엄마는 미혜를 봐주지도 않아! 내가 혼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야!”

“너, 남자는 만나야 돼?”

놀이터 앞에 나란히 선 둘은 다정한 부부처럼 보인다.

 

미혜가 둘 앞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다.

“섹스말야. 그건 어떻게 처리해?”

서동수가 묻자 박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별 걸 다 묻는군. 지저분한 자식.”

“내가 네 몸을 알기 때문이지. 그 사기꾼 만난 것도 섹스 때문이었을 테니까.”

“그 자식 3분도 안 되었어.”

그러자 서동수가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너, 중국으로 와. 내가 열흘에 한 번쯤 들러줄 테니까.

 

그것이 미혜를 위해서도 낫겠다.”

 

 

 

(181) 9장 승자와 패자-8 

 

 

 

박서현은 대답하지 않았고 서동수 또한 대답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박서현과 헤어질 때 약속을 받았다.

 

재혼하기 전까지 친정 부모한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어머니가 미혜를 봐주지 않는다고는 해도 같이 있는 것이 백 번 나은 것이다.

 

그것을 모를 박서현도 아니다.

 

그날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서동수는 디자이너 박세영과 서교동의 홍익호텔 미팅룸에

 

나란히 앉아 사원면접을 시작했다.

 

다음달부터 조무할 경력사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해놓았기 때문에 면접자는 30여 명이나 되었다.

 

이 중에서 선발된 10명이 1차로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다.

회사명은 ‘성동실업’이다.

 

옌타이의 공장 성동실업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서동수는 난생 처음으로 경영자의 입장에서 사원을 면접하고 채용하게 되었다.

 

면접자는 모두 경력사원으로 박세영이 모은 의류업계 종사자들이다.

 

한국보다 보수가 적은 편인데도 중국 근무 지원자가 예상외로 많았다.

 

그것은 한국 의류산업이 과도기에 진입했다는 증거라고 한영복이 말했다.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고가(高價), 브랜드화 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탈락자가 발생한다. 세 명씩 면접을 보았는데

 

마지막 세 명과 마주보고 앉았을 때는 오후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순서대로 묻고 맨 나중에 ‘하고 싶은 말’ 차례가 되었을 때 29번이 말했다.

“맡겨준 일은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깐 숨을 돌린 29번이 물기가 배어서 번들거리는 눈으로 서동수와 박세영을 번갈아 보았다.

“전 네 살짜리 딸하고 어머니하고 셋이 삽니다.

 

셋이 중국으로 함께 가야 하는데 선발이 되면 떠나기로 어머니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박세영이 풀썩 웃으면서 힐끗 서동수를 보았다.

 

29번은 30세, 날씬한 몸매에 동대문에서 매장 근무경력 6년으로

 

박세영이 A급으로 평가해 놓은 여자였다.

 

33명의 면접자 중에서 능력이 우수한 A급은 16명이나 된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29번 진영아에게 물었다.

“딸과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중국에서 교육을 시키려고요. 여긴 유치원비도 만만치 않거든요.”

진영아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중국에 정착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 드린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이만.”

듣고 있던 박세영이 마무리를 하더니 면접을 끝냈다.

 

방에 둘이 남았을 때 박세영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에게 말했다.

“29번, 일 잘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살기 싫은 모양이네요.”

“합격시킬 거요?”

“예, 저는 데려가고 싶어요. 사장님은요?”

“그럽시다.”

서동수도 진영아가 마음에 들었다.

 

네 살짜리 딸과 어머니하고 세 식구라니 이혼을 한 모양이다.

 

면접을 끝낸 둘은 홍대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에 곁들여 소주를 마셨다.

 

서동수가 지나가는 말처럼 최준호를 부르라고 했더니

 

바쁜 시간이어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밤도 혼자 지내실 건가요?”

식사를 마치고 소주를 둘이 두 병째 비웠을 때 술잔을 든 박세영이 물었다.

 

시선이 부딪치자 박세영이 눈웃음을 쳤다.

“제 친구 소개시켜 드려요?”

“아니, 됐습니다.”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의 머릿속에 오정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칭다오에서 만나고 연락도 못했다.

 

지금 서울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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