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8장 동업 (10)
(169) 8장 동업-19
연말이 되면 중국도 선물 가방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서동수가 쇼핑백을 들고 윤명기의 아파트 앞에 섰을 때는 오후 7시 50분이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해온 이후로 서동수는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장인이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흔히 전쟁과 직장을 비교하는데 시간약속을 어기는 것은 전쟁터에 늦게 가거나
안가는 것이나 같다.
아파트 현관에서 인터폰을 했더니 윤명기의 부인이 금방 받았다.
“어머, 어서오세요.”
윤명기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아파트 문을 열어놓은 부인이 현관에서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서동수가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셨습니까?”
“잘 오셨어요.”
서동수의 팔을 끌 듯이 집안으로 안내한 부인이 소파에 앉히고는 서둘러 마실 것을 가져왔다.
그러더니 안쪽에 대고 부른다.
“얘, 어서 나와.”
그러자 여자 하나가 나왔다.
30대쯤의 통통한 체격, 둥글고 귀염성이 있는 용모, 서동수를 보더니 생글거리며 웃는다.
놀란 서동수가 엉거주춤 일어섰더니 부인이 소개했다.
“제 대학 후배예요, 마침 중국에 놀러왔길래 서 과장님 소개 시킨다고 잡아두었죠.”
그러자 여자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은경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서동수입니다.”
머리를 숙여 보인 서동수가 먼저 용건부터 해결했다.
“이거, 공장장님이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요.”
하면서 들고온 쇼핑백을 내밀었더니 부인이 웃음 띤 얼굴로 받는다.
힐끗 시선을 주는 표정이 의미심장했다.
“네, 수고하셨어요.”
1만 위안 뭉치가 15개, 신문지로 싸놓은 돈뭉치가 묵직했다.
부인이 쇼핑백을 들고 잠깐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 서동수가 앞에 앉은 이은경을 보았다.
낮에 만난 박세영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비슷한 연령대였지만 대조적이다.
박세영은 세련되었고 날씬하며 섬세한 용모였는데 이은경은 육감적이고 풍성하며 부드럽다.
그때 이은경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미혼이에요.”
“전 이혼이올시다.”
저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오는 바람에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은경이 큭큭 웃었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를 숙여 보였다.
“말하다 보니까 그렇게 나왔습니다.”
“저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결혼 안했다는 말부터 했네요.”
그때 부인이 나오면서 둘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벌써 분위기가 좋네.”
이은경의 옆자리에 앉은 부인이 말을 잇는다.
“서 과장님, 부담 갖지 마시고 얘하고 술이나 한잔하세요.
얜 이래 봬도 꽤 유명한 화가랍니다.
얘가 중국 왔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서 과장님 생각이 나지 뭐예요?”
하더니 이번에는 이은경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어때? 용모하고 성격이 차이가 나는 사람이 있지만 서 과장님은 같아.
목소리까지 용모, 성격과 같다니까? 이런 남자는 드물단다.”
그 순간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평범한 싸모인줄 알았더니 분석이 예리하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어머니한테 듣고 처음이다.
(170) 8장 동업-20
한·중 수교 직후에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 업종 중에서
룸살롱’이 가장 장사가 잘 된 사업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처음엔 ‘룸 가라오케’ 또는 ‘가라오케’ 등의 간판을 걸었는데
손님들의 대부분이 룸살롱의 향수를 간직한 한국인들이었다.
그리고 중국식 룸살롱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을 뿐만 아니라
금방 한국식 룸살롱을 넘어섰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막대한 인력과 가격 때문이다.
초창기의 중국식 룸살롱에 가면 그야말로 ‘서시’ 같고 ‘양귀비’ 같은 미인이 지천으로 있었다.
‘쭉쭉빵빵’한 여인이 수백 명씩 앞에 도열해 있을 때의 기분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거기에다 한국의 반에 반에 반값으로 온갖 향응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10년쯤 지나자 먼저 룸살롱에서 조선족 미인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 기업들이 기반을 굳히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나간 것이다.
그러더니 중국계 미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손님들도 중국인으로 대체되었다.
돈 번 중국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수교 20년,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한다.
수교 초창기에 중국에 뛰어들었던 한국인 사업가들이 격세지감을 느낄 만 했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중국이 거대해진 것 같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위축되거나
더 작아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오후 10시, 서동수와 이은경이 룸살롱 ‘서울’의 방안에서 나란히 앉았다.
이곳은 서동수가 업무용으로 들르는 곳이어서 조선족 마담도, 파트너도 없다.
여자 데리고 와서 술 마시기에 적당한 곳이다.
“여기가 중국식 룸살롱이군요.”
술잔을 든 이은경이 웃음띤 얼굴로 방을 둘러보았다.
윤명기의 아파트에서 같이 나온 서동수가 룸살롱 구경할 거냐고 물었더니
이은경은 대번에 승낙했다.
가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여기 자주 오셨나 봐요.”
“그래요, 업무상.”
이은경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눈빛이 강하다.
물기에 젖은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다.
웃음띤 얼굴이 조금 굳어진 것은 긴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동수가 그 시선을 받은 채 묻는다.
“나에 대해서 또 들은 말 있습니까?”
“능력 있는 분이라는 것.”
이은경이 바로 대답했다.
이윽고 시선을 뗀 이은경이 한 모금에 위스키를 삼켰다.
“저도 뵙고 나서 바로 느꼈죠.”
“어떤 능력?”
“바로 이런 거.”
잔에 술을 채우면서 이은경이 말을 잇는다.
“여자 끌고 가는 이 분위기.”
“오해한 것 같은데.”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이은경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은경 씨는 참 편하게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어.”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
서동수의 팔에 몸을 안기면서 이은경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제 얼굴 근육이 풀려져 있다.
“싫다면 이곳에 따라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 서동수가 이은경의 귓불을 입술로 물고는 혀끝으로 애무했다.
“근데 좀 빠르긴 해.”
그렇게 혼잣소리처럼 말한 이은경이 손을 뻗어 서동수의 바지 혁대를 풀었다.
“여기서 하려고?”
그렇게 물은 이은경의 목소리가 떠 있었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빠르다. 그러나 그 어떤 때보다 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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