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8장 동업 (9)
(167) 8장 동업-17
동수는 신입사원이었을 때부터 이른바 동선관리(動線菅理)를 해왔다.
그것은 효율적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A라는 목적지에 갈 일이 생겼을 때 A까지의 동선 주변에 위치한
거래처나 친지를 함께 찾거나 그것도 없으면 시장조사라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에 있을 때부터 단련시킨 버릇이다.
화장실까지 가는 동선근처에 주방이 있다면 그 동선 사이에 놓여진 빈그릇,
잔들을 수거하여 주방에 놓고 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이렇게 버릇을 들이다 보니 시간소모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시간소모란 시간 낭비를 말한다.
서동수가 가장 어이없게 생각하는 경우는 ‘멍’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는 인간들이다.
명상이나 요가를 하지 않는 한 인간은 일초라도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된다고 믿었다.
특히 직장인의 시간은 천금(千金)과 같다.
직장인이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죄악이나 같다.
할 수 없이 차 안에 갇히게 되었다면 오더 수주계획이나 생산 증진 계획이라도
구상해야 되는 것이다.
11시 반에 서동수는 칭다오 시내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화란을 만난다.
오전 회의를 끝내고 이곳으로 나와 화란을 불러낸 것이다.
어젯밤의 진한 정사 여운이 아직도 가셔지지 않은 터라
화란은 서동수의 시선을 받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회사에서는 기를 쓰고 참았겠지만 여기서는 억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앞자리에 앉은 화란이 붉어진 볼을 두 손바닥으로 누르며 물었다.
“왜요?”
그러자 서동수가 화란 앞에 비닐 쇼핑백 하나를 놓았다.
“3만 위안이다. 어제 받은 리베이트를 쪼갠 거야.”
숨을 들이켠 화란이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었다.
시선이 비닐백에 꽂혀졌고 얼굴은 굳어지고 있다.
“3만 위안이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려고 하지 말 것, 알았지?”
“네, 보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화란이 비닐백을 들어 제 옆에 놓고 나서 묻는다.
“이것 때문에 나오라고 하신 건가요?”
“내 동선에 널 넣은 것이야.”
서동수의 동선관리는 알고 있었으므로 화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저하고 같이 밥 먹어요?”
“먹고 나서 호텔 가게?”
“오늘은 그만.”
눈을 흘기면서 화란이 말하자
서동수가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12시에 또 약속이 있어.”
“거래선인가요?”
“넌 알 필요가 없고.”
“그럼 저, 가요?”
서동수가 머리만 끄덕이자 화란은 백을 쥐고 일어섰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소천을 조심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두 번다시 우리 옆에서 얼쩡대지 못할 테니까요.”
매몰차게 말한 화란이 한걸음 발을 떼었다가 멈춰 서더니 서동수를 보았다.
“왜?”
하고 서동수가 묻자 화란이 숨을 들이켰다가 뱉었다.
“사랑해요, 보스.”
서두르듯 말한 화란이 몸을 돌렸으므로 서동수는 등에 대고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화란이 커피도 마시지 않고 나갔을 때 다시 손목시계를 본 서동수가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을 삼켰다.
11시 45분이다.
12시에 바로 옆쪽 중식당에서 손님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오늘 낮 동선의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다.
(168) 8장 동업-18
12시 정각이 되었을 때 서동수는 중식당 ‘상하이’의 방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한영복과 여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동수를 맞는다.
“어서 오시오. 서 사장.”
한영복이 서 사장이라고 부를 때는 새 사업에 관계가 있을 때뿐이다.
다가선 서동수에게 한영복이 여자를 소개했다.
“이분이 내가 말씀드린 디자이너 박세영 씨요.”
“반갑습니다.”
머리만 숙여보인 여자에게 서동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서동수가 내민 손을 잡았다.
가늘고 부드러운 손이다.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서동수 또래로 보였는데 날씬한 체격에 웃음 띤 얼굴이 상큼했다.
“잘 부탁합니다.”
하고 박세영이 인사를 했다.
셋이 자리에 앉았을 때 종업원들이 들어와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박세영은 동대문시장의 디자이너로 한영복이 스카우트해온 창업멤버가 되겠다.
한영복이 서동수를 눈으로 가리키며 박세영에게 말했다.
“서 사장이 판매를 책임질 테니까 앞으로 박세영 씨하고 손발을 잘 맞춰야 될 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세영이 다시 인사를 했다.
이미 한영복한테서 박세영의 인적 사항을 들은 터라 오늘은 상견례인 셈이었다.
박세영은 의상학과를 나온 후에 곧장 동대문시장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수백 벌을 히트시켰고 돈도 꽤 벌었지만 작년에 다 정리했다는 것이다.
결혼했다가 역시 작년에 이혼을 했고 자식은 없다.
한영복이 이제는 서동수에게 말했다.
“나는 옌타이 공장과 인도네시아에 자주 가봐야 되어서 당분간은 서 사장이
박세영 씨한테 신경을 써주셔야겠어요.”
“당연한 일이죠.”
정색한 서동수가 박세영을 보았다.
“언제라도 연락을 하세요.
내가 혼자 살고 있으니까요.
누구 눈치 볼 일도 없습니다.”
“나도”
하려다가 간신히
“내가”로 바꾼 바람에 서동수의 등이 으스스해졌다.
박세영의 신원조사는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한영복과 서동수만 안다.
“당분간 박세영 씨는 시장조사로 바쁠 겁니다. 베이징에도 가봐야 하고.”
한영복이 업무 이야기를 시작하자
박세영은 가방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착실한 자세다.
“시장조사 일정표를 내주시면 나하고 서 사장이 일정에 맞춰 도와드릴 겁니다.”
“일정표는 가져왔어요.”
한영복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세영이 서류를 꺼내어 둘 앞에 한 장씩을 내밀었다.
서류를 펴본 한영복이 감탄했다.
“그렇군요.”
일정은 내일부터 한 달 동안 빼곡하게 잡혀 있었는데
현실적이고 동선관리가 잘되었다.
그것을 본 서동수도 머리를 끄덕였다.
“잘되었습니다.”
박세영을 위해 칭다오 시내에 30평형 아파트를 임차해놓은 터라
일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 수가 있다.
박세영은 중국의 고급시장을 목표로 채용한 인력인 것이다.
즉 고급시장 제품의 생산 책임자다.
요리가 날라져 왔으므로 방 안 분위기는 더 부드러워졌다.
한영복이 씹던 것을 삼키더니 박세영에게 물었다.
“오신 지 이틀밖에 안 되었지만 중국을 보신 느낌이 있습니까?”
“사람이 많네요.”
불쑥 대답했던 박세영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오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업이 잘될 것 같아요. 옷도 많이 입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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