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8장 동업 (1)
(151) 8장 동업-1
그렇다. 하나는 버렸다. 그것이 서동수의 성격이다.
20만 위안은 증거물로 제시되었다가 서동수가 되찾게 될 것이지만
사례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전 선생에게 일임해 버렸으니 알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대신 이인섭의 처벌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으며
서동수는 적극적으로 보호되었다.
한번도 오라 가라 하지 않고 회사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건(?) 사흘째가 되는 날 아침 눈이 둥그레진 화란이
서동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보스 이인섭 씨가 공안에 구속되었다네요. 알고 계세요?”
“모르겠는데?”
정색한 표정으로 서동수가 되물었다.
“왜 구속되었다는 거야? 음주운전으로?”
“그게 아니고요.”
“싸웠나?”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는데 공갈 협박 혐의라고 했어요.”
화란의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으므로 서동수는 입맛을 다셨다.
“날 그렇게 보지 마, 화란.”
“보스.”
“넌 모른 척하고 있는 게 나아.”
“보스.”
“나도 모르는 일이야.”
해놓고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장장께 다녀오겠어.”
화란의 시선을 등에 받은 채 사무실을 나온 서동수가 곧 공장장실로 들어선다.
결재를 하고 있던 윤명기가 턱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예. 사업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머리를 든 윤명기가 서류를 덮더니
서동수의 앞쪽 자리로 옮겨와 앉는다.
시선이 부드럽다.
“사업이라니?”
“제가 계열사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불쑥 서동수가 말했을 때 윤명기의 얼굴이 스르르 굳어졌다.
윤명기가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가명으로 말이냐?”
“예, 공장장님.”
“네 정체가 밝혀지면 그 시점에서 계열사 계약이 취소될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하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윤명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서동수가 정색했다.
“매월 결산을 해서 이익금의 20%를 드리겠습니다.”
“20%라.”
쓴웃음을 지은 윤명기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내가 곧 부자가 되겠다. 공장 설립할 자금은 있는 거냐?”
“예. 모아 놓은 돈이 좀 있습니다.”
“공장 위치는?”
“옌타이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공장인데 직원이 8백 명쯤 됩니다.
제가 기계와 인원까지 그대로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꽤 크군.”
“한영복 사장 아시지요?”
“알지.”
“한 사장이 저한테 동업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공장 관리는 한 사장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긴장한 윤명기에게 서동수는 한영복의 제의를 모두 털어놓았다.
윤명기가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서동수가 선택한 동업자는 윤명기였다.
이윽고 서동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윤명기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 한영복의 관리 능력을 이용하면 되겠다. 잘 생각했다.”
한영복은 윤명기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152) 8장 동업-2
그날 저녁,
칭다오 시내의 한식당 방에서 서동수와 한영복이 한정식을 시켜 먹고 있다.
서동수는 칭다오의 한국 식당 요리가 한국의 어느 식당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식당은 한국땅 안이라 뜨내기 손님으로도 장사가 되지만 이곳은 다르다.
수만 명밖에 안 되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맛이 없으면 금방 문을 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피를 튀기는 경쟁을 해야 한다.
낙지볶음을 맛있게 씹어 삼킨 서동수가 한영복을 보았다.
“한 사장님, 동양은 중국에 기반을 굳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죠.”
바로 대답한 한영복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동양의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동양이 버티고 있는 한 계열사도 순풍을 타게 될 것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옌타이에 직원 800명짜리 공장이 문을 닫게 됐습니다.
이건 제가 은행 관계자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인데요.
150만 위안 정도로 공장을 인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난데없는 내용이었으므로 한영복은 눈만 껌벅였다.
한영복은 오히려 자신의 공장을 축소, 이전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서동수가 다시 말했다.
“이 공장을 인수해서 동양의 계열사로 만드십시다.
관리는 한 사장님이 하시고 오더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요.
봐서 공장을 증설해도 됩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투자는 절반씩 하고 지분을 50 대 50, 이익금도 정확히 반분하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허어 참.”
마침내 따라 웃은 한영복이 서동수를 보았다.
“우린 손발이 잘 맞는 동업자가 될 겁니다. 서 과장님.”
“우선 안전한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 방식입니다.”
“그렇죠.”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한영복이 다시 웃었다.
“서 과장님이 좋은 오더만 끊임없이 주신다면 일 년 안에 본전도 뽑을 수 있지요.”
“이것이 공장 내역입니다.”
서동수가 옆에 놓았던 서류봉투를 한영복에게 건네주었다.
우명호한테서 옌타이의 ‘성동실업’ 이야기를 듣고 조사한 자료였다.
서류를 꺼내본 한영복이 곧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일 당장 옌타이로 가 볼랍니다.”
한영복의 얼굴에 생기가 띠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안전한 동업 사업이다.
투자도 함께하면서 서로의 강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영복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소리 죽여 숨을 뱉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날 밤, 서동수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밤 10시 반이다.
방으로 따라 들어온 조은희가 중국어로 말했다.
“오늘 저녁 8시쯤에 이인섭 씨 처라는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몸을 돌린 서동수가 조은희를 보았다.
조은희가 말을 잇는다.
“왜 왔느냐고 물었더니 용서해 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면서 울었어요. 무슨 일이죠?”
서동수의 저고리를 받아든 조은희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직접 선생님한테 전화를 하지 그러냐고 했더니 어려워서 못하겠다네요.”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해요.”
차갑게 말한 서동수가 다시 몸을 돌렸지만 저절로 어금니가 물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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