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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장 중추절(11)

오늘의 쉼터 2014. 7. 25. 22:38

<64> 6장 중추절(11)

 

(126) 6장 중추절-21 

 

 

 

 “나다.”

하고 송화구에 대고 말했으나 박서현은 이미 발신자 번호를 읽고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가만있었지만 서동수는 받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나, 집 앞에 와 있는데 잠깐 미혜를 데리고 나와.”

그러고는 덧붙였다.

선물을 줘야겠어.”

서동수의 시선이 하나는 손에 들고 하나는 내려놓은 두 박스의 선물 상자로 내려갔다.

 

박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고 찢어진 데다 손잡이는 달랑거렸다.

 

그때 박서현이 말했다.

“미혜는 자.”

오후 1시반이다.

 

추석 다음 날이어서 거리는 아직도 한산하다.

 

이곳은 남현동의 주택가. 지금 서동수는 박서현의 부모가 사는 2층 저택 길 건너편에 서 있다.

 

오정미의 사진으로 보면 어제 마리오 김경호의 대포차가 주차했던 위치다.

 

심호흡을 하고 난 서동수가 말했다.

“깨워서 데리고 와.”

“그건 안 되겠어.”

차분한 목소리로 박서현이 말했을 때 서동수가 다시 숨을 깊게 들이켰다가 천천히 뱉었다.

 

눈앞이 흐려진 것은 머리에 열이 올랐기 때문이다.

“너, 이혼조건에 미혜를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어. 안 그래?”

서동수가 한마디씩 말한 것은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그러나 결국 말끝이 떨렸다.

 

그러자 박서현이 쏟아붓듯 말했다.

중국에서 가뭄에 콩 나듯 와서 아빠 흉내 내려고 들지 마!

 

아이한테 안 좋아. 차라리 잊고 사는 게 낫다구!

 

그리고 이제 미혜는 잊어가는 중이니까 괜히 풍파 일으키지 말란 말이야!”

서동수는 눈만 크게 떴고 박서현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미혜도 아빠 찾지 않는단 말야! 알았어?

 

지금 서울에 있다지만 중국에 가면 또 잊을 것 아냐?

 

언제부터 딸한테 관심을 가졌다고 그래?

 

같이 살 적엔 일주일에 한 번 얼굴 볼까 말까 하던 주제에.”

“야, 이 시발년아.”

마침내 서동수의 입에서 욕이 나갔다.

 

얼마든지 박서현의 말에 말로 맞받아줄 수도,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안 좋다.

 

자신은 지금 길가에서 쫓겨난 방문판매원처럼 상품 박스를 쥐고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다.

 

어디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이, 개 같은 년아. 니가 사람이냐?”

했을 때 통화가 끊겼다.

 

예상하고 있던 터라 길게 숨을 뱉은 서동수가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그러고는 선물박스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에 서동수는 저택의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른다.

“누구요?”

하고 전(前) 장인 박병만이 물었지만 CCTV 화면으로 이미 보았을 터였다.

 

서동수가 렌즈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미혜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이 사람아.”

하고 박병만이 말했을 때 곧 전(前) 장모 최영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그런다고 갑자기 이렇게 오면 어떻게? 지금은 남남인데….”

“서현이한테 이야기했습니다. 미혜만 보고 가겠습니다.”

정색한 서동수가 말했더니

 

잠깐 정적이 흐른 후 철거덩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그 순간 서동수는 눈이 뜨거워지면서 저절로 어금니가 물어졌다.

 

그것은 각각 미혜와 박서현에 대한 몸의 표현이다.

 

 

 

 

 

(127) 6장 중추절-22 

 

 

“아빠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이다.

 

서동수는 그야말로 벽력 같은 외침을 들었다.

 

모든 소음을 압도한 외침, 서동수는 달려오는 미혜를 보았다.

 

주위에 박병만, 최영주, 뒤쪽으로 박서현까지 시선을 주고 있었지만

 

서동수의 눈에는 미혜만 보였다.

“미혜야.”

서동수는 제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듣는다.

 

달려온 미혜가 안기도록 팔을 벌린 채 기다린 시간은 2초쯤 되었지만 행복했다.

 

미혜를 중심으로 빛이 품어져 나가는 것 같다.

 

이윽고 미혜가 서동수의 품에 안겼다. 가볍고 조그만 몸, 웃음 띤 얼굴.

“아빠아.”

다시 미혜가 불렀을 때 서동수는 대답 대신 힘껏 껴안는다.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지만 놔 두었다.

 

그 꼴을 둘러선 셋이 다 보고 있을 것이었다.

“미혜야.”

미혜의 뺨에 볼을 비비고 난 서동수가 이제는 한쪽 손잡이가 떼어진 선물 박스와 바닥이

 

찢어지기 시작한 박스를 미혜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풀기 시작했다.

 

그렇다, 주위에서 내려다보는 세 쌍의 시선에 슬슬 경멸감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와아!”

중국산 판다 인형, 바비인형 세트, 전자 게임기, 공주 저택 등이 박스에서 쏟아져 나오자

 

미혜가 손뼉을 쳤다.

 

응접실 바닥이 장난감 전시장이 되었고 박서현은 서동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서야 몸을 일으킨 서동수가 두 전(前) 장인 장모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예의상 절을 드려야겠지만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요.”

그러고는 탁자 옆에 비행기 안에서 산 490달러짜리 양주를 놓았다.

“이것도 예의상 가져왔습니다만 술은 죄가 없으니 버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말은 잘해.”

하고 최영주가 툭 쏘았고 박병만이 눈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박서현은 옆쪽에 팔짱을 끼고 서서 미혜를 내려다보고만 있다.

 

표정이 마음대로 안 되는 미혜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하고 미혜가 오픈카에 탄 바비인형을 들고 왔으므로 어색한 분위기가 다시 수습되었다.

 

서동수가 작동법을 알려주자 미혜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때 박병만이 묻는다.

“언제 중국에 가는가?”

“예, 사흘쯤 더 있을 겁니다.”

바로 대답한 서동수의 시선이 박서현을 스치고 지나갔다.

 

박서현은 이제 외면한 채 서 있다.

 

일부러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빨리 서동수를 내쫓으려는 의도다.

 

어깨를 편 서동수가 박병만을 보았다.

 

박병만은 대기업 임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후에 지금은 낚시와 해외여행으로 세월을 보낸다.

 

올해 65세였는데 정정해서 50대 후반으로 보인다.

 

서동수가 듣기로는 정년퇴직 전까지 여자관계로 수없이 최영주의 속을 끓여온 인물이다.

 

그래서 최영주는 서동수와의 이혼을 주장한 편이었고 박병만은 말리는 쪽이었다.

 

그때 서동수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박병만에게 말했다.

“어르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

아직 두 여자는 마실 것도 내놓지 않았다.

 

서동수가 똑바로 박병만을 보았다.

“미혜 엄마에 대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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