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6장 중추절(5)
(114) 6장 중추절-9
“그래서? 가만뒀단 말이냐?”
서동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강정만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오후 8시, 서동수는 고교동창 강정만과 함께 소공동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바 주인 문영은은 안쪽 테이블에서 손님 술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장사가 제법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아가씨 하나를 채용해서 옆 테이블 시중을 든다.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떡하냐? 미혜 앞에서 피 튀기며 싸울 수도 없고, 시발년, 하고 말았지.”
“선물을 니 조카 주라고 했다고? 그년 진짜 시발년이네.”
“니가 욕해준 값으로 오늘 술값 내가 낼게.”
“얀마, 미혜 니가 키워.”
“내가 그거 변호사한테 알아봐야겠다.”
정색한 서동수가 눈썹을 좁히면서 강정만을 보았다.
“그년이 지금 어떤 놈하고 깊은 사이거든?
만일 그놈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데리고 와야겠어.”
“어? 어떤 놈인데?”
두 번째로 흥분한 강정만이 다시 어깨를 부풀렸다.
다른 놈이 아니라 ‘마리오’다.
박서현의 홈카페에 하루에도 서너 번씩 들락이던 놈,
그놈이 미사리의 ‘배창수 리사이틀’에 박서현과 다른 회원 다섯 명을 초대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척’ 보면 안다.
‘마리오’는 미사리의 모임 이후로 홈카페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서 만나는 것이 분명했다.
그 후로 딱 두 번 들어와 기록을 남겼는데 카페를 개조했을 때다.
그놈이 개조해준 눈치가 보인다.
시치미를 떼지만 서동수의 후각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까지 말하기는 피곤했으므로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대답했다.
“척 보면 알아, 내가 누구냐? 오입으로는 그년 할애비뻘이다.
여기서도 그년 사타구니 냄새를 맡는다.”
그때 옆 테이블에 있던 미스 양이 다가와 서동수의 옆에 앉는다.
손님이 준 술을 대책 없이 마신 바람에 얼굴이 붉어졌고 눈동자의 초점이 멀다.
순진하다는 증거는 될지언정 서동수 같은 ‘프로’에게는 부담이다.
“저, 한 잔 주세요.”
하고 미스 양이 말했으므로 서동수가 입맛부터 다시고는 강정만을 보았다.
“여기 팁값 얼마냐?”
“룸살롱도 아니니까 5만 원이면 되지, 뭐.”
그랬다가 힐끗 안쪽의 문영은을 보았다.
“쟤는 일본 손님한테서 10만 원씩 받던데.”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지갑을 꺼내 5만 원권 두 장을 미스 양에게 내밀었다.
“아나, 받아라.”
눈을 둥그렇게 뜬 미스 양의 눈동자 초점이 잡혀졌다.
서동수가 미스 양의 얼굴 앞에서 돈을 흔들었다.
“어서 받아.”
미스 양이 돈을 받자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말했다.
“술 달라는 소리 마, 그러라고 팁 먼저 주는 거니까.”
그러자 강정만이 투덜거렸다.
“시발, 별놈의 팁이 다 있네.”
“화장실에 가서 소변보고 나서 오바이트하고 와, 그럼 시원해질 거다.”
서동수가 부드럽게 말하자 미스 양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사장님.”
“오바이트 먼저 하면 오줌까지 입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꼭 소변부터 보도록.”
“네, 사장님.”
얼떨떨한 표정으로 미스 양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강정만이 정색하고 서동수를 보았다.
“얀마, 정말이냐?”
서동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115) 6장 중추절-10
밤 12시 반, 바에는 셋이 남았다.
서동수, 강정만 그리고 문영은이다.
미스 양은 소변보고, 오바이트하고 나서 일찍 퇴근했기 때문이다.
“문 닫아야지?”
하고 강정만이 문영은에게 재촉하듯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풀썩 웃었다.
둘은 여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양주 두 병을 마셨다.
문영은은 손님이 많아서 그들 자리에 제대로 앉지도 않았다.
문영은도 술기운으로 눈이 충혈되었지만 초점은 또렷했다.
초점을 서동수에게 옮긴 문영은이 말했다.
“나, 오늘은 안 되는데.”
그러자 대답은 강정만이 했다.
“니가 해방 되는 날은 나도 알아. 월초니까 아무리 늘어진다고 해도 오늘은 아냐.”
두 손을 저으면서 강정만이 열변을 토했다.
“글고 내가 너하고 그동안 세 번 잔 것을 서동수가 꺼림칙하게 생각할 놈이 절대 아니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한 번 친 강정만이 말을 잇는다.
“또, 서동수의 테크닉, 사이즈 그리고 야차비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도 이유가 아닐 것이다.”
그러더니 강정만이 눈을 치켜뜨고 문영은을 노려보았다.
“너, 집구석에 언놈이 있지?”
“그래.”
선선히 대답한 문영은이 시선을 내렸다.
“오늘밤 누가 오기로 했어.”
“그, 일본 놈이냐?”
강정만이 불쑥 묻는다.
둘 사이는 이미 알건 다 아는 사이 같다.
문영은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이자 서동수가 말했다.
“그러면 저기.”
문영은과 강정만이 동시에 서동수를 보았다.
바 안은 조용하다.
둘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턱으로 안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저기, 테이블을 붙여놓고 한 번 뛰고 헤어지면 안 될까?”
둘의 시선이 안쪽으로 똑같이 향했다가 서동수에게 옮겨졌다.
표정도 똑같다. 얼척이 없는 표정이다.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이 강정만이다.
“좋지, 방석을 위에다 깔면 되겠다.”
눈을 가늘게 뜨고 테이블을 노려본 강정만이 말을 잇는다.
“두 개를 벽에다 붙이면 떨어질 염려도 없고.”
“뭐, 한 시간이면 쌀 거야.”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서동수가 말했을 때다.
“미안해.”
문영은이 외면한 채 말했다.
“오랜만에 서울 왔는데 정말 미안해.”
“그래서, 안 해주겠다는 거야? 뭐야? 이, 씨.”
눈을 부릅뜬 강정만이 빈 양주병 주둥이를 거꾸로 쥐고 일어났는데 내려칠 것 같다.
그때 서동수가 저고리를 집어들었다.
“내가 미안하지 뭐, 가자.”
“야, 야.”
강정만이 소리쳤지만 쇼다.
서동수의 팔에 끌려 나오면서 강정만이 안에다 대고 외쳤다.
“이년아, 나까무라상한테 안부 전해라.”
바 밖으로 나온 서동수가 갑자기 덮친 냉기에 진저리를 쳤고
강정만이 코트깃을 세우면서 물었다.
어느새 술기운이 싹 가신 얼굴이다.
“너, 정말 안에서 뛰려고 했어?”
“아니, 걍 해본 소리야.”
“너, 오늘 어디서 잘래?”
“호텔방 잡아 놓았어.”
“벌써?”
해놓고 강정만이 길에 숨을 뱉는다.
그렇게 귀국 첫날밤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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