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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장 중추절(7)

오늘의 쉼터 2014. 7. 25. 22:34

<60> 6장 중추절(7)


 

(118) 6장 중추절-13

 

 

 

 

 “서동수 씨?”

되묻는 여자 목소리가 귀를 울렸을 때 서동수는 머리를 기울였다.

 

모르겠다.

“네, 전데요. 그런데 누구신지.”

“지금 어디세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냅다 또 묻는 바람에 서동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긋나긋했기 때문인지 불쾌하지는 않다.

“서울인데요.”

그러자 여자가 “흐흥” 웃었다.

“역시 오셨군요.”

“글쎄, 누구신지?”

“기억 안 나시죠?”

이제는 조금 언짢아진 서동수가 가만 있었고 여자가 말을 잇는다.

“저기요.”

“예, 말씀하시죠.”

“소시지요.”

“예?”

“나한테 소시지 넣으라고 하셨잖아요. 포장지 뜯지 말고.”

그 순간 서동수가 숨을 들이켰다.

 

세탁소의 방안, 아랫도리만 벗고 이불 속에 들어간 여자,

 

노키스, 젖가슴 만지지 말고, 코도 건드리면 안 되며, 콘돔 쓰고 살살 넣을 것,

 

너무 크면 늘어나니까 곤란하면 뒤에서 박을 것,

 

여자의 조건까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저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그래서 불쑥 묻는다.

“내가 시킨 대로 해 보셨소?”

“지금 뭐하세요?”

다시 여자가 제멋대로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정신을 차렸다.

 

제 버릇은 개 못 준다는 말이 맞다.

 

여전히 제멋대로다.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까 전화한 용건부터 들읍시다.”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하자 여자가 대답했다.

“우리 만나요.”

“글쎄, 항복했다니까 그러네. 당신 앞에서는 안 서.”

 

“우리 정식으로 해.”

“이제는 당신 얼굴 보면서 정식으로 될 것 같지가 않아.”

“무시해서 미안해.”

그 순간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다.

 

이게 무슨 조화 속인가?

 

이 여자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낮추고 묻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데?”

“나, 그런 일 처음이야.”

“설마 소시지 넣은 건 아니겠지?”

“그렇게 굴욕적인 일은 처음이라고.”

“그래서 복수를 하시겠다?”

“사과하고 정상적으로 하는 것이 그 굴욕을 상쇄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말 길구먼.”

했지만 서동수의 가슴이 조금 따뜻해졌다.

 

이 정도로 표현할 정도면 변태는 아니다.

 

말이 길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많지만 그것이 헛것이건 아는 게 많다는 증거도 된다.

 

그때 여자가 분위기를 눈치챈 것 같다.

 

조금 서두는 분위기로 말했다.

“우리 만나, 응?”

“키스하게 해 줄 거야?”

“양치질만 하면.”

“난 혀로 샅샅이 빠는 습성이 있어. 특히 그, 샘을 괜찮아?”

“물론이야.”

“코 만져도 돼?”

“얼마든지.”

“내 건 좀 커, 팍팍 넣어도 돼?”

“맘대로 해.”

여자의 목소리가 공중에 뜬 느낌이 들었으므로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여자의 선입견은 이제 다 지워졌다.

자, 이쯤해서 통화를 끊는 것이 서로의 신상을 위해서 낫지 않을까?

 

 

 

 

 

(119) 6장 중추절-14

 

 

 

 

 집에 왔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KTX는 한 시간 안에 닿는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어머니는 형 내외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서동수를 맞는다.

 

서동수는 어머니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에 상황을 짐작했다.

 

들통이 났다.

 

형 내외도 그렇다. 둘 다 시선을 미주치려고 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반긴다.

 

그러니 표정이 뒤죽박죽이다.

 

조카는 잠이 들었으므로 유성의 본가 대청에 네 식구가 모였다.

 

옷을 갈아 입고 대청 소파에 앉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

 

형수 박애영은 등을 보인 채 주방에 서있고 어머니와 형 서인수가 앞에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작심한 표정, 어깨를 늘어뜨린 서인수는 중재역할을 할 자세다.

 

그때 어머니의 일성(一聲), “미혜는 만났냐?”

그 순간 각오는 했지만 서동수의 가슴이 울컥했다.

 

콧등이 찡해지면서 눈이 뜨거워졌다.

 

시선을 내렸다가 든 서동수의 눈빛이 강해졌다.

“미혜를 데려올 거야.”

대번에 본론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눈을 치켜떴다.

“만났어, 못 만났어?”

“친정에 있다고 오지 말라고 했어”

하고 일러바쳤다.

 

어머니밖에 누가 있겠는가?

 

가슴속에 박힌 한(恨)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때 어머니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년, 나쁜 년.”

“소송을 해서라도 데려올 테니까”

했더니 눈이 더 뜨거워졌으므로 서동수는 황급히 눈을 부릅떴다.

 

눈의 물기를 말리려는 수작이었는데 아뿔싸,

 

어머니와 형이 보는 앞에서 눈물이 찔끔 떨어져 버렸다.

“아이구, 이 불쌍한 놈.”

그 꼴을 본 어머니가 탄식하는 바람에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머리를 숙였지만 손으로 눈물을 닦을까 말까 그것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머니가 서동수의 머리꼭지에 대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 못난 놈아, 그런다고 덜컥 이혼을 하고 미혜를 넘겨줘? 응?”

어머니는 그동안의 사연을 ‘그런다고’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고는 에미한테 거짓말을 하고 중국으로 가? 너, 회사에서도….”

“어머니, 잠깐만요.”

하고 서인수가 끼어들었고 그때 박애영이 인삼차 잔을 들고 와 말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안 그러시기로 하셨잖아요?”

셋이 예행연습까지 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을 때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들통날 줄 알았어.”

“이놈.”

하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가 박애영이 육중한 몸으로 옆쪽에 앉는 기세에 눌린 듯

 

말을 잇지 않는다.

 

그때 서동수가 탁자 밑에 놓았던 종이봉투를 꺼내 서인수 앞에 놓았다.

 

세 사람의 시선이 봉투에 모여졌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형, 여기 3천 가져왔어. 어머니 여행이나 시켜드리고 형 비닐하우스 고치는 데 써.”

잠깐 대청에 정적이 덮여졌다.

 

한 달쯤 전에 태풍으로 서인수의 비닐하우스가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야, 이게 무슨 돈이냐?”

하고 정색한 서인수가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깨끗한 돈이야. 됐어?

 

간만에 어머니하고 형한테 생색 한번 내려는데 꼭 그렇게 물어야 돼?”

그때 어머니가 머리를 들었다. 잔소리가 시작되겠지만 돈은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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