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6장 중추절(4)
(112) 6장 중추절-7
“미리 이야기해서 김이 빠질지 모르겠는데.”
하고 서동수가 지그시 화란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곳은 칭다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프린스 호텔의 바 안이다.
오후 6시, 술 마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바 안은 손님이 많다.
그런데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중추절 휴가 때문에 중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스키 잔을 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넌 휴가 끝나고 나서 대리 진급이 될 거야. 화란.”
그 순간 놀란 화란이 눈을 크게 떴다.
입술은 꾹 닫혀졌고 얼굴은 굳어져 있다.
화란의 표정을 본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공장장한테 이 대리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날 보좌할 대리급으로 널 추천했고 결재를 받았다.”
“…….”
“자, 웃어라.”
술잔을 든 서동수가 말했을 때 화란이 입을 떼었다.
“그럼 제가 이 대리 업무를 맡나요?”
“그래야지.”
“제 업무는요?”
“너하고 호흡이 맞는 직원이 있으면 추천해. 다른 부서에 있더라도 데려올 테니까.”
“있어요.”
화란의 눈이 반짝였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생산부에서 자재 관리를 맡고 있는 제 대학 2년 후배인데 제가 부러워 죽겠대요.”
“그럼 걔한테 2만 위안쯤 받아.”
“네?”
“총무과로 영전시켜 주겠다면 그쯤 받아도 될 게다. 아니 더 불러도 되지 않을까?”
화란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서동수가 정색했다.
“기회를 놓치면 안 돼.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 잡으면 되는 거야.
돈 버는 데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다.”
“진심이세요?”
하고 화란이 얼굴을 굳힌 채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대답했다.
“농담이야. 바보야.”
그러자 눈을 치켜떴던 화란이 앞에 놓인 안주접시에서 땅콩 하나를 들더니 서동수에게 던졌다.
땅콩이 서동수의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
“보스는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정말요.”
아직도 정색한 화란이 말하자 서동수는 한모금에 술을 삼켰다.
“이것으로 오늘밤 너하고의 달콤한 데이트는 끝났다.”
“왜요?”
화란이 서동수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묻는다.
잠깐 숙인 화란의 스웨터 밑쪽으로 젖가슴의 위쪽 골짜기가 보였다.
서동수가 술잔을 들고 웃었다.
“더 이상 진도가 나가면 네 진급 분위기가 흐려지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네 진급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단 말이다.”
한마디씩 차근차근 말했더니 화란이 머리를 저으며 웃는다.
불빛을 받은 흰 이가 반짝였다.
“복잡하군요. 보스는.”
“순수하다고 봐주지 않을래?”
“조금 더 진도가 나갔어도 될 것 같은데요. 보스.”
그러자 서동수가 화란의 시선을 잡은 채로 빙그레 웃었다.
“좋아. 너도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구나. 화란.”
“보스가 트레이닝을 시켜주고 있으니까요.”
서동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란을 본다.
언젠가는, 하는 기대가 인간에게 활력을 주는 것이다.
(113) 6장 중추절-8
다음날 아침,
조은희와 딸 미현이 먼저 고향인 인제로 떠났다.
버스표는 한 달 전에 예약해 놓았고 그때부터 고향 친척 선물을 하나씩 사놓더니
나갈 때 보니까 둘이 선물더미에 쌓여서 걷는다.
서동수도 집안이 허전하게 느껴져서 일찍 공항에 나왔다가 오후 2시 반 비행기로 칭다오를 떠났다.
올 때는 한 시간 비행에 한 시간을 잡아먹고 날아와서 같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갈 때는 시간이
늦어져서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었을 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버스를 기다리면서 서동수가 핸드폰의 버튼을 누른다.
이미 박서현에게 오늘 귀국한다고는 연락을 했다.
중국으로 떠난 지 6개월째, 만 5개월15일 동안 미혜의 목소리는 여덟 번 들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참고 참으면서 했다가 곧 열흘에 한 번씩 두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혜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한 달 전이다.
그것은 박서현이 얼굴 보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 감질맛나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도 했다.
하긴 한 달 전에 전화를 했을 때 아빠의 목소리를 열흘 만에 듣는 미혜의 반응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핸드폰을 귀에 붙였을 때 곧 박서현의 응답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발신자 번호를 보았기 때문이다.
“응, 나, 공항인데….”
대답이 없었으므로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어때, 지금 갈까?”
“나, 지금 친정집에 있어.”
이제는 서동수가 입을 다물었고 박서현의 목소리가 이어 울린다.
“그리고 참, 나 앞으로 여기서 살 거야. 어머니가 미혜 봐준다고 해서.”
“…….”
“미혜도 할머니 따르니까 잘됐지, 뭐, 할아버지도 좋아하시고.”
“…….”
“그러니까 이번에는 안 만나는 게 낫겠는데, 미혜도 찾지 않으니까 말야.”
“…….”
“지금 오빠 식구들이 와서 미혜가 놀고 있거든? 그럼.”
하고 전화를 끊을 기색이 보였으므로 서동수가 다급하게 불렀다.
“저기, 미혜 선물은….”
서동수의 시선이 발밑에 내려놓은 선물 보따리로 옮겨졌다.
선물백이 두 개였고 옷가방에도 들었다.
그때 박서현이 말했다.
“거기 애들한테 줘, 여기도 많아.”
거기 애들이란 형 애들을 말한다.
조카다. 그순간 숨을 들이켰던 서동수가 말했다.
“이, 시발년이.”
그 순간 전화가 끊겼으므로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눈앞이 흐려졌으므로 이것은 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서러워서, 미혜가 그리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이윽고 눈물이 흘러내리자 서동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꼴좋다. 이 새끼야.”
서동수가 잇새로 말했을 때 앞을 지나던 남녀 둘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공항건물 앞에서 지저분한 얼굴로 지껄이는 사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공항버스에 오른 서동수는 5분 만에 다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눌렀더니 신호음이 일곱 번이 울렸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핸드폰을 귀에서 뗀 서동수가 열 번째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정지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오피스텔의 정은지다.
다섯 달 동안 연락을 안 했으니 지금 오피스텔에 사는지 어쩌는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서동수가 이제 창밖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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