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6장 중추절(3)
(110) 6장 중추절-5
위스키 두 잔을 마시고 아래층 세탁소 방으로 들어왔다.
상대는 나긋나긋한 숏커트. 아직 성도 모른다.
그쪽 또한 서동수 이름도 묻지 않았으므로 피장파장이다.
가운데 여자는 방에 혼자 남았고 우명호는 제 옆에 앉았던 여자하고 옆방으로 갔다.
만난 지 20분도 안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씻을래?”
하고 여자가 불쑥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시선을 들었다.
방에 들어와서 첫말이 반말인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같이 씻자.”
“싫어. 너 먼저 씻어.”
여자가 턱으로 욕실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난 운동하고 씻었어. 손만 닦을래.”
“나도 사우나하고 왔으니까 손만 씻고 나오지.”
그러고는 서동수가 손만 씻고 나왔더니 방안의 불이 다 꺼져 있었다.
그때 침대 위에서 여자가 물었다.
“콘돔 가져왔지?”
서동수가 잠자코 침대 끝에 앉았더니 여자가 말을 잇는다.
“글고 내 가슴 만지지마, 키스해도 안돼, 코 건드리지 말고.”
“…….”
“거기 넣을 때 살살 넣어줘. 상처 나면 안돼.”
“…….”
“네 거, 커? 너무 크면 곤란한데, 크면 늘어나는 것 같더라니까?”
“…….”
“지금 옷 벗는 거야?”
“…….”
“글고 될 수 있으면 후배위로 해줘.”
여자의 나긋나긋한 말이 끝났을 때
서동수가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붙은 전등 스위치를 켰다.
침대에 누운 여자가 눈이 부신 듯 눈썹을 찌푸렸다.
“불 꺼.”
“나 갈게.”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네 말을 듣다가 식어버렸어.”
서동수가 눈으로 제 다리 사이를 가리키고 나서 다시 웃었다.
“나, 이런 경우 처음야. 어지간한 여자 앞에서는 다 섰거든?
그런데 네 앞에선 안 돼. 항복이야.”
두 손을 들어 보인 서동수가 몸을 돌리면서 말을 잇는다.
“충고할게. 소시지 대자로 하나 사서 포장지 뜯지 말고 엎드려서 거기다 박아.
너한테는 그게 맞아.”
방을 나올 때까지 여자가 말대답을 안 한 것은 벗고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
그것도 위는 셔츠 차림이었으니 아래만 벗었을 테니
미친년이 아닌 이상 그 꼴로 일어나 화를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방을 나온 서동수는 아예 세탁소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층 룸에서는 가운데 여자가 기다릴 테지만 서동수는 지나는 택시를 세웠다.
앞으로 메이는 두 번 다시 불러주지 않을 것이지만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중국은 대륙이다.
지금까지 보지도 겪지도 못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택시 차창 밖으로 보름달 가깝게 된 달이 둥실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한국도 추석이 가까워온다.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딸 미혜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헤어진 지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가
그것을 열흘에 한 번, 보름에 한 번으로 미뤘더니
이젠 미혜가 별로 찾지 않는다고 했다.
다 전처 박서현의 작품이다.
(111) 6장 중추절-6
다음날은 오전 근무만 하고 중추절 휴가가 시작된다.
상여금을 받은 직원들은 들뜬 분위기였고 공장 운동장에는 전세버스가
150여 대나 대기하고 있어서 장관을 이루었다. 각지로 떠날 버스다.
이것도 모두 총무과 업무여서 마지막 버스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서동수는 지켜봐야만 했다.
공장장 윤명기도 운동장에 서서 마지막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더니 서동수에게 말했다.
“지난 구정 때 귀사율(歸社率)이 83%였어. 하지만 이번에는 90% 이상이 될 것 같구먼.”
근래 경기가 불황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으면 일자리와 임금이 올라가고 더 좋은 회사로 옮기는 비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귀사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자, 그럼 난 간다.”
서동수의 어깨를 손으로 툭 치며 윤명기가 말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윤명기만 들으라고 낮게 말한 서동수가 몸을 돌렸을 때 운동장 한쪽에 서있던 화란과
시선이 마주쳤다.
오후 2시 반쯤 되었다.
텅 빈 운동장에 휴지와 빈 캔, 플라스틱 병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역시 총무과 소속 청소 직원들이 치우는 중이다.
서동수가 다가가자 화란은 긴장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화란은 오늘 분홍색 스웨터에 바지 차림이다.
“이 대리는?”
다가선 서동수가 묻자 화란이 시선을 비키면서 대답했다.
“조금 전에 갔는데요.”
“점심시간에도 보이지 않던데.”
지금 이인섭을 물은 것이다.
화란이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서동수가 다시 묻는다.
“현재 몇 명이 남아서 정리하고 있지?”
화란이 정리 책임자로 임명되어 있는 것이다.
기계실 직원까지 모두 나와 어지럽혀진 식당과 운동장을 정리하고 있다.
화란이 손에 든 상황판을 보더니 대답했다.
“23명요. 4시까지는 끝내고 퇴근시키겠습니다.”
“좋아. 그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릴게.”
그러고는 서동수가 주머니에서 고무줄로 감은 1백 위안권 돈뭉치를 꺼내 화란에게 내밀었다.
“이거 5천 위안이야. 1인당 2백 위안씩 나눠줘. 이건 마지막까지 정리한 대가라고 해.”
“그럼 청소한 사람들은 보너스를 두 번 받게 되는군요.”
환하게 웃는 화란이 돈뭉치를 받더니 반짝이는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모두 좋아할 거예요.”
“이 돈이 어떤 돈인지 궁금해할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은 화란이 다시 웃었다.
“그런 것까지 따질 만큼 비뚤어지지 않았거든요.”
“이인섭은 그만둘 모양이군.”
이제는 서동수가 외면한 채 말했더니 화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의 표시다.
오후 4시 10분, 사무실에 혼자 앉은 서동수가 안으로 들어서는 화란을 본다.
“다 끝났습니다.”
다가온 화란한테서 옅은 향내에 섞인 풀냄새가 맡아졌다.
선선하다.
앞쪽에 선 화란이 말을 이었다.
“청소한 사람들에게 2백 위안씩을 봉투에 넣어서 나눠 주었어요.
모두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묻는다.
“어때? 오늘 나하고 술 한잔 할까?”
“그러실 줄 알았어요.”
눈웃음을 친 화란이 말하자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목구멍이 좁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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