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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6장 중추절(2)

오늘의 쉼터 2014. 7. 25. 22:29

<55> 6장 중추절(2)


 

(108) 6장 중추절-3

 

 

 

퇴근 무렵이 되었을 때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발신자 번호를 보았더니 화란이다.

 

화란은 이인섭과 함께 사무실을 나간 후에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서동수가 대답했다.

“응, 무슨 일이야?”

“아까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더군요.”

화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인섭에게 확인한 것이다.

 

서동수가 잠자코 있었더니 화란이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이 대리하고 같이 있었어요. 이 대리는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

“옌지 공장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서동수는 핸드폰만 귀에 바꿔 붙였다.

 

이인섭이 발령받은 공장은 옌지에 위치한 부속용 레이스 공장이다.

 

본 공장은 18개의 보조공장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관리자는 과장급이 파견되었다.

 

이인섭은 옌지의 제13공장 소속의 업무과 대리로 가게 된다.

 

근로자 140명에 관리 인원이 5명뿐인 곳이다.

 

그곳에는 대리급 보직도 없어서 주임이 맡았던 일을 맡게 된다.

 

다시 화란이 말을 잇는다.

“말은 그랬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이곳에다 집도 사놓고 가족도 옮겨갈 것 같지 않아요.

 

제가 이 대리 와이프를 좀 알거든요.”

“…….”

“화사를 그만둘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압니다.”

하더니 수화구에서 긴 숨소리가 났다.

보스, 오늘밤 술 한잔 사주실래요?”

“약속이 있어.”

“절 피하시는 거죠?”

“이봐.”

서동수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너하고 이런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야.”

“미안합니다. 보스.”

화란의 목소리도 선명해졌다.

“보스도 답답하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건 업무적으로 처리해야 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서동수는 잠자코 핸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이인섭과 화란을 좌우로 삼아 총무과를 이끌어 가려고 작정했던 서동수다.

 

그것을 이인섭도, 화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되돌릴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핸드폰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귀에 붙인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곧 목소리가 울렸다.

“예, ‘청양세탁소’입니다.”

그곳이다. 오 여사를 만난 얄궂은 카페, 전화는 세탁소로 받는구나.

“나, 서 사장이요.”

그러자 여자는 반색을 했다. ‘메이’ 사장이라고 했던가?

“아유, 마침 잘 되었습니다. 제가 우 사장님한테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요.”

우 사장이란 우명호, 여기서는 다 사장이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 손님 셋이 오셨어요. 모두 30대로 미인입니다. 30대요.”

 

여자는 ‘30대’를 두 번이나 강조했다. 30대 골퍼들이란 말인가?

“돈 많은 사람들이요?”

불쑥 심술이 난 서동수가 그렇게 물었더니 여자의 목소리에 열기가 더해졌다.

“난 돈 없는 여자, 손님으로 안 받습니다. 그럼 내 손님 다 나갑니다.”

내 손님이란 이곳의 남자들이란 말이었다.

 

어깨를 편 서동수가 마음을 굳혔다.

 

꿀꿀한 기분이었는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화란에게 약속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좋아, 우 사장한테 연락해요. 오늘 저녁에 갈 테니까.”

잘하면 시간당 1백만 원을 또 받을지 모른다.

 

 

 

 

 

(109) 6장 중추절-4

 

 

서동수가 이름도 없는 세탁소 2층 카페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8시 10분이다.

 

오늘도 카페는 텅 비었지만 방 안에 손님이 하나 있었다.

 

우명호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밥도 안 먹고 왔다.”

긴장한 우명호의 얼굴이 마치 결사대로 자원한 신병(新兵) 같았다.

“허기져서 뛸 수 있겠냐?”

그렇게 말을 받는 서동수 또한 가망 없는 마라톤 대회에 나온 선수 같다.

 

케냐놈들이 집단 배탈이나 걸리면 기회를 얻을 것이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표정을 짓고 앉아 있다.

 

그런데 주인여자 ‘메이’가 술과 안주를 갖다놓은 지 10분도 안 되어서 여자들이 들이닥쳤다.

 

셋이다. 그런데 웬일, 다 쭉쭉빵빵인 데다 미모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는가?

 

우명호는 덤벙거리느라고 인사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서동수가 수습했다.

 

이곳은 ‘메이’가 여자만 집어넣고 가는 터라 누군가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

“자, 먼저 그냥 앉으시지요.”

서동수가 셋에게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쪽수가 맞지 않으니까 먼저 앉으시고 나서 협상을 하십시다.”

그러자 여자 둘은 키드득 웃었는데 하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요? 협상?”

그러면서 앉기는 한다.

 

셋이 안쪽에 나란히 앉는 바람에 서동수와 우명호는 좌우 끝으로 배치되었다.

 

그때 눈썹을 올렸던 여자가 서동수에게 다시 묻는다.

“아까 협상이라고 했죠? 어떻게 하는 건데요?”

“가위바위보를 하든지 심지 뽑기, 또는 퀴즈 맞히기도 있겠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서동수는 셋을 살폈다.

 

활짝 피어난 미인들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특징이 있고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30대는 맞는 것 같다.

 

30대 후반쯤이고 이 정도로 제각기 여유를 부릴 정도면 시간과 돈을 엄청 투자해야 될 것이었다.

 

나이아이초등학생쯤 될 텐데 오죽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인가?

 

학원, 개인교습에다 한 반에 30여 명뿐이라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에 걸리면

 

학부모 모임에 쫓아다녀야 한다.

 

골프채 들고 날아와 국산 고추맛 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30대 한국 여자의 인생이다.

 

그때 서동수 옆에 앉은 숏커트한 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죠. 내가 알기로는 우리가 우선권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협상이 아니라 선택권이 있는 거죠.”

서동수는 여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심호흡을 했다.

 

맞다. 호빠 스타일로 알고 찾아온 것이다.

 

이쪽 남자는 선택권이 없다.

 

그러자 가운데 앉은 여자가 다시 나섰다.

“맞아, 이 사람이 나서는 바람에 잠깐 헷갈렸어. 우리가 우선권이 있어.”

서동수의 시선이 우명호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명호는 멍한 얼굴이다.

 

다 듣기는 할 테니 누가 주도권을 쥐건 간에 내 고추가 굴 속에 들어가면

 

된다는 심보인지 편안하게 늘어져 있다.

 

서동수가 술잔을 쥐었다.

 

그러고는 한 모금에 삼키고 나서 말했다.

 

좋아. 굽히기로 하자.

 

“뭐, 아까운 시간 소모하지 마십시다. 누가 날 잡아드실 겁니까?”

“나.”

하고 나선 것이 서동수 옆에 앉은 숏커트 머리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자가 키드득 웃었다.

“탁탁 내던지는 말투가 맘에 들었어.”

“나두.”

가운데 여자가 말했으므로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둘 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겸손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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