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6장 중추절(1)
(106) 6장 중추절-1
이틀 후가 중국의 중추절이 되어서 공장 분위기는 들떠있다.
중추절은 음력 8월 15일로 한국의 추석과 같은 명절인 것이다.
양력 10월 1일인 국경절까지 끼어서 이번에는 8일간의 연휴가 된다.
점심 식사가 끝난 오후 1시반경에 서동수가 공장장실로 들어섰다.
이제는 사전에 면담 신청부터 할 필요가 없다.
공장장 비서에게 지금 뵈러 가겠다고 연락만 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바로 통과다.
“어, 무슨 일이냐?”
앞쪽 소파에 앉는 서동수에게 윤명기가 묻는다.
깐깐하며 권위적인 윤명기가 이렇게 탁 트고 대하는 직원은 서동수 하나뿐이다.
지금까지 내재(內在)한 채 분출하지 못했던 윤명기의 성품 한 자락이 서동수에 의해
터져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비서가 음료수를 가져왔으므로 잠자코 기다렸던 서동수가 방에 다시 둘이 되었을 때 입을 열었다.
“모레 아침에 귀국하시면 서울에 계실 겁니까?”
“이틀간은 일을 하고 고향에 가 봐야지, 그런데 왜?”
“그럼 서울에서 뵈어야겠습니다.”
“글쎄,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귀국하시는데 선물값 좀 드리려고 합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
둘의 대화는 거침이 없다.
윤명기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안 부장한테서 받은 부동산 정리를 끝냈습니다.
거기서 나온 위안화를 제 친구 통해서 한국에서 현금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이제 윤명기는 듣기만 했고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현금으로 3천 가져가겠습니다. 모레 밤에 제가 서울 댁으로 찾아뵐까요?”
“그래라.”
머리를 끄덕인 윤명기가 길게 숨을 뱉고 나서 웃었다.
“너, 전자 있을 때도 이런 식이었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가 책임을 다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이제는 머리만 끄덕이는 윤명기를 향해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공장장님은 제가 존경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누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윤명기가 뱉듯이 말한다.
“나는 너한테만 뒤집어씌우는 성격이 아니야, 나도 책임을 진다.”
서동수가 시선을 들었지만 윤명기는 외면했다.
그렇다. 윤명기는 다를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기로에 섰을 때는 그때 가봐야 안다.
서동수는 한번 겪은 터라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경험은 어떤 지식보다 낫다.
사무실로 돌아온 서동수가 화란과 이인섭을 회의실로 불렀다.
화란은 사흘 전 회식하던 날 밤에 만난 후부터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둘이 앞쪽에 나란히 앉았을 때 서동수가 먼저 이인섭에게 묻는다.
“중추절 때 고향에 갈 건가?”
화란도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쓴다.
그러자 이인섭이 서동수를 보았다.
“예, 버스표 끊어 놓았습니다.”
“나도 한국에 다녀올 거야.”
이인섭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이틀 전부터 국제공사의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인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담당 대리인 데도 공사 현장에 나가 보지도 않아서 공사 측 실무자가 사무실로 자주 찾아왔다.
그것이 서동수의 눈에도 보였으니 시위성 반항이다.
서동수 얼굴에 저절로 쓴웃음이 일어났다.
경력이 짧아서가 아니라 직장 문화가 조성되지 않은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못한다.
(107) 6장 중추절-2
그때 서동수가 다시 말했다.
“중추절 끝나면 총무과 내부 인사이동이 있을 거야.
업무가 많아져서 충원도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전출도 있어야겠지.”
그 순간 이인섭은 물론 화란도 놀란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금시초문일 것이다.
서동수는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과장은 인사권이 있다.
더구나 자신은 공장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을 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말하는데 혹시 전출가고 싶은 부서가 있으면 말해.
직원들한테도 물어보고, 발령이 나기 전에 말해줘야 해.”
“알았습니다.”
하고 화란이 머리를 끄덕였지만 이인섭은 굳어진 얼굴로 시선만 주었다.
이인섭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말했다.
“이 대리는 옌지공장 관리부로 발령을 내려고 해. 고향이니까 괜찮겠지?”
그 순간 이인섭이 몸을 굳히고는 시선만 주었다.
그런데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서동수가 똑바로 시선을 받으면서 말을 이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사항이 있거나 무슨 비리를 안다면
오늘이라도 성(省) 정부나 공안에 신고하도록 해.
옌지로 가게 되면 그럴 여유가 없을 테니까.”
이인섭은 눈을 치켜떴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대신 눈 주위가 빨갛게 상기되었고 입술 끝에 경련이 일어났다.
“보스.”
입을 연 것은 화란이다.
화란이 서동수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서동수가 화란의 시선을 볼에 받으면서 이인섭에게 말했다.
“성화공사 사람이 22만 위안을 리베이트로 낸다는 것을
나한테 18만 위안으로 보고를 했더구만.”
“했더구만”이 아니라
“하더구만”으로 표현해야 맞았지만 지금도 중국어를 모르는 시늉을 하는 터라
표현에 신경을 쓴다.
서동수의 말에 이인섭이 숨을 들이켜는 것까지 보였다.
놀란 것이다.
화란은 놀라 입을 딱 벌렸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성화공사 사장을 불러 대질시킬 필요는 없겠지?”
그 순간 이인섭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시선도 내렸다.
전의(戰意)를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서동수가 똑바로 이인섭을 보았다.
“내가 국제공사로 계약을 하니까 리베이트를 나 혼자 독식하는 줄로 알고
업무에 비협조적이었지?”
“과, 과장님.”
했지만 이인섭은 목이 멘 듯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이마에 땀방울이 돋아나 있다.
“그 리베이트는 성(省) 정부와 협의해서 복지활동에 투자하기로 본사의 결재까지 받았다.
넌 신의를 배신한 사람이야.”
이제 이인섭은 머리만 숙인 채 어금니를 물고 있다.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약점이 잡힐 사람 같더냐?
난 너한테 기회를 주었지만 넌 배신으로 갚았어.
욕심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다 너 스스로가 망쳐놓은 일이다.”
화란이 알아듣도록 영어로 또박또박 말해준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먼저 방을 나왔다.
험담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후 주임이나 화란의 말을 들었을 때까지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수습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국제공사의 일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이인섭에게는 국제공사에서 나온 리베이트가 복지자금으로 쓰인다는 말이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마치 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손에 쥔 패가 없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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