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43] 5장 대륙(1)

오늘의 쉼터 2014. 7. 25. 19:41

 

 

[43] 5장 대륙(1)


 

(85) 5장 대륙-1



 

 

 

다음 날 저녁, 서동수가 칭다오 시내의 해산물식당 ‘청해’의 방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화란이 일어섰다.

“음, 혼자 기다린 거야?”

하고 영어로 물었더니 화란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순간 서동수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머리가 뜨거워졌고 목구멍이 갑자기 말라 

 

위축되는 느낌을 받는다. 

 

감동(感動) 또는 성적(性的) 충동을 느꼈을 때의 현상이다. 

 

화란은 아름답다. 

 

진홍색 원피스는 어깨와 허리, 그리고 엉덩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냈고 

 

미끈한 두 다리는 무릎 밑에서부터 맨살이다. 

 

서동수가 자리에 앉았을 때 화란이 메뉴판을 건네주며 묻는다.

“과장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시킬까요?”

“그래 주면 좋지.”

중국 요리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모르면 아는 사람한테 맡기는 것이 낫다. 

 

벨을 누른 화란이 들어온 종업원에게 중국어로 요리를 시키는 모습을 

 

서동수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이 사람은 한국인이니까 기름을 많이 넣지 않도록 부탁해요.”

그렇게 화란이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서동수가 듣는다.

“돈은 내가 내는 것이니까 비싼 것만 내놓으면 곤란하죠.”

정색하고 그렇게도 말했고,

“진짜 높은 분이니까 음식 건성으로 만들지 말라고요.”

그와 비슷한 내용으로 주의를 주는 것도 들었다. 

 

이윽고 주문을 끝낸 화란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과장님, 긴장하고 계시죠?”

하고 화란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다.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응, 예상 밖이야. 나는 약간 심각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있었거든.”

“할아버지가 전우(戰友)의 손자분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불쑥 화란이 말했을 때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이인섭한테 들은 이야기다. 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러나 서동수는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시선만 준다. 

 

화란이 여전히 가벼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베이징에서 큰 사업체를 갖고 있더군요. 

 

물론 유력자인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사업체였죠.”

“…….”

“두 번째 만났을 때 분명하게 말했어요. 

 

난 내 길을 가겠다. 

 

당신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나흘 전이에요.”

그러고는 화란이 물잔을 들었으므로 서동수가 입맛을 다셨다.

“그것이 나하고 사적으로 만나자는 이유란 말인가?”

“그건 내 일상을 말씀드린 것이고요. 실은 인사를 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요.”

“무슨 인사?”

“거금 3만 위안을 주신 인사.”

“그건 진즉 끝난 일이야.”

 

“저한테는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차려야 끝나는 것이라고요.”

 

“앞으로는 안 해도 돼.”

그때 방으로 요리 접시를 든 종업원이 들어섰지만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난 네가 이따위 인사치레, 일상 보고를 할 줄도 약간 예상은 했지만 

 

내 식으로 주머니에 콘돔을 넣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다.”

‘콘돔’ 소리에 여종업원이 힐끗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러자 화란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는 소리내어 웃었다. 

 

얼굴이 조금 붉어졌고 반짝이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입을 막은 손가락이 미끈했다. 

 

이윽고 손바닥 사이로 화란이 말했다.

“그래요, 난 과장님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자신있게 거절할 수가 있었다고요.”

 

 

 

 

 (86) 5장 대륙-2




서동수는 잠자코 화란을 보았다. 

 

이제 화란은 젓가락으로 요리를 깔짝거리고 있었는데 차분한 표정이다. 

 

이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중국식 프러포즈인가? 

 

어쨌든 오해할 가능성이 많은 대사다. 

 

이윽고 서동수가 말했다.

“그렇지. 화란도 잘 알다시피 난 부패한 직장인의 모델 같은 인간이지. 

 

룸살롱에서 여자를 고르는 것이 유일한 취미기도 하고….”

화란이 머리를 들었으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따라서 날 떠올리면 남자에 대한 환멸이 일어날 거야. 그렇지?”

그렇게 물었을 때 화란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해야 정상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화란은 소리 없이 웃기만 했고 종업원들이 다른 요리를 가져왔다. 

 

해삼과 새우, 생선조림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서동수는 젓가락을 들고 해삼을 집는다.

그때 화란이 물었다.

“산동실업 문제는 결정하셨어요?”

그 순간 서동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것 때문인가? 

 

화란은 지금까지 산동실업에서 두 번 리베이트를 받아왔다. 

 

합계 12만 위안. 아직 사용 용도를 결정하지 않아서 이인섭이 보관하고 있다.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화란이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그 돈을 시골의 학교 건물을 증축하고 보수하는 비용으로 전달한다면 

 

회사 이미지는 물론한국의 국격도 높아질 텐데요.”

서동수는 숨을 죽였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많이 해온 터라 표정관리는 자신이 있다. 

 

그러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것이다. 

 

어제 이인섭이 말해주었다. 

 

지난번 화란에게 준 3만 위안을 할아버지가 고향의 학교 증축 자금으로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그 학교에 다시 쏟아부으려고 하는구나. 

“화란이 한국의 국격까지 생각해줄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감동했다.”

해삼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서동수가 화란을 향해 눈웃음을 쳤다. 

 

속으로 욕지거리가 솟아올랐다. 

 

망할 년, 여우 같은 년 같으니라고. 씹던 것을 삼킨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좋아. 검토 해보기로 하자. 

 

그렇게 된다면 공장장한테도 보고를 해야 될 테니까 말야.”

“지금까지 산동실업에서 리베이트를 받아먹은 인간들은 모두 처벌받은 셈이 되었으니까 

 

명분이 섭니다. 그리고….”

화란이 생기 띤 눈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그 인간들이 우리들의 리베이트 사용 건을 문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뻔히 알고 있으니까요.”

과연 그렇다. 

 

그래서 서동수는 선뜻 분배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탈이 날 가능성이 많은 돈이다. 

 

화란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참고하지. 그런데 어느 시골의 학교인지 정해 놓은 곳이 있나?”

네 할아버지가 도와준 시골학교가 어디냐고 묻고 싶었지만 또 참는다. 

 

그러자 화란이 대답했다.

 

“산둥성 내륙 깊숙한 오지예요. 

 

결정만 되면 그쪽은 현령부터 반길 것입니다.”

현령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군수쯤 된다. 

 

임명제지만 현령의 권한은 막중하다. 

 

현의 면적이 커서 한국의 도(道)만한 현도 많은 것이다.

“알았어. 요리나 먹자고.”

다시 젓가락을 들면서 서동수가 말했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화장실에서 나온 것처럼 개운해졌다. 

 

주춤거리던 화란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베이트를 어떻게 쓰든 간에 이제 화란은 당당하게 받아낼 것이다. 

 

그것을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5] 5장 대륙(3)  (0) 2014.07.25
[44] 5장 대륙(2)  (0) 2014.07.25
[42] 4장 한국인(11)  (0) 2014.07.25
[41] 4장 한국인(10)  (0) 2014.07.25
[40] 4장 한국인(9)  (0)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