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4장 한국인(9)
(79) 4장 한국인-17
식탁에는 넷이 둘러앉았는데 상석이 화석영, 할아버지다.
올해로 92세지만 정정하다.
다만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을 뿐이다.
올해 58세, 칭다오의 동성의료원 행정주임,
그리고 어머니 양주는 53세로 역시 동성의료원 간호주임,
안쪽 자리에 화란이 앉았으니 이 네 식구가 3대(代)다.
오늘은 화란이 일찍 퇴근해서 모처럼 3대가 같이 식사를 한다.
할아버지 화석영은 모 주석과 함께 대장정을 한 군(軍) 원로다.
비록 장군은 못되었지만 유공자여서 연금이 나오는 것이다.
넷이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다.
화란이 갑자기 돼지고기 그릇 옆에다 만 위안권 뭉치 세 개를 놓았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뭐냐?”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아버지는 잠자코 시선을 든 채 물을 삼켰고 할아버지는 장개석군(軍)을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이거, 과장한테서 받았어요.” 화란이 돈을 흘겨보며 말했다. “과장이 왜?” 또 어머니. 그래서 화란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맨 마지막으로 과장이 임자 없는 돈이니까 먹는 게 임자라는 말을 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을 때 식탁 주위로 잠깐 정적이 덮였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은 돈뭉치에 박혀 있다.
그때 먼저 정적을 깨뜨린 사람은 집안 어른인 할아버지다.
“나쁜 놈이군.” 할아버지가 말하자 착한 아버지가 금방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과장 그놈, 질이 좋지 않은 놈입니다. 이놈이 화란이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돈은….”
“아니” 하고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아버지의 말을 막았다. “그, 홍 아무개라는 건설업자 말이다.” “아아, 예.” “나쁜 놈이다.” “맞습니다, 중국인 얼굴에 똥칠을 한 놈이….” “아니죠.”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버지 말을 막았다. “홍 아무개는 조선족이라지 않아요? 중국인이 아니라구요.” “아니, 왜 아냐? 조선족도 중국인이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그사람들이 들으면 싸우려고….”
“가만.” 다시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말을 막고는 화란에게 묻는다. “과장은 한 푼도 안 먹고 다 너를 준 것이란 말이냐?” “네. 할아버지.” “그놈은 홍 아무개한테서 직접 받은 것도 없고?” “없어요. 할아버지.” “그리고 저 돈을 다 네가 가지라고 했단 말이지?” “네. 하지만….” “기분이 언짢냐?” “네. 할아버지.” “왜?” “저를, 아니, 중국인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서요.” “그건 아닌 것 같다” 하고 할아버지가 말했을 때 어머니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아버님. 아닌 것 같네요.” “그럼 뭣이란 말이냐?” 할아버지가 묻자 어머니는 당황했다. “그냥 아닌 것 같습니다.” 화란은 심호흡을 했다. 괜히 말을 꺼냈다.
※그동안 ‘서유기’ 삽화를 그려온 이두식 화백이 23일 별세했습니다. 서유기 79회(25일자)·80회(26일자) 삽화는 이 화백의 유작입니다. |
(80) 4장 한국인-18
집에 돌아왔을 때는 오후 9시쯤 되었다. 오늘도 거래처와 저녁을 먹고 반주로 마신 소주가 한 병쯤 되었다.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오겠다고 했는데도 집에만 오면 꼭 이렇게 묻는다.
“아, 먹었어요.” 건성으로 대답한 서동수는 방에서 나오는 백미현을 본다. “다녀오셨어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미현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항상 이렇다. “어, 그래.” 손까지 들어보인 서동수는 저절로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혼자 안방으로 들어선 서동수가 저고리를 벗으면서 진짜 마누라라면 안방까지
안에서 준비를 하라는 의도가 아니다.
와이프가 문을 열어주는 풍경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박서현과 살 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들어갔다가 벌거벗고 엉킨 연놈을 만날까 봐서 벨도 못 누르고 전화질부터 했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 소파로 나와 앉았더니 주방에 있던 조은희가 꿀물을 타서 앞에 놓는다.
꿀물잔을 든 서동수가 조은희에게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앉으세요.” 조은희가 다소곳이 앞쪽에 앉는다.
오늘은 원피스 차림이어서 미끈한 무릎과 맨다리가 드러났다.
아파트의 방은 4개다.
안쪽에 방이 좌우로 있고 현관 쪽에 두 개, 그쪽 손님방을 조은희 모녀가 썼고
문간방은 비워둔 상태다.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그 방을 미현이 공부방으로 하십시다.
내일 조 여사가 책상과 침대, 이불 같은 걸 사다 놓으세요.”
서동수가 주머니에서 고무줄로 묶은 돈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만 위안인데 그걸로 사 보세요.” “아니, 전.” 겨우 입을 연 조은희가 양쪽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 것이 꼭 금방 양쪽 귀뺨을 맞은 것 같다.
흰 손등 사이로 보인 얼굴이 온통 빨갛다.
“내가 요즘 해장국을 잘 먹어서 그런지 체중이 늘었어요.” 트림하는 시늉을 하면서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따라 일어선 조은희가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서동수는 몸을 돌렸기 때문에 조은희의 표정은 못 보았다.
1주일밖에 안 되었지만 집안은 마치 리모델링을 한 것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에는 호텔방 같던 것이 지금은 진짜 가정집 같다.
집에서 아침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몸에 살이 찌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서는 서동수의 등에 대고 조은희가 말했다.
“조금 있다 방에 꿀물 주전자 갖다 놓을게요.”
“어.” 하고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지만 서동수는 조은희의 조심성 있는 처신에
또 감탄한다.
꿀물을 가져다 놓으려고 들어갈 테니까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쑥 들어서면 오해했다가 실망할 경우에 대비해서 저런다.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는 문득 방이 너무 넓다고 느껴졌다.
내일부터 김재학 화백이 삽화 연재소설 ‘서유기’의 삽화가가 28일부터 김재학(61) 화백으로 바뀝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삽화를 그려온 이두식 홍익대 미대 교수가
23일 갑작스레 별세하면서 그 후임으로 김 화백이 새롭게 삽화를 맡습니다.
김 화백은 무채색 배경의 장미꽃 그림을 비롯해 소나무와 바다가 있는 풍경 및
전통악기 징 그림과 안나푸르나 설산 그림 등 사실적 화풍으로 두각을 나타내왔습니다.
미술대학 출신이 아닌 독학파 화가로 인물화, 수채화 및 드로잉에서도 극사실적 묘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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