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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장 한국인(11)

오늘의 쉼터 2014. 7. 25. 19:38

[42] 4장 한국인(11)

 

 

(83) 4장 한국인-21 

 

 

“그 돈 문제는 아닐 겁니다.”

서동수의 이야기를 들은 이인섭이 말했다.
 
오후 12시 반, 둘은 청양 시내의 한식당에서 낚지볶음 정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중국의 한식당은 한국식당보다 더 맛있는 곳이 많다.
 
사람이 많아 소란스러웠으므로 이인섭이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제가 화란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거든요. 아마 다른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 무슨 일인 것 같나?”

물잔을 들면서 서동수가 물었다.
 
이인섭은 이제 심복이다.
 
그러나 전자팀에서처럼 다 오픈시키지는 않았다.
 
코를 꿸 만큼만 오픈시켰다.
 
머리를 기울였던 이인섭이 서동수를 보았다.

“화란은 영리하고 이해심도 많은 성품이지만 과장님에 대한 감정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정색한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내가 존경받을 인물이냐? 리베이트 먹고 잘린 놈이다.”

“하지만 배울 점이 많습니다.”

“넌 존경한다고 하려는 것 같은데, 그만둬.”

“화란한테 결혼하라고 가족이 압력을 넣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동수는 이제 입을 다물었고 이인섭의 말이 이어졌다.

“베이징에서 큰 사업체를 가진 사람이라는데요.
 
저도 제 와이프한테서 들었습니다. 

와이프하고 화란이 가끔 통화를 하거든요.”

“그럼 그놈 때문에 나하고 만나는 거야?”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니까요.”

“그건 회사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어.”

“그 일로 상의할 수도 있지요.”

“상의는 무슨.”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물론 이인섭에게 한국식 사적 만남의 전통 따위에 대해서 말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는 상사원에게 너희들은 ‘국가의 얼굴’ 또는 ‘대표’라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주의해야 된다고 교육을 시켰다.
 
지금도 입장이야 같지만 한 해에 수백 만 명이 해외를 들락이는 상황이 되다 보니
 
국경이 없어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곳이 외국이라는 현실을 서동수는 다시 한번 느낀다.
 
그때 이인섭이 말했다.

“화란 할아버지는 90세가 넘었는데 군 원로입니다. 아직도 정정하시지요.”

“들은 것 같다.”

“그 할아버지가 과장님이 주신 돈을 고향의 학교 증축 자금으로 기부하셨다고 합니다.”

“무엇이?”

놀란 서동수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럼 그 돈을 놓고 가족회의를 했단 말인가?
 
서동수의 눈앞에 수만 명의 대의원이 모여 있고, 

후진타오, 시진핑이 둘러앉은 테이블이 떠올랐다.
 
테이블 위에 3만 위안이 놓여져 있다.
 
그때 이인섭이 말을 잇는다.

“할아버지가 그러셨답니다.
 
통이 큰 놈이라고. 중국 발전을 위해서는 그런 놈이 필요하다고 하셨다는군요.”

“뭐라고? 놈?”

“죄송합니다.”

이인섭이 손으로 뒤통수를 만졌다.
 
그러나 얼굴은 멀쩡하다.
 
웃지도 않는다.

“화란이 말한 대로 전해드리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화란이 날더러 놈이라고 했단 말이지?”

“할아버님이 하신 말을 그대로 전한 것이지요.”

그때 손목시계를 본 서동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1시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 다 되었다. 가라.”

근처에서 동북건설을 대신해서 공사를 맡을 건설회사 사장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84) 4장 한국인-22 

 

 

성화공사(成化公社) 사장 동관은 50대쯤의 건장한 체격으로 배가 나왔다. 

 

서동수가 중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남자들이 배가 나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밀고 다니는 것 같다.

가끔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본 배가 나온 승려의 호탕한 모습도 그럴듯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배문화’가 다른 것 같다고 이해를 했다. 

 

하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을 보면 풍만한 여자가 대세다. 

 

그때는 여자의 배에 최소한 삼겹살은 붙어야 미인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호텔 커피숍에 마주 앉았을 때 동관이 말했다. 

 

물론 중국어였고 서동수는 이제 다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한다. 

 

동관이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이인섭이 통역을 한다.

“제 소문이 나쁘게 난 모양이지요?”

하고 서동수가 물었더니 이인섭이 통역했다.

“저에 대해서 들으셨습니까?”

서동수는 숨을 들이켰다. 

 

다른 분위기로 통역이 된 것이다. 

 

조은희 덕분에 귀가 뚫린 것을 이인섭이 모르고 있다. 

 

그때 동관이 대답하는 것을 서동수가 직접 들었다.

“동양공장을 들락이는 업자들이 수십 명이거든요. 

 

그들한테서 들었는데 영향력이 가장 강한 총무과장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인섭이 통역한다.

“지나는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업자들, 그리고 공원들한테서요. 

 

총무과장님 평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서동수는 등에 찬 기운이 스치고 지나는 것을 느낀다. 

 

이인섭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다. 

 

현지인과 상대할 때 통역을 잘못 쓰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어는 꼭 익혀야 한다. 

 

그러나 서동수는 내색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등록서류를 주시지요.”

그 말은 이인섭이 그대로 통역했고 동관이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봉투를 받은 서동수가 이인섭에게 건네주고는 똑바로 동관을 보았다.

 

넓은 얼굴에 콧날도 두툼했고 온화한 인상이다.

“동북건설의 가격으로 나머지 공사를 받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인섭이 이번에도 그대로 통역했다. 

 

어긋나면 감당이 안 될 부분인 것이다. 

 

동관은 이미 동북건설의 단가를 안다. 

 

현재 동북건설을 대신하려는 건설업체가 모두 6곳, 4곳은 서류심사에서 탈락시켰고 

 

나머지 두 곳 중에서 성화공사를 처음 만나는 것이다. 

 

그때 동관이 말했다.

“그럼 까놓고 말씀드려서 월 20만 위안을 드리지요. 

 

예, 영수증도 필요 없습니다. 

 

매월 공사대금이 입금되는 즉시로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중국어를 알아듣게 된 서동수가 중요한 내용은 다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그때 이인섭이 한국어로 통역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가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월 15만 위안을 드리겠습니다. 

 

영수증도 필요 없고 공사대금이 입금되는 즉시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월 5만 위안은? 

 

서동수는 가슴속에서 웃음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을 생전 처음 경험했다. 

 

그러나 웃음은 목구멍 끝에서 사그라졌고 서동수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서동수가 동관의 머리 뒤쪽을 바라보면서 한국어로 말했고 이인섭이 통역했다.

“사장님 좀 더 만드실 수 없습니까?”

“월 22만까지는, 그것이 최선입니다.”

“월 18만까지는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요.”

서동수는 심호흡을 했다. 

 

내가 이인섭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전에 이렇게 통 큰 사업을 했을 리가 없으니 원인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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