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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4장 한국인(7)

오늘의 쉼터 2014. 7. 25. 18:48

[38] 4장 한국인(7)

 

(75) 4장 한국인-13 

 

 

“좀 이따 다시 전화할게.”

하면서 서둘러 핸드폰을 귀에서 뗀 조은희가 서동수를 보았다.
 
귀가 또 조금 붉어져 있다.
 
조은희가 가정부로 온 지 오늘이 닷새째가 되는 날 저녁,
 
오늘은 토요일이다.
 
소파에 앉은 서동수가 중국어 회화책을 펼치면서 물었다.

“딸한테 전화하신 겁니까?”

“네.”

앞에 앉은 조은희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서동수를 보았다.
 
지금부터 회화 공부시간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이 날 때마다 중국어 공부를 하기로
 
계약이 되었고 오늘은 지금부터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면 조은희는 딸한테로 갔다가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것이다.
 
서동수가 다시 묻는다.

“딸이 중학교 1학년이라고 했지요?”

“네.”

책을 펴던 조은희가 다시 시선을 들었다.
 
닷새 동안에 조은희는 달라졌다.
 
피부에 윤기가 더 나는 것 같고 얼굴의 그늘도 조금 가셔졌다.
 
문간방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틀 전에 그 방에다 TV를 한 대 사서 붙여 주었더니
 
웃기까지 했다.

학교가 여기서 멉니까?”

“여기서는 더 가까워요.
 
지금 사는 친척집에선 버스로 한 시간 거리지만 여기서는….”

말을 그친 조은희가 서동수를 보았다.
 
바로 앞쪽이어서 속눈썹 끝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딸 여기로 데려오시죠.”

“네?”

조은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는 귀뿐만이 아니라 눈 밑까지 붉어졌다.

“하지만 선생님, 선생님 사모님께서….”

“내 와이프가 왜요?”

“곧 여기로 오실 것 아닌가요?”

“난 이혼했어요.”
 
그 순간 조은희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딸이 오는 게 낫겠습니다.
 
이름이 누구라고 했지요?”

“백미현입니다.”

다시 시선을 내린 조은희의 콧등을 보면서 서동수가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뜨거워졌고 머리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든다.
 
성욕이다.
 
조은희는 41세의 한창 나이다.
 
극(極)은 극(極)으로 깨뜨린다.

“이렇게 둘이만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조은희의 머리가 더 숙여졌고 서동수는 말을 잇는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조은희 씨를 보고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닐 겁니다.
 
조은희 씨도 이해하실 거고.”

“…….”

“그러니까 미현이를 데려옵시다.
 
그럼 미현이도 좋고, 조은희 씨도 좋고,

 

나한테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어질 테니까 좋은 일이지요.”

거침없이 말을 끝냈지만 서동수의 가슴이 일단 개운하지 않고 허전하다.
 
가능성을 미리 잘랐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오히려 가능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메시지 역할도 될 것이다.
 
양다리를 걸친 발언이다.
 
그때 조은희가 머리를 들었다.
 
예상대로 이제는 얼굴 전체가 붉게 달아올라 있다.

“고맙습니다.”

조은희가 가능성을 미리 자른 서동수의 처사에 대한 인사를 했다.

“제가 그럼 데려올게요.
 
대신 미현이 숙식비로 가정부 급료는 적게 받을게요.”

이건 생각해보지도 않은 계산이다.

 

 

(76) 4장 한국인-14 

 

 

일요일이어서 아파트 주변은 주민이 많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들이어서 떠들썩한 소음이 덮여 있다.
 
오전 11시 반, 서동수는 칭다오 바닷가 쪽 ‘캐슬’ 아파트 안에 서 있다.
 
이곳이 아성의 마담 장연지가 사는 곳이다.
 
오늘 오후에 장연지하고 집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조은희가 오후에 딸을 데리고 집으로 이사를 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집까지 여자를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조은희한테 딸을 데려오라고 했지만
 
이렇게 나와보니 불편하다.
 
하나 어쩌랴?
 
앞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C동 옆쪽으로 다가가던 서동수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개도 한번 두들겨맞은 사람은 기억해내는 것이다.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면서 힐끗 302호를 올려다본 서동수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302호 베란다에서 웬 놈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다. 짧은 머리에 러닝셔츠 차림이었는데 배가 나왔다.
 
40대쯤 되었을까?
 
사내가 힐끗 서동수를 내려다보더니 구름 같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302호는 바로 장연지의 아파트다.
 
정은지의 오피스텔에서도 이런 경우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사내놈과 시선까지 마주친 것은 처음이다.
 
다행히 놈은 서동수를 모른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그냥 사내의 밑을 지나 아파트 옆으로 꺾어지고 나서
 
길게 숨을 뱉는다.
 
걸음을 멈춘 서동수가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 세 번이 울리더니 곧 장연지가 받는다.

“응, 자기야?”

거침없이 밝고 큰 장연지의 목소리에 서동수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옆에 놈이 있는데도 그렇게 말하다니,
 
순간 밝아졌던 서동수의 가슴이 곧 무거워졌다.
 
놈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장연지가 밝게 말한다.

“자기야, 내가 한시쯤 갈게. 기다려.”

“아니, 나, 밖에 나와 있는데.”

서동수가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오후에 가정부가 딸을 데리고 온다고 해서 말야.”

장연지는 서동수가 가정부를 둔 것도 안다.
 
토요일 오후에 집에 갔다가 월요일에 돌아온다는 것도 다 말해주었다.
 
서동수가 아파트의 벽에 등을 붙이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네 집에 가야겠는데, 언제쯤 좋을까?”

“가만, 나도 지금 밖에 있거든?”

“어딘데?”

“목욕탕이야.”

그때 옆에서 사내 목소리가 들렸다.
 
중국어다. 그놈, 담배 피우던 놈.

“누구야?”

이제 그쯤은 서동수도 알아듣는다.
 
그러자 장연지가 사내에게 말했다.

“아성 조선족 보이야.”

그것도 중국어였지만 서동수는 알아들었다.
 
졸지에 아성 웨이터가 된 서동수는 잠자코 기다렸고
 
다시 장연지가 나긋나긋한 한국어로 말했다.
 
“자기야, 오후 2시쯤 와. 그때까지 집에 돌아갈테니까.”

“알았어. 그런데.”

심호흡을 한 서동수도 물었다.

“옆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누구야?”

“응, 목욕탕 보이야.”

“알았어.”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서동수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따 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서동수가 다시 발을 떼면서 혼잣소리를 했다.

“목욕탕 보이보다는 낫다.”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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