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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4장 한국인(6)

오늘의 쉼터 2014. 7. 25. 18:40

[37] 4장 한국인(6)

 

(73) 4장 한국인-11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온 서동수가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했다.
 
오후 7시 반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응접실 청소를 반도 하지 않았을 때 현관의 벨이 울렸다.
 
입맛을 다신 서동수가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시선이 마주치자 머리부터 숙여 인사를 한 여자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묻는다.

“서선생님 댁입니까?”

물론 한국말이다.

“아, 전화 주셨던 조은희씨세요?”

서동수가 묻자 여자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가 든다.
 
화장기가 없는 얼굴은 윤곽이 섬세한 미인형이었지만 그늘이 짙다.
 
긴 머리를 뒤로 묶었는데 얇은 분홍색 스웨터 위에 검은색 점퍼를 걸쳤고 바지 차림이다.

“들어오시죠.”

옆으로 비켜선 서동수의 앞으로 지나는 여자한테서 옅은 비누향이 났다.

“이거, 청소하다 말아서.”

청소기를 옆으로 치운 서동수가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여자에게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집 안이 어수선해요.”

여자는 잠자코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얹는다.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40대쯤 된 것 같다.
 
앞쪽에 앉은 서동수가 조은희를 보았다.
 
조은희는 우명호가 소개시켜준 가정부다.
 
아니,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니 후보라는 표현이 맞다.
 
서동수가 가정부를 구해야겠다고 했더니 우명호가 대번에 소개시켜준 것이다.
 
전임 차장이 떠나면서 가정부 조은희의 취업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앞쪽에 앉은 서동수가 물었다.

“옌지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셨다구요?”

“예, 여기.”

하면서 조은희가 점퍼 가슴에서 접힌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대학졸업증명서, 교원자격증, 재직증명서, 이력서까지 가져왔습니다.”

“아아.”

제법 두툼한 서류를 집어든 서동수가 보지도 않고 다시 묻는다.

“칭다오에는 언제 오셨지요?”

“작년에 취업하러 왔습니다.”

똑바로 서동수를 응시한 채 조은희가 말을 이었다.

“서울은행 박정수 차장님 댁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서였죠.”

가족은 어디 있습니까?”

“딸이 칭다오에 있습니다.”

그때서야 조은희가 시선을 내렸으므로 서동수가 서류를 펼쳤다.
 
그런데 이력서에는 가족관계가 적혀 있지 않다.
 
그때 머리를 든 조은희가 말했다.

“남편은 5년 전에 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딸하고 둘이 삽니다.”

“아아.”

딸이 있다는 말은 우명호한테서도 듣지 않았으므로 서동수는 잠깐 생각했다.
 
지금 자신은 입주 가정부를 구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중국어 가정교사가 필요하다.
 
우명호한테서 조은희가 교사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면접을 보겠다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서동수가 물었다.
 
“난 입주 가정부를 원하는데, 딸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딸은 친척집에 두겠습니다.”

다시 시선을 내린 조은희의 곧은 콧등만 보였다.

“지난번에도 그랬거든요.”

서동수는 소파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입주 가정부를 두려는 또 다른 이유는 문란한 사생활 정리다.
 
최소한 집 안에는 여자를 들이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이윽고 서동수가 말했다.

“그럼 월급은 얼마로 하지요?”
 

 

(74) 4장 한국인-12 

 

 

인사발령이 났다.
 
업무1과장 박항석 과장이 본사 의류사업본부 기획조정실 소속으로 발령이 났는데
 
직책은 ‘대기’다. 대기발령인 것이다.
 
박항석은 기획조정실에서 운용하는 대기사원용 사무실에서 보직 받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잘되면 본사 기조실 소속의 ‘파워맨’도 되지만 안 되면 한 달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사표를 내야만 한다.
 
수모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명규 부장 치하에서 한때 총무과장 물망까지 올랐던 유성호 대리는
 
공장장 직권으로 의류제2공장에서 보직 해임되었다.
 
유성호의 책상은 총무과 구석 쪽에 마련되었는데 직책이 없으니
 
출퇴근만 체크하면 되었다.
 
‘산동실업’이 총무과 소관으로 넘어간 직후에 일어난 인사여서 공장의 미싱사도
 
내막을 안다.
 
유성호는 박항석과 달리 며칠 배겨나지 못할 것이었다.

“평이 어떠냐?”

그날 오후, 공장장실로 불려 들어간 서동수에게 윤명기가 물었다.

“‘산동실업’건을 모두 알고 있는 터라 당연한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서동수가 앞에 앉은 윤명기를 정색하고 보았다.

“물론 총무과장인 제가 고자질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알겠지요.”

“네가 따돌림을 받을까?”

“아닙니다. 슬슬 접촉을 해올 것입니다.
 
제가 공장장님과 가까운 사이로 보였을 테니까요.”

“그런가?”

“아니꼽더라도 잘 보이려고 할 것입니다.”

“네가 호가호위할 수도 있겠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냐?”

“그러면 얼마 못 갑니다. 대번에 투서나 진정이 들어올 테니까요.”

그러자 쓴웃음을 지은 윤명기가 소파에 등을 붙이고 묻는다.

“회사에 부정을 없앨 방법이 있을까?”

순간 머리를 든 서동수가 윤명기를 보았다.
 
윤명기와 시선이 부딪쳤고 떼어지지 않는다.
 
이윽고 서동수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시선도 내렸다.

“조직이 침체되면 부정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썩은 물에서 병균이 번식하는 것처럼 말씀입니다.”

“네 경험이냐?”

“예, 그렇습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래쪽도 무서워서 일을 벌이지 못했습니다.”

“내 경우는 네가 오염시킨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그러자 윤명기가 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아니, 내가 썩었으니까 먹은 거다.
 
나도 그놈들이 해 처먹고 있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것이 욕심도 났던 것 같다.”

“공장장님은 지금 정화 작업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정색한 서동수가 말하자 윤명기는 시선만 주었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제가 다 정리를 하겠습니다.
 
제 책임하에 오픈시키지요.
 
그럼 부정한 세균도 햇볕에 드러나 거름이 될 것입니다.”
 
“흐음,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윤명기가 웃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나도 그동안 네 놈에 대해서 이곳저곳에 대고 조사를 했다.”

“…….”

“윗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더구먼,
 
같이 나눠 먹은 것은 분명한데도 혼자 다 뒤집어쓰고 나왔더군.”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동수를 보았다.

“그래서 나도 너한테 오픈시킨 거다.”

윤명기의 정보망은 서동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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