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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장 오염(5)

오늘의 쉼터 2014. 7. 25. 17:41

[25] 3장 오염(5)

 

 

 

(49) 3장 오염-9

 

 

다음날 오후 7시 반, 서동수는 청양 외곽의 고급 아파트 앞쪽 정원에 와있다.
 
밤이 되어 있었지만 넓은 정원은 환하다.
 
보안등이 곳곳에 켜져 있는데다 아파트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정원의 놀이터와 휴게실,
 
잔디밭을 빈틈없이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휴게실의 나무 의자에 앉은 서동수가 머리를 들고 아파트를 올려다 보았다.
 
802호실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다.
 
공장장 윤명기의 아파트다.

이윽고 심호흡을 하고 난 서동수가 핸드폰을 들고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서동수가 신호음 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호흡을 고른다.
 
신호음이 다섯 번 울리고 나서 윤명기가 전화를 받았다.

“네.”

“공장장님, 총무과장 서동수입니다.”

“어.”

외마디 대답이었지만 그속에 오만 가지 감정이 다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서동수는 어금니를 물고 눈을 치켜떴다.
 
내가 만리타향에 죽으려고 온 줄 아느냐?
 
오기를 일으킨 것이다.
 
서동수가 배에 힘을 준 상태로 낮게 말했다.

“공장장님, 저 아파트 앞에 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괜찮으시면 잠깐 봬도 되겠습니까?”

“어?”

이제는 윤명기의 외마디 말에 감정이 실렸다.
 
그러더니 잠깐의 침묵, 3초쯤 걸렸다.
 
그때 윤명기가 말했다.

“들어 와.”

서동수는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돌아가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불쾌한 상태, 찜찜한 놈이 난데없이 찾아왔으니
 
얼른 털어내고 싶을 것이었다.
 
윤명기는 80평 아파트에서 아내와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인 남매,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다.
 
그리고 공장장 사모는 이주일에 한 번꼴로 일박이일 내지 이박삼일 일정으로
 
서울에 다녀온다.
 
총무과에서 사모의 비행기 티켓도 예약하는 터라 스케줄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공장장에게는 특별히 가정부 월급도 지급되어서 아파트에는 출퇴근하는
 
조선족 가정부가 있다.
 
벨을 눌렀더니 금방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준 여자가 웃음띤 얼굴로 맞는다.
 
30대 후반의 화사한 인상.
“총무과장님? 어서 오세요.”

사모다,
 
서동수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총무과장 서동수입니다, 사모님.”

“들어오세요.”

웃음띤 얼굴로 비껴선 사모한테서 짙은 향내가 맡아졌다.
 
안으로 들어선 서동수가 들고 온 선물상자를 현관 옆쪽에 놓았다.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윤명기가 일어나 다가온다.

“웬일인가?”

정색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온기가 띠어졌다.
 
한국사람은 다 그렇다.
 
원수진 사이가 아닌 이상 손님한테 문전박대는 안 한다.
 
사모가 선물상자를 보면서 윤명기의 다음말을 가로챘다.

“뭘 이런 걸 다 가져오셨어요?”

실크다.
 
수천 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 상인의 혼을 빼놓았던 오리지널 실크,
 
그것을 사모가 모를 리가 없다.
 
최고급 선물인 것이다.
 
이 비단은 10벌의 정장을 만들 만한 분량으로 5가지 색깔이다.
 
서동수가 뒷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약소합니다. 사모님.”

“어쨌든 앉게.”

윤명기가 소파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는 더 말을 이으려는 사모를 흘겨보았다.

“마실 것이나 가져와.”

하더니 생각난 것처럼 묻는다.

“저녁은 먹었나?”

 

 

 

 

(50) 3장 오염-10

 

 

“예, 먹었습니다.”

상체를 편 서동수가 똑바로 윤명기를 보았다.
 
경력 16년의 이사공장장, 의류사업부에서만 굴러다닌 원조(元祖) 걸레,
 
42세로 작년에 이사 진급을 했으니 동기에 비해서 빠른 편이다.
 
윤명기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호흡을 고르고 나서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윤명기는 눈만 껌벅였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총무과장으로 온 후에 리베이트를 받았습니다.”

그 순간 윤명기가 눈을 치켜떴고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옆쪽 방에서 희미하게 아이들 소리가 났다.
 
서동수가 똑바로 윤명기를 보았다.

“대동산업이었습니다.
 
제가 리베이트 문제로 좌천이 된 신분이 아닙니까?
 
냄새가 나길래 쥐어 짰더니 관행이었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과장, 부장한테 상납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윤명기의 얼굴은 석고처럼 굳어졌고 주방 쪽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동수가 대놓고 심호흡을 했다.

“조사를 해보니까 백 과장, 안 부장은 거액의 재산을 모아놓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가게, 공장까지 차려놓고 있더군요.”

“…….”

“저는 대동산업에서 받은 리베이트를 쪼개 안 부장한테도 나눠주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제 부하 직원한테도 떼어 주었구요.
 
제가 주도권을 쥐고 분배한 것이지요.”

“…….”

“그런데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장장님.”

“저는 리베이트를 받으면 나눴습니다.
 
그리고 책임은 저 혼자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

“백 과장, 안 부장은 둘이 나눠먹었구요.”

그때 윤명기가 입을 열었다.

“부하 직원들이 다 알고 있다구?”

윤명기에게는 이것이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서동수가 바로 대답했다.

“대리급 실무자들입니다.”

그러자 윤명기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서야 사모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앞에 마실 것을 내려놓았다.
 
얼굴이 굳어져 있다.
 
사모가 몸을 돌렸을 때 윤명기가 다시 묻는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다.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

그순간 서동수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안 부장을 경질시켜야 합니다.”

윤명기는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감사팀을 부르면 온갖 비리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니 내부에서 처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대동산업 박 사장 이름으로 공장장님께 진정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안 부장이 뇌물로 축적한 재산목록을 기록하게 하고 반환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입니다.”

“…….”

“공장장님께서 그걸 안 부장한테 보이시면 배겨나지 못할 것입니다.”

“박 사장한테 진정서를 쓰게 한다구?”

“제가 박 사장한테 부탁하면 부담없이 써줄 것입니다.
 
공장장님은 모른 척하시지요.”

“으음.”

신음을 뱉은 윤명기가 서동수를 보았다.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져 있다.

“자네, 무서운 사람이군.”

그러자 서동수가 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정직한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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