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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장 좌천(左遷) [10]

오늘의 쉼터 2014. 7. 25. 17:03

<10> 1장 좌천(左遷) [10]

 

 

 

 

(19) 좌천(左遷)-19 

 

 

 

박창호가 퍼뜩 눈을 크게 떴고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난 68개 하청 공장에다 매월 1억 불 가까운 오더를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리베이트가 자의 반 타의 반 만들어지더군요.”

술잔을 든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박창호를 보았다.

“리베이트를 먹으려고 작심만 하면 엄청나게 모을 수 있었지요.
 
공장이 70개 가깝게 되다 보니까 별별 캐릭터가 다 나타나는 겁니다.
 
엄청 버는데도 몇 푼에 벌벌 떠는 놈. 아예 크게 한탕 해서 반씩 나눠 먹자는 놈.
 
우리 사장이 제 사돈의 팔촌이라는 놈. 별놈이 다 있지요.”

이제 박창호는 눈동자만 굴렸고 옆쪽에 앉은 이인섭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장연지도 숨을 죽이고 있다.
 
다만 중국 아가씨 셋은 한국말을 모르는 터라 표정이 굳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바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 직속상관인 부장한테 로비해서 담당 팀장인 나를 누르려고 했던 놈이 있었지요.”

그러고는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우리 부장이 그러더군요.
 
그런 놈이 있으니까 니가 손을 보라고요.
 
그래서 단칼에 잘랐습니다.
 
우리 부장은 영업직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엘리트죠.
 
이런 곳에서 썩는 놈들하고는 다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간 자폭하게 되어서 다 날아갈게 될 것을 알고 그런 겁니다.”

“…….”

“난 리베이트를 내 직속 부하들하고 같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윗선에도 골고루 분배했죠. 그러고는….”

어깨를 편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사건이 터졌을 때 나 혼자 뒤집어쓰고 나온 겁니다.”

그때 박창호가 헛기침을 했다.
 
“잘 들었습니다, 과장님. 이제 과장님 성격을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긴 그런 일이 없겠죠.”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서동수가 소파에 등을 붙이면서 웃었다.

“리베이트 처먹다 좌천당한 놈을 누가 리베이트로 골탕 먹이려고 하겠습니까?
 
그건 자고 있는 호랑이 코털을 뽑으려는 것이나 같죠.”

“그럼요.”

박창호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여전히 얼굴이 굳어져 있다.

“여기서 그런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가 리베이트 먹으려고 박 사장님한테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이번에 대동상사 결재 올라온 것 제가 결재 못합니다.”

그러자 놀란 박창호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호인 같던 인상이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서동수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잠깐 알아보니까 시중 가격하고 차이가 너무나 커요.
 
그래서 본사 의류 사업본부 회계 감사팀에 전반적인 감사 요청을 할 작정입니다.
 
그래서 박 사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

“리베이트 먹다가 좌천당한 놈이라 이렇게 해서라도 열심히 일한다는 표시를 내려고 하니까
 
이해해주시지요. 박 사장님께선 결백하실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되실 겁니다.”

“그, 그건.”

박창호의 악문 이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가 그쳤다.
 
이런 결과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업무부장 안명규도 마찬가지다.
 
감사 요청은 담당 과장의 직권인 것이다.
 
 
 
 
 
 

(20) 좌천(左遷)-20 

 

 

 

이런 분위기가 되었으니 술맛이 날 리가 있겠는가?
 
옆에 양귀비가 앉아 있다고 해도 감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 비싼 발렌타인 30년을 반도 못 마시고 아가씨 손목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동수의 지시를 받은 이인섭이 재빠르게 계산을 했으므로 박창호는
 
똥 밟은 얼굴이 되었다.
 
아성의 로비로 나온 서동수가 건성으로 박창호와 인사를 마쳤을 때 옆으로
 
장연지가 다가와 섰다.
 
가는 눈 속의 눈동자가 반들거리고 있다.

“과장님, 명함 주세요.”

“명함은 왜?”

했지만 서동수가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명함을 받은 장연지가 낮게 말했다.

“오늘밤 전화 드릴게요.”

서동수가 시선을 들었지만 장연지는 몸을 돌렸다.
 
이인섭이 모셔드리겠다고 해서 둘은 택시에 올랐다.

“과장님, 정말 감사 요청을 하실 겁니까?”

아직도 긴장한 이인섭이 택시가 움직이자마자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내가 빈말하려고 불러낸 줄 아나?”

“회사에서 난리가 날 텐데요.”

“뒤집어지겠지. 이렇게 한번씩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된다고.”

“부장이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심호흡을 한 이인섭이 말을 잇는다.

“진짜 자고 있는 호랑이 코털을 뽑은 셈이 되었습니다. 속이 시원합니다.”

“그 자식이 날 우습게 보았지.
 
내가 제 놈 머리 꼭대기에 떠 있다는 걸 몰랐어.”

“지금쯤 박창호 보고를 듣고 벌벌 떨고 있을 겁니다.”

“내일 아침에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구.”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이야. 난 혼자 안 먹었다구.
 
담당자한테 맡겨서 리베이트를 걷었고 내 계좌로 온 돈을 공평하게 나눴어.
 
그리고 내가 다 뒤집어쓴 거야.”

이인섭의 시선을 잡은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내가 오늘 당신을 데리고 간 것도 그것 때문이야.”

“잘 알겠습니다.”

앉은 채로 머리를 숙여 보인 이인섭이 서동수를 보았다.
 
눈빛에 존경심이 묻혀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당신한테는 피해가 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저도 받은 만큼 주는 성격입니다.”

그러고는 이인섭이 어깨를 부풀렸다.

“한국 회사가 이 따위로 썩었는가 하고 한심할 때가 많았는데
 
과장님을 만나고나서 마음이 바뀌어진 것 같습니다.”

“이봐, 나도 뇌물 먹고 좌천당한 놈이야.”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에게 이인섭이 머리를 젓고 말한다.

“아닙니다. 과장님은 다릅니다.”

어느덧 택시가 아파트 앞에 멈춰 섰으므로 서동수가 내렸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보이고는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때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울리자 멈춰 선 서동수가 꺼내 쥐었다.
 
발신자 번호는 모르는 번호지만 알고 있는 사람도 몇 명 되지 않는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서동수가 응답했을 때 곧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저, 장연지예요. 댁이 어디시죠?”

명함을 달라고 했을 때 예상은 했지만 서동수의 가슴이 뛰었다.

“응, 국제아파트 2동 1502호야.”

“혼자 계시는 거죠?”

“당연하지.”

“제가 12시 반쯤 갈 텐데 기다리실래요?”

“발딱 세워놓고 기다리지.”

그러자 짧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서동수는 어깨를 펴고 엘리베이터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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