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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좌천(左遷) [9]

오늘의 쉼터 2014. 7. 25. 17:02

<9> 1장 좌천(左遷) [9]

 

 

 

 

 

(17) 좌천(左遷)-17 

 

 

 

업무부장 안명규는 서동수의 취임 첫날에 단 한방의 크로스 카운터에 녹다운된 셈이었다.
 
서동수가 돌아간 즉시로 회사 파일에 떠있는 의류사업본부장 허정식과 서동수의 인적사항을
 
비교하고 나서 몸서리를 쳤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산 공장에만 파묻혀 18년을 보냈던 안명규와 바이어를 상대로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서동수와의 차이다.
 
적절하게 인맥을 이용하는 것이 출세의 관건인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안명규는 서동수를 요주의, 위험인물로 간주할 것이 틀림없다.
 
리베이트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히 관리를 할 것이었다.
 
업무부에는 업무 1, 2과와 총무과까지 3개 과가 있다.
 
생산 현장을 맡은 생산부는 생산부장 휘하에 22개 과가 있지만 생산만 담당한다.
 
공장의 주력(主力)은 생산부이며 업무부는 그 뒤치다꺼리를 하는 부서다.
 
그러나 그 뒤치다꺼리에 떡고물이 많은 것이다.
 
서동수가 보기에 업무 1, 2과장은 나이가 서너 살 위인데다 경력도 그만큼 많았다.
 
그리고 둘 다 서동수가 좌천된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서동수가 인사를 했을 때 실실 웃으면서 빨리 이야기를 끝냈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던 것이다.
 
같은부 과장이 부임했을 때 모여 술 한잔하는 것이 예의이며 전통인데도 두 놈 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안명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서동수는 다음날부터 맹렬하게 업무 파악을 한다.
 
해외영업팀장이었을 때 24개국 127개 바이어를 관리해온 서동수다.
 
직접 관리한 하청공장만 68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째 되는 날은 식당 주부식 가격까지 머릿속에 다 입력시켰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이인섭을 불렀다.

“이 대리, 대동(大東)산업 박 사장한테 내가 오늘 밤 술 한잔하자고 해.”

이인섭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지그시 웃었다.

“그렇지. 아성에서 만나자고 해. 그리고 당신도 나하고 같이 가지.”

“저 말입니까?”

이인섭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대동산업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부터 긴장하고 있었던 이인섭이다.
 
대동산업은 식당에 주부식을 공급해주는 업체로 사장은 한국인이다.
 
5000명 가까운 근로자가 세끼 식사를 식당에서 하는 터라
 
한 달 주부식비가 800만 위엔, 한화로 15억 원 정도가 나가는 것이다.
 
총무과의 가장 큰 거래선이다.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 앞으로 모든 업체를 만날 때 당신도 나하고 같이 행동하자구.”

“그, 그러면.”

그러자 서동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뒷좌석이어서 듣는 사람도 없다.

“박 사장이 놀라 업무부장한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묻겠지?”

“그, 그럴 것 같습니다만.”

“업무부장은 가지 말라고는 못할 거야.
 
아마 가서 무슨 말을 하는가 듣고 오라고 하겠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동안 이 대리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주부식비 가격을 조사해봐.”

“예, 알겠습니다.”

“아무리 부장이 밀어준다고 해도 담당 과장이 도장 안 찍으면 못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건 그렇습니다.”

했지만 이인섭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겁이 난 것이다.
 
의자에 등을 붙인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너무 욕심부리면 체하는 법이야. 업무부장은 이미 체했어.”

부임 첫날에 이인섭으로부터 내막을 듣고 준비해온 서동수인 것이다.
 
서동수가 책상 위에 놓인 결재서류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대동산업 결재서류다.
 
 
 
 
 
 

(18) 좌천(左遷)-18 

 

 

 

그날 저녁 8시가 되었을 때 서동수는 이인섭과 함께 아성에 들어섰다.
 
장연지가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맞는다.
 
일주일 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박 사장님이 특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앞장선 장연지가 둘을 안내하며 말했다.

“그동안 엉덩이가 빵빵해졌구만. 많이 방바닥에 부딪힌 모양이야.”

뒤를 따르며 실없는 농담을 했어도 긴장한 듯 이인섭은 웃지 않았다.
 
특실로 들어선 서동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내를 보았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격이다.
 
머리는 반쯤 벗겨졌지만 둥근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어서 인상이 좋았다.

“아이구, 과장님.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진즉 인사를 가려고 했는데
 
제가 출장을 갔다가 어젯밤에 왔거든요.”

떠들썩하게 말한 사내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박창호올시다. 잘 부탁합니다.”

“서동수입니다.”

명함을 교환하고 악수를 나눈 둘은 자리에 앉았다.
 
박창호가 상석을 권했으므로 서동수는 사양하지 않았다.
 
이인섭과는 안면이 있는 터라 박창호는 머리만 끄덕여 인사를 한다.

“술은 제가 가져온 게 있습니다. 발렌타인 30년짜리인데 괜찮겠지요?”

박창호가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서동수도 웃음 띤 얼굴이다.

“아이구, 그럼요.”

그러자 박창호가 장연지를 보았다.

“어이, 마담. 아까 내가 데려온 애들 방으로 들여보내.”

“네, 사장님.”

장연지가 고분고분 방을 나갔을 때 박창호는 말을 잇는다.

“오늘 제가 시내에서 괜찮은 애들을 데려왔습니다.
 
모델인데 이런 데 나오는 애들은 아닙니다.”

“허, 그렇습니까?”

눈을 둥그렇게 뜬 서동수가 침까지 삼키고 말했다.

“내가 박 사장님 덕분에 호강을 하는군요.”

“아닙니다. 약소합니다.”

그때 방안으로 장연지가 아가씨 셋을 데리고 들어섰는데 그야말로 방안이 환해졌다.
 
셋이 모두 절세의 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큰 키, 날씬한 몸매, 그리고 얼굴은 탤런트 같다.
 
아가씨들은 미리 누구 옆에 앉으라고 지시를 받은 것 같다.
 
서동수 옆으로 먼저 긴 머리의 아가씨가 앉고 파마머리는 이인섭 옆에,
 
숏컷한 아가씨가 박창호 옆에 앉았다.
 
그때 종업원들이 술과 안주를 날라왔다.
 
빈틈없는 접대다.
 
어색한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
 
잔에 술을 채운 박창호가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아니, 오히려 제가.”

서동수가 앉은 채로 머리를 숙이며 말을 잇는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한 달에 두 번은 꼭 제가 술을 사겠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폐를 끼쳐도 됩니까?”

“아가씨들도 수시로 바꿔 드리지요. 저한테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아니, 저는 이 아가씨만으로도 과분합니다.”

아가씨 허리에 팔을 감으며 서동수가 말을 잇는다.

“여긴 천국 같습니다. 한국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네요.”

“아하하하.”

소리내어 웃은 박창호가 한 모금에 술을 삼켰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모습이다.

 

그때 서동수가 말했다.

“난 리베이트 먹은 것이 들통 나서 좌천된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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