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6> 1장 좌천(左遷) [6]

오늘의 쉼터 2014. 7. 25. 16:59

<6> 좌천(左遷)

 

 

 

(11) 좌천(左遷)-11 

 

 

 

사흘 후의 오전 7시, 서동수는 인천공항의 출국장에 서 있다.
 
짐은 먼저 실렸고 손가방 하나만 든 차림이었는데 배웅을 나온 것은 강정만 혼자다.

“야, 그나저나 너무하네.”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강정만이 말했다.

“나 혼자 나왔단 말이냐? 네가 먹여 살렸던 팀원은 다 어디 갔고 그 많던 계집애들은 또 어디 있어?”

“야 인마, 시끄러워.”

“합의는 끝냈단 말이지?”

“뭐, 그럭저럭.”

강정만은 박서현과 갈라선 것이 가장 궁금한 것 같았다. 바짝 다가서서 다시 묻는다.

“법원에 가서 수속 밟은 건 아니지?”

“다 도장 찍었으니까 제출하면 될 거야.”

“집은 넘겨주고?”

“명의이전 끝냈어.”

“미혜는 알고 있어?”

“걘 내가 중국으로 출장 가는 줄만 알아.
 
그래서 당분간은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쯤 와서 걜 보고 가야 되겠어.”

“….”

“그러다가 기간을 한 달, 두 달 이렇게 늘리는 거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녀, 인마.”

“안다.”

하면서 서동수가 발을 떼었다.

“하지만 이렇게 확실히 해놓는 게 낫지. 정 떨어져 있는데 억지로 잡고 있는 건 피차 안 좋아.”

“이 자식.”

머리를 저은 강정만이 옆을 따르면서 말을 이었다.

“너야 생존력이 강한 놈이라 내가 믿지만 기죽지 마라.
 
견디면 꼭 오더라. 이건 형님의 경험담이다.”

“시간나면 놀러 와라.”

세관 출입구 앞에 선 서동수가 손을 내밀어 둘은 악수를 했다.
 
손을 흔들면서 강정만이 말했다.

 
“야 인마, 힘들면 그냥 돌아와. 여기도 얼마든지 밥 먹을 데 있어.”

“고맙다.”

강정만의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몸을 돌린 서동수가 세관 앞을 지났고 곧 문이 닫혔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뒷모습을 보고 있을 강정만에게 부담이 덜 되었을 것이다.
 
서동수가 게이트 앞쪽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는 출발 40분 전이다.
 
아직 탑승이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서동수는 핸드폰을 보았다.
 
단축 버튼 리스트를 켜자 번호가 주르륵 떴다.
 
서동수는 번호를 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 순서를 정했다.
 
1번은 딸 미혜다. 2번은 어머니. 3번은 형. 4번은 형수. 5번은 박서현.
 
박서현은 듣고 싶고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혜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려는 것이다.
 
한동안 번호를 내려다보던 서동수가 버튼을 눌렀다.
 
오전 8시가 되어 가고 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을 때 응답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정은지다.
 
그날 이후로 연락만 했지 만나지 않았다.
 
박서현한테 방 번호까지 들통난 상황에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을 정은지한테 말해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서동수는 ‘자기야’ 하고 부르는 정은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고였다.
 
목이 메었으므로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하는 사이에 정은지가 두 차례나 연거푸 묻는다.

“자기 어디야?”

“출근하는 길이야?”

그때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대답했다.

“응, 지금 출장가는 길이야. 중국으로.”
 
 
 
 
 

(12) 좌천(左遷)-12 

 

 

 

칭다오(靑島)는 산둥(山東)성에서 서해로 뻗어나온 반도 남쪽 도시로 인천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중국과의 시차가 1시간이어서 오전 8시반에 출발한 비행기는 같은 시간에 착륙한다.
 
공항에는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으므로 서동수는 짐을 끌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동양상사 제2의류공장은 공항에서 가까운 청양(城陽)이라는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었다.
 
청양은 칭다오의 외곽도시로 공단지대나 같다.
 
택시를 공장 경비실 앞에 세우고 총무과에 전화를 했더니 여직원이 받았다.
 
말투가 조선족 동포다.

“나 총무과장으로 발령받은 서동수인데.”

했더니 놀란 듯 우물쭈물했다. 그래서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지금 경비실에 와 있으니까 누가 나와서 내 숙소 좀 안내해줘요.
 
지금 택시에 짐까지 싣고 있어서 회사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되니깐 말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경비실 안이어서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경비원 둘 중 하나가 그때서야 의자를 권했다.

“여기 앉으시지요. 총무과장님이신 줄 몰라 뵈었습니다.”

그도 조선족 동포였다.
 
기다린 지 5분쯤 되었을 때 차 한 대가 달려와 경비실 앞에서 멈추더니 두 남녀가 내렸다.
 
그중 남자가 경비실로 들어서면서 서동수에게 묻는다.

“서 과장님이십니까?”

“예, 내가.”

“전 총무과 대리 이인섭입니다.”

사내가 따라 들어선 여자도 소개했다.

“여긴 같은 과 사원 화란(花蘭)입니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머리를 숙이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는데 발음이 어색했다.
 
중국인이다.

“저희들이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이인섭이 앞장서 경비실을 나서며 말했다.
 
30대 중반쯤의 이인섭은 제2의류공장의 터줏대감일 것이었다.
 
조선족으로 대리 진급을 하려면 최소한 6년 경력은 쌓아야 되기 때문이었다.
 
이인섭이 기다리고 있는 택시로 다가가면서 서동수에게 말했다.

“과장님은 화란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가시지요. 저는 택시를 타고 뒤를 따르겠습니다.”

“아이구, 그렇게까지.”

했지만 서동수는 시치미를 뚝 떼고 회사 차 앞자리에 올랐다.
 
화란이 운전석에 앉더니 익숙하게 차를 몰아 회사를 빠져나간다.
 
서동수가 머리를 돌려 화란을 보았다. 옆얼굴의 윤곽이 뚜렷하다.
 
총무과는 업무부 소속으로 차량, 창고, 건물 관리를 맡는다.
 
잠깐 총무부 업무내용을 훑어 보았다가 사원 기숙사 운영 지침까지 책 한 권 분량으로
 
적혀 있어서 질색을 하고 그만두었다.

“한국말 하나?”

서동수가 묻자 화란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눈동자가 검었고 입술은 굳게 닫혀 있다.

“영어를 합니다.”

화란이 영어로 대답했으므로 서동수는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이제 영어로 물었다.

“그럼 한국어 지시나 결재 서류는 듣지도 읽지도 못할 것 아냐? 그땐 어떻게 하지?”

“중국어로 번역되어 나옵니다. 여긴 중국 공장이거든요.”

“그렇군.”

“부서장급 대부분은 중국어를 합니다.”

“난 못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순간 화란의 옆얼굴이 굳어진 것 같았으므로 서동수가 놓치지 않고 물었다.

“그럼 내가 왜 여기로 전출되었는지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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