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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장 좌천(左遷) [4]

오늘의 쉼터 2014. 7. 25. 16:56

<4> 좌천(左遷)

 

(7) 좌천(左遷)-7 

 

 

“아이구, 어서 오너라.”

마당에서 고추를 널고 있던 어머니가 반색을 하면서 달려왔다.
 
온다고 연락을 했으므로 형 서민수와 형수 박애영도 집에 와 있다.
 
어머니한테는 홍삼 엑기스를, 형과 형수한테는 양주와 화장품 세트,
 
초등학생인 조카한테 장난감 박스까지 가져왔기 때문에 식구들은 인사하랴 선물 치하하랴
 
한바탕 떠들썩했다.
 
마루에 앉은 서동수가 마당을 둘러보며 묻는다.

“메리가 안 보이네?”

“걔 도망간 지 두 달이 넘었다.”

마당에 선 형이 대답했고 옆에 앉은 어머니가 거들었다.

“개장수가 데리고 간 모양여. 도망갈 놈이 아녀.”

메리는 잡종개로 집에서 5년 넘게 키웠는데 1년에 서너 번씩만 찾아오는 서동수를 알아보고
 
길길이 뛰며 반기던 놈이다.
 
서동수가 길게 숨을 뱉었다.
 
이곳은 유성 근처의 시골이었지만 서울에서 차든 열차든 두 시간 반이면 닿는다.
 
오늘은 차로 왔는데 평일이어서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휴가 받았다고?”

어머니가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맑은 가을 날씨여서 마당에 널린 붉은색 고추가 햇살을 받아 반들거리고 있다.

“응. 내가 인사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서동수가 대학생 때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벌써 12년 전이다.
 
막 대학을 졸업했던 형은 취직을 하지 않고 어머니 옆에 남아 아버지 대신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효자다.
 
부엌으로 들어가던 형수도 멈춰 서서 이쪽을 본다.
 
세 쌍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영전야. 중국 칭다오에 있는 공장 부장으로 가는 거야.”

“뭐? 중국?”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고 형은 다른 것을 묻는다.

“부장으로?”

“응. 현장을 익혀야 돼. 간부가 되려면 말야.
 
거기 가면 주택도 공짜고 수당도 더 받거든. 거기 가려고 경쟁이 치열해.”

“칭다오가 어디에 있냐?”

어머니는 중국에 집착하고 있다. 외국인 것이다.
 
서동수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도시야. 비행기로 한 시간 걸려.
 
서울에서 여기 오는 것보다 절반 시간밖에 안 걸린다고.”

두 손을 편 서동수는 열변을 토했다.

“더구나 시차가 한 시간이라 여기서 8시 비행기를 타면 칭다오에 같은 시간인 8시에 도착한다고.
 
시간으로 따지고 보면 한 발짝도 안 되는 거리야.”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가고 관심도 없는 어머니가 다시 묻는다.
 
어쨌든 칭다오는 외국인 것이다.

“가면 언제 오냐?”

“일요일마다 올 수도 있어.”

그때 형이 말했다.

“어쨌든 영전했다니까 축하한다.”

“그러면 미혜하고 미혜 엄마도 같이 가는 거냐?”

 
마침내 어머니가 찜찜했던 부분을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헛기침을 했다.

“미혜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나만 가야 할 것 같아.”

“미혜 엄마도 그래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형수가 물었다.
 
서동수는 세 쌍의 시선을 받고는 심호흡을 했다.
 
어머니 모시고 시골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형수지만 서동수 부부간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안다.
 
가족 중에서 박서현에게 연락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동수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럼요. 한 시간 거린데요, 뭘.”
 
 
 
 
(8) 좌천(左遷)-8
 
자, 이젠 박서현이다.
 
오후에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오면서 서동수의 머릿속에 울린 말이다.
 
같이 중국으로 갈 수는 없다.
 
어머니한테 말했던 것처럼 박서현과 미혜는 서울에 남는다.
 
갑자기 준비도 없이 중국으로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미리 예행 연습을 한 셈이 되었으므로 서동수의 가슴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다. 전자에서 섬유 공장으로 옮긴 이유는 중간 간부급 이상에게 타 사업장도
 
경험토록 하라는 최고 경영진의 특별지시라고 하면 되겠다.
 
회사 내부일은 말해주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박서현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거리 아닌가?
 
물론 공항에 가고, 입출국 심사,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대여섯 시간은 걸리지만
 
그쯤은 넘어가자.
 
미혜 보려고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면 될 것이다.
 
비행기 요금이 좀 나오겠지만 당분간은 감수해야지.
 
그때 핸드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서동수는 집어들고 발신자를 보았다.
 
그렇지. 정은지다.
 
그젯밤 이후로 전화를 하지 않았고 오지도 않았다.
 
섹스 파트너 삼은 지 4개월,
 
어느 정도 성향(性向) 파악이 된 상태라 어제 전화가 안 올지 알았다.
 
뒤가 구리면 오히려 세게 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래 못 간다.
 
지금처럼. 벨이 여섯 번 울리고 났을 때 서동수는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어, 너냐?”

자기야, 오늘 시간 있어?”

정은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오늘은 안돼.”

침묵. 아직 어려서 그렇다.
 
조금 나이가 들면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차분하고 조금 냉정하게 묻겠지.
 
그래. 너도 나를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경륜을 쌓으려무나. 서동수가 침묵을 깨뜨렸다.
 
“지금 시골 어머니한테 내려와 있어.”

“시골?”

“응, 그래서 그런다.”

“오늘 회사 안 나갔어?”

정은지의 목소리에 생기가 살아나고 있다.
 
그젯밤, 오피스텔에 같이 있던 놈이 누구일까?
 
또 다른 스폰서일까?
 
아니면 돈 안 내고 엉키는 애인일까?
 
머릿속 생각과 따로 대답이 나간다.

“응, 휴가 내고 갔어.”

했다가 창밖을 스쳐 지나는 풍경을 보고는 말을 바꿨다.

“왔어.”

“그럼 언제 올라와?”

“내일.”

“내일 밤 올 거야?”

“그래.”

“자기야, 사랑해.”

문득 머리끝이 서는 느낌이 든 서동수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전화 끊는다.”

핸드폰의 덮개를 닫은 서동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문득 어수선한 사생활이 이번 사건으로 정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전화위복이다.”

칭다오에 가면 새 생활이 시작될 수 있겠다.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때 갑자기 정은지의 알몸이 떠올랐다.
 
정은지는 아직 어리다.
 
그리고 요즘 그만 한 가격에 그런 상대를 만나기 어렵지 않았던가?
 
이제 서동수의 머릿속은 정은지의 정리 문제로 어수선해졌다.
 
강정만에게는 오피스텔 월세 보증금이나 넘겨주고 손을 뗀다고 했지만 아깝다.
 
문득 꼭 정리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떠올랐으므로 서동수의 눈에
 
생기가 띠어졌다.
 
맞다. 당분간은 해외 출장으로 해 놓는 것이 낫겠다.
 
한 달 용돈을 준 지 10일밖에 안 되었으니 유용기간이 20일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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