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3> 1장 좌천(左遷) [3]

오늘의 쉼터 2014. 7. 25. 16:55

<3> 좌천(左遷)

 

 

(5) 좌천(左遷)-5 

 

 

“니 와이프는 뭐래?”

하고 강정만이 물었으므로 서동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말 안했어.”

“못했겠지.”

입맛을 다신 강정만이 양주를 유리컵에 붓는다.
 
언더록스로 마시고 있었지만 얼음이 다 녹았는데도 놔두었다.

“어떻게 할래?”

술잔을 들면서 강정만이 묻자 서동수는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소공동의 작고 아담한 바 안이다.
 
안쪽에서 칵테일을 만들던 문영은이 서동수의 시선을 잡고 눈웃음을 쳤지만 스쳐지나갔다.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대답했다.

“같이 갈 수는 없어. 미혜 교육 문제도 있고 말이야.”

“네가 돈 먹고 좌천당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강정만의 시선을 왼쪽 볼에 받으면서 서동수가 한모금에 양주를 삼켰다.
 
강정만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대기업인 고려건설 과장이다.
 
퇴근 무렵이 되자 입사 동기들이 한잔하자면서 연락해 왔지만

 

사양하고 강정만을 불러낸 것이다.
 
다시 강정만이 물었다.

“너 그냥 거기 있을 거냐?”

“그럼. 왜?”

“장래 생각을 해, 인마. 장래를.”

술잔을 내려놓은 강정만이 눈을 부릅떴다.

“전자 영업을 하던 놈이 뜬금없이 해외 현지법인 의류 공장의, 뭐? 관리과장?
 
가서 어떻게 할 건데? 거기서 부장 되고 공장장 될 것 같으냐?”

“그 새끼, 말 많네.”

“니 딸, 니 와이프는 놔두고?”

그때 서동수가 손짓을 하자 옆쪽을 보는 것 같던 문영은이 다가왔다.
 
작고 아담한 체격에 웃음 띤 얼굴이 귀여운 아가씨다.
 
서동수가 옆에 앉은 문영은을 지그시 보았다.
“오늘밤 어때? 니 아파트에서 재워줄래?”

“오빠 정말요?”

놀란 듯 문영은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외박하실 거예요?”

“오늘 바이어하고 철야 상담을 한다고 했거든.”

“아, 시발놈.”

하고 강정만이 입맛을 다셨지만 서동수가 손을 뻗어 문영은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나 진급했어. 그래서 너하고 첫 외박으로 파티를 하고 싶어서 그래.”

“좋아요.”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한 문영은이 눈웃음을 쳤다.

“한 시간만 기다려요, 오빠. 손님도 없으니깐 일찍 문 닫고 같이 가요.”

이 바의 주인이 문영은인 것이다.
 
문영은이 안쪽의 일본인 손님에게로 돌아갔을 때 강정만이 길게 숨부터 뱉었다.

“너 정은지는 어떻게 할 건데?”

“너한테 넘기고 갈까?”

“이 새끼가.”

“전별금으로 월세 보증금 5백은 넘기고 가면 되겠지, 뭐.”

“진짜 갈 거냐?”

다시 강정만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 새끼는 마치 제가 떠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군 그래.”

“아이구, 모르겠다.”

강정만이 물잔에 양주를 붓더니 얼음이 없는데도 들고 흔들었다.

“중국에 가서 또 현지처를 만들어 놓고 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야 인마, 갈 데까지 가 보는 거다.”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서동수가 문득 정색을 하고 말을 잇는다.

“여기서 기 죽으면 안돼. 그럼 져.”
 
 
 
 
 

(6) 좌천(左遷)-6 

 

침대에 누운 서동수는 들뜬 분위기가 되어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듣는다.
 
벽시계가 밤 11시반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은 사당동의 원룸 빌라, 문영은의 집이다.
 
요즘은 오피스텔보다 원룸 빌라가 대세(大勢)여서 넓은 방 좌우로

 

욕실과 주방이 배치되었고
위쪽 유리문 밖은 베란다였다.
 
팔베개를 하고 반듯이 누운 서동수의 눈앞에 문득 아내 박서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간다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바이어 접대를 하느라 호텔에 같이 있다느니,

 

출장 또는
상가(喪家)에서의 밤샘 따위 핑계는 믿는 것 같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예의 형식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마저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박서현과 섹스를 안 한 지도 석 달이 넘은 것 같다.
 
여름이 시작되던 7월 중순쯤이던가?

 

술김에 덮쳤는데 박서현의 반응이 그날따라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한 태도였고

 

그것이 애정 결핍 때문이든
성격 때문이든 이젠 따지기도 지친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문영은이 나왔다.
 
벌떡 상반신을 일으킨 서동수가 문영은을 보았다.
 
방안의 불을 켜놓아서 타월로 가슴과 음부만 가린 문영은의 전신이 다 드러났다.

“아유, 오빠. 불 꺼.”

서동수의 시선을 받은 문영은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서동수는 손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껐다. 곧 부스럭거리는 기척이 들리더니
 
옆으로 문영은이 몸을 붙였다.
 
알몸의 물기가 식으면서 피부에 찬 기운이 느껴졌다.
 
서동수는 문영은의 어깨를 감아 안았다.

“오빠, 무슨 일 있어?”

가슴에 볼을 붙인 문영은이 물었으므로 서동수가 긴장했다.

“아니, 왜?”

“좀 어두워 보여서.”

“그럴 리가.”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는 터라 서동수는 서둘러 문영은의 몸 위로 오른다.

“아유, 오빠. 서둘지 마.”

했지만 문영은이 팔을 들어 서동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준비가 된 셈이다.
 
곧 둘의 몸이 합쳐지면서 쾌락의 탄성이 일어났다.
 
오늘 밤 서동수의 섹스는 잊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탐닉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게 되는 것이다.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섹스도 있다.
 
정복감을 맛보려는 섹스도 있으며 좌절감을 극복하려는 섹스도 있다.
 
불같이 일어난 성욕의 바탕에 그렇게 수많은 이유가 깔린 동물은 인간뿐이다.

“아아, 오빠.”

문영은이 달아오르고 있다.
 
서동수는 몰두하면서 이렇게 뜨거워지는 상대에 대한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함께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문영은이 두 다리로 서동수의 몸을 감으면서 폭발했다.
 
서동수도 함께 터졌고 둘은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엉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좋았어. 오빠.”

문영은이 서동수의 볼에 입술을 붙이면서 말했다.
 
더운 숨결 속에 사과향 냄새가 배어 있다.
 
서동수가 문영은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이마 옆으로 쓸었다.

“잘 지내.”

“으응?”

몸을 꿈틀거리던 문영은이 서동수를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검은 눈동자가 반들거리고 있다.

“오빠, 무슨 말야?”

“나 장기 출장을 가거든.”

문득 좌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서동수는 억눌러 참았다.

“출장 다녀와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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