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5> 1장 좌천(左遷) [5]

오늘의 쉼터 2014. 7. 25. 16:58

<5> 좌천(左遷)

 

 

 

(9) 좌천(左遷)-9 

 

 

 

 

“아빠, 회사 끝났어?”

집안으로 들어선 서동수에게 미혜가 달려와 안기면서 물었다.

“어, 그래.”

번쩍 안아든 서동수가 미혜에게 곰인형을 안겨주었다.
 
오후 5시 반, 박서현은 주방에서 이쪽에 등을 보인 채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야, 이뻐. 너무 좋아.”

곰인형을 안은 미혜가 얼굴을 활짝 펴며 웃는다.
 
이만하면 괜찮은 가정이다.
 
문득 가슴이 메면서 코끝이 시큰거렸으므로 서동수는 미혜를 내려놓고 박서현에게 다가가 섰다.
 
뒤쪽의 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박서현은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으며 몸을 돌리지 않는다.

“저기, 나 중국 칭다오로 발령이 났어.”

박서현이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가 다시 씻는다.
 
두 걸음쯤 앞에 선 박서현의 등을 향해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중간 간부들의 순환 근무라는 최고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져서 말야.
 
난 거기 공장 관리 총책임자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혼자 가야겠지?”

“…….”

“사택도 무상으로 제공되고 해외 근무 수당도 더 붙지만 말야.”

“…….”

“열흘 후에 떠나야 되기 때문에 시간도 촉박하고.
 
물론 11월 13일까지는 휴가야. 정말 난데없는 인사 발령이었지만 나 같은 경우가 많더라고.
 
그룹 전체로 100명도 넘는 것 같아.”

등만 바라보고 말하는 것에 지친 서동수가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다.
 
박서현이 몸을 돌려 서동수를 보았다. 차분한 표정이다.

“우리 헤어져.”

말투가 나가서 밥 먹자는 것과 비슷해서 충격은 3초쯤이나 지나서야 왔다.
 
그러나 눈만 껌벅이고 선 채로 박서현을 보았다.
 
그때 박서현이 똑바로 서동수를 보았다.
 
“난 그냥 미혜하고 여기 살게. 위자료로 이 집 명의는 내 앞으로 해주면 좋겠어. 해주겠지?”

“…….”

“거기 마포 스타 오피스텔 1202호 정은지를 중국으로 데려가든지.
 
어쨌든 당신은 외롭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더니 박서현이 입술 끝을 비틀면서 웃었다.

“나 치사한 여자 아닌 줄 알지? 영호 친구가 그 오피스텔 13층에 살아. 그래서 알아봐 준 거야.”

영호란 박서현의 남동생 박영호를 말한다.
 
맨날 스포츠카를 개조해서 타고 다니는 병신.
 
그 친구 되는 놈도 오피스텔에다 애인을 심어놓은 모양이다.
 
다시 박서현의 말이 이어졌다.

“소송으로 가기 전에 해결했으면 좋겠어. 미혜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나게 해줄 테니까.
 
미혜한테는 당분간 아빠가 중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해놓는 게 낫겠지?”

박서현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마침내 웃었다.
 
그러나 얼굴이 굳어져 있는 터라 일그러진 웃음이 되었다.

“아주 그냥 카운터펀치를 날려 버리는군. 역시 싸가지는 없는 여자야. 넌.”

“여유 부리고 체면 차릴 상황이 아니지 지금. 안 그래?”

한마디씩 박서현이 또박또박 묻자 서동수가 시선을 준 채로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내 스타일대로 결말을 내게 해준다면 도장을 찍지. 네 말대로 하고.”

그러고는 지그시 박서현을 보았다.

“오늘밤 나하고 마지막 섹스를 하자. 다 잊고 한판 뛰는 거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 해줄게.”
 
 
 
 
 
(10) 좌천(左遷)-10
밤 10시 반, 서동수는 문간방의 침대에 누워 박서현을 기다리고 있다.
 
미혜가 지쳐 잠들 때까지 놀아주고 났더니 온몸이 나른하고 입까지 아프다.

 

집 안은 조용하다.
 
박서현은 서동수가 미혜하고 노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박서현은 올 것이다. 섹스를 밝혀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연애기간 1년, 결혼생활 7년이니 8년을 겪은 터라 성격은 다 안다.
 
좋다. 좋게 끝내자 하는 의미로 서동수가 한판 뛰자고 한 것을 알 것이다.
 
만일 거부한다면 일이 어렵게 된다는 것도 안다.
 
더러워서 구역질이 나더라도 박서현이 에라,

 

한 번 먹어라하고 드러누울 여자라는 것도
서동수는 아는 것이다.
 
오늘 밤의 섹스는 이혼파티나 같다. 몸으로 즐길 뿐이다.
 
좋아야 몸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무엇보다도 서동수는 물론이고 박서현도 위선은 떨지 않는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박서현이 들어섰다.
 
진주색 나이트 가운을 입었고 맨발이다.
 
가운 밑에는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쳤을 것이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들어온 박서현이 침대 위에 오르더니

 

시트를 들치고 반듯이 눕는다.
 
그러나 천장을 향한 눈은 똑바로 뜨고 있다.
 
서동수는 이미 벌거벗고 있었으므로 상반신을 일으켜 박서현을 내려다보았다.

“불은 켜놓고 하지.”

“맘대로.”

즉각 대답이 나왔다. 시선이 마주쳤고 박서현이 말을 잇는다.

“그까짓 것 상관 안 해.”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가운을 젖히자 예상했던 대로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쳤다.
 
서동수는 브래지어를 풀어 던지고 팬티를 끌어내렸다.
 
박서현이 다리를 들어 팬티가 벗겨지는 것을 돕는다.
 
서동수는 무겁게 발기한 남성을 의식하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이번에는 무엇인가?

 

박서현의 몸 위로 오르면서 문득 서동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내일이면 떠나보낼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정복감을 느껴보겠다는 것인가?

 

미련 때문인가?

 

그 순간 서동수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것은 박서현이 서동수의 물건을 손으로 쥐더니 제 동굴에 붙였기 때문이다.
 
서동수는 머릿속이 불덩이가 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한몸이 되었다.
 
방 안은 눅눅하며 뜨거운 열기가 덮여지기 시작한다.
 
가쁜 숨소리와 함께 뱉어지는 탄성은 음악소리나 같다.
 
두 쌍의 팔다리가 엉켰다가 풀어졌고 두 몸이 부딪쳤다가 떨어진다.
 
비틀고 튕겨지고 꼬여졌다가 풀려나간다.
 
서동수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순간 밑에서 마음껏 탄성을 뱉은 박서현을 의식하고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그렇구나. 이런 일체감, 이런 조화, 이런 화합이 그리워서 마지막 밤을 제의했구나.
 
그렇게 느낀 순간 서동수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온몸은 땀에 배어 끈적였고 치켜뜬 두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이윽고 밝은 불빛을 받으며 박서현이 폭발했다.
 
동시에 서동수도 터지면서 박서현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박서현이 두 팔로 서동수의 머리를 감싸안더니 마음껏 탄성을 뱉는다.
 
심장박동이 크게 울리고 있다.
 
박서현의 젖가슴이 이렇게 부드러운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서동수는 박서현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낮게 신음했다.
 
이 냄새, 이 감촉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윽고 머리를 든 서동수가 박서현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박서현의 눈동자는 초점이 잡혀져 있다.
 
서동수가 가쁜 숨을 억누르며 말했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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