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서유기

<2> 1장 좌천(左遷) [2]

오늘의 쉼터 2014. 7. 25. 16:54

<2> 좌천(左遷)

 

 

(3)  좌천(左遷)-3 

 

 

오피스텔 앞에 선 서동수가 12층을 올려다보았다.
 
왼쪽에서 두 번째 창문의 불이 환했다.
 
1202호실이다.
 
한동안 창문을 올려다보던 서동수가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누른다.
 
핸드폰을 귀에 붙이자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나서 정은지가 응답했다.

“으응, 자기야?”

“응, 나야.”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대리석 기둥에 등을 붙였다.
 
이곳은 오피스텔 현관 앞쪽의 휴게실이다.
 
벤치만 여러 개 놓인 휴게실은 텅 비었고 지붕이 없는 터라
 
위쪽 오피스텔의 불빛이 내려 비치고 있다.

“너 지금 어디야?”

서동수가 그렇게 물은 이유가 있다.
 
지난달 연락도 없이 1202호실 앞까지 왔다가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
 
놀라 돌아갔기 때문이다.
 
정은지한테 월세 보증금을 내주고 매월 200만 원씩 용돈을 주는 터라
 
서동수도 오피스텔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불쑥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이 으스스하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전화로 묻는 것이다.

“으응. 나 지금 친구 집에 와 있어.”

하고 정은지의 목소리가 수화구에서 울린 순간 서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머리를 든 서동수가 1202호실을 보았다.
 
아직도 불은 환하다.

“으응, 그래? 그럼 집에는 언제 들어갈건데?”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더니 정은지가 대답했다.

“아마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그래?”

“자긴 어디야?”

“나 술 마시고 있어.”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간다며?”

“뭐, 그냥.”

“지금 12시가 다 되었어. 집에 가 자.”

 
“그래야겠다.”

그때 1202호실의 불이 꺼졌으므로 서동수는 영화가 끝난 느낌이 든다.
 
핸드폰을 접은 서동수가 기둥에 붙였던 몸을 떼면서 말했다.

“시발년, 바쁘구만.”

정은지를 만난 곳은 룸살롱이다.
 
룸살롱에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정은지에게 월세방을 얻어주고 한 달 생활비 200만 원을
 
주기로 했지만 한 달 30일을 찾아가 연속 방아를 찧는다면 그야말로 도둑놈이다.
 
정은지만한 미모에 대학 휴학생인 22세짜리 영계를 온전한 제 것으로 하려면 최소한
 
30평 전셋집에 월 1000만 원은 줘야 마땅하다.
 
그래서 한 달에 서너 번 찾아가겠다고 미리 구두계약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동수는 12시반이 되어서야 제 집으로 돌아왔다.

“자?”

응접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박서현에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딸 미혜가 자느냐고 물은 것이다.

“3차 하자는 거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온 거야.”

정은지한테 가려고 미리 박서현한테 바이어하고 3차를 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옷을 벗기 전에 안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미혜는 침대에 누워 깊게 잠이 들었다.
 
볼에 입술을 붙였다 뗀 서동수가 물끄러미 미혜를 내려다보았다.
 
여섯 살이지만 다섯 살 때부터 읽고 쓰기를 배워 지금은 동화책도 읽는다.

“미혜야. 아빠 짤렸다.”

서동수가 입술만 달삭이며 말하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미혜의 볼에 다시 한 번 입을 붙였다가 떼고 나서 방을 나왔다.
 
그러자 서동수와 엇갈려서 박서현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열쇠 채우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보니 박서현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4) 좌천(左遷)-4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위치한 동양상사 현지법인 소속의 의류 제2공장으로
 
발령이 난 것은 다음날 오전이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인사조치였는데 경영진의 심중(心中)을 그것으로도
 
읽을 수가 있었다.
 
단 하루라도 본사에 놔둘 수가 없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서동수에게는 칭다오에 의류 제2공장이란 부서가 있는지도 몰랐던 터라
 
컴퓨터 인사란에 뜬 전출 내용을 읽고 실실 웃음부터 나왔다.
 
인사발령일은 오늘자인 11월 3일. 칭다오 근무는 외국인 것을 감안하여 10일 여유를 준
 
11월 13일이다.
 
열흘 동안의 준비기간이 주어진 셈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총무부에 문의하라고 써있었으므로 구내 전화로 물었다.

“나, 이번에 칭다오로 발령받은 서동수인데요. 거기 주택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거.”

담당자인 대리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현지 총무부에 가시면 사원 임대주택을 드릴 겁니다.”

“아, 그거 돈내야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한국에서 파견 근무 형식이기 때문에 그냥….”

“공짜란 말이죠?”

“예에.”

“집이 몇평짜린데요?”

“저기 과장 직책으로 가시니깐 30평형으로다가….”

“아, 그거 괜찮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서동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사무실 안이었는데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진 느낌이 든 것이다.

“차는 안 줍니까? 승용차 말요.”

“저기, 차는 아직.”

“월급은 여기 수준으로 주는가요?”

“예에, 저기. 의류사업부 기준으로. 거기에다 현지 수당이 붙습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앞쪽에서 한준규 대리가 일어나 다가왔다.

“영업본부장이 오시랍니다.”

한준규는 오늘자로 서동수 대신 3팀장 직무대행이 되었다.
 
앞에 선 한준규의 시선이 비껴나 있었으므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얀마. 너하고도 같이 나눠 먹었다고 영업본부장한테 말해줄까?”

“정말 저도 분합니다.”

“그럼 어저께 술마실 때 나왔어야지.”

“갑자기 시골에서 친척이 오시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에게 주위의 시선이 모여졌다가 금방 비껴갔다.
 
6층 전체가 칸막이가 없는 채로 160여 명이 퍼져 앉은 터라 보려고 작정을 하면 30미터나
 
떨어진 1부에서도 다 이쪽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본 서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씨발놈들이 에이즈 환자를 보는 듯 하는구먼 그래.”

맨 왼쪽의 영업본부장실로 다가갔더니 문 옆쪽에 앉은 미스 권이 말했다.

“기다리고 계세요.”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선 서동수는 소파에 앉아있는 김대영을 보았다.
 
김대영의 표정은 가라앉아있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다.
 
“거기 앉아.”

턱으로 앞쪽 자리를 가리킨 김대영이 서동수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잇는다.

“그래. 칭다오로 가서 열심히 해. 내가 주시하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동수가 대답하자 김대영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눈빛이 차갑다.
 
서동수는 이것이 김대영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생각을 한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그동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방 >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1장 좌천(左遷) [6]  (0) 2014.07.25
<5> 1장 좌천(左遷) [5]  (0) 2014.07.25
<4> 1장 좌천(左遷) [4]  (0) 2014.07.25
<3> 1장 좌천(左遷) [3]  (0) 2014.07.25
<1> 1장 좌천(左遷) [1]  (0)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