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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요하(遼河) 17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4. 19:19

 

제13장 요하(遼河) 17

 

 

 

“하물며 이곳 요동은 한나라 때 광무제가 토평하여 다스렸던 곳으로 전에는 양평성이라 하였으니

남의 땅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데가 아니오? 어느 모로 따져보더라도 우리 황제께서 요동으로

납신 것은 그릇된 점이 한 군데도 없는 온당한 행차입니다.”

을지문덕은 양광의 서신을 받자 읽지도 아니하고 한쪽 옆으로 밀쳐놓은 뒤에 몹시 실망에 찬 얼굴로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그대는 한나라 때 광무제가 침범한 요동만 알지 그 이전의 요동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오.

그것은 우리나라 국초의 대무신왕 때 잠깐 있었던 일로, 이런 것으로 나라의 지경을 논하자면

어느 나라인들 강역으로 삼을 곳이 있겠소?

이는 비유하자면 내가 밟고 지나간 길이 모두 내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천하의 주인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바뀌었고 세상사 또한 크게 변하기를 여러 수십 번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거늘 어찌 공은 수백 년 전의 일로 오늘을 말하려 하시오?”

그리고 문덕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구를 쏘아보며 반문했다.

“방금 공이 말한 후한의 광무제로 말하자면 그 성정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기로

이미 누대에 걸쳐 조명이 자자한 사람이외다.

어찌 황제를 말한 입으로 그런 자의 일을 입에 담는단 말이오?

공도 보아하니 글줄이나 읽은 사람인 듯한데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득롱망촉(得?望蜀)의 고사를 모르지는 않을 게 아니오?”

배구가 그 말을 모를 까닭이 없었다. 좀 전까지 득색이 만면했던 배구는 과연

문덕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안색이 붉어지며 눈빛을 둘 곳도 모른 채 허둥댔다.

“무제가 농나라를 쳐서 얻은 뒤에 다시 촉(蜀) 나라를 탐했다는 말은 오죽하면

공의 나라에서조차 사람의 탐욕이 끝이 없다는 질책과 경구의 뜻으로 쓰이겠소?

공이 황제의 신하로서 광무제 때의 일로 수나라의 제업을 논하는 것은

스스로 주군을 능멸하는 것이요,

이는 반드시 충신의 언행이라 보기 어렵소.

나는 비록 나라가 다르고 섬기는 주군이 달라 지금까지 황제를 봉견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조석으로 황제를 대하는 공의 입에서 그와 같은 비유가 나오니 놀랍기 그지없구려.”

문덕이 탄식하자 변설가 배구가 황망히 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장군의 말씀이 천만 번 지당합니다.

우리 황제를 어찌 후한의 광무제 같은 이와 비교할 수 있겠소.

나는 다만 요동의 일을 말하였을 뿐 사람을 비교한 것은 아니올시다.”

문덕은 배구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분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은 나를 어찌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오년에 양량과 왕세적이 30만 군사로

요동을 침공했을 때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사람이오.

싸움은 병법과 용략과 사기로 하는 것이지 수의 많고 적음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소.

더군다나 지금 수나라 대병이 수백만에 달한다고 하니

이는 오히려 무오년의 30만보다도 상대하기가 쉬울 것 같소.

과유불급이란 말은 병가에도 있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군사로는 병법이나 용병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법이오.

수백만 대병이 하루에 먹는 양식만 해도 그 양이 대저 얼마나 되겠소?

굳이 나가서 힘들여 싸울 것 없이 안으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기만 하더라도

날짜가 흘러가면 저절로 무너지는 것이 지금 수나라의 군대가 처한 형편이 아니겠소?”

“그것은 장군이 우리나라의 사정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오!”

배구가 급히 소리쳤다.

“우리는 이미 양곡 수백만 섬을 비축하여 장차 2년 동안 군사와 군마를 배불리 먹이는 데

아무 걱정할 것이 없소!”

배구는 부러 태연한 낯으로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지만 정곡을 찌르는 문덕의 말에

마음 한구석이 뜨끔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덕이 빙긋 웃자 배구가 한술 더 떴다.

“하기야 우리는 보름 안에 압록수를 건너고 내달 중순에는 남평양의 장안성에 당도하여

죄와 공을 논할 것이므로 비축한 수백만 섬의 양곡도 실은 쓸모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자 문덕이 불현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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