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15 회
양광의 명을 받은 우문개와 하주의 5만 군사는 전날 방비가 허술한 지역에 꽂아놓은
깃대를 겨냥하여 다시금 부교를 설치한 뒤 대오를 나란히 하여 요하를 건넜다.
요동의 추범동은 적군이 이미 반이나 건너오고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는 곧 휘하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부교 주변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허락도 없이 함부로 남의 땅을 침범하는가?”
수나라 선발대와 맞닥뜨린 범동이 장광도를 비껴 든 채 마상에 앉아 큰 소리로 꾸짖었다.
수장 우문개가 보니 범동의 기상이 우뚝하고 기개가 사뭇 범상치 아니하여
필경은 을지문덕이지 싶었다.
곧 목소리를 높여 응수하기를,
“요동과 현도와 낙랑은 본래 후한의 광무제가 토벌하여 한나라의 군현으로 삼았던 곳이다.
지금 우리 황제께서는 한나라와 진나라의 법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천하의 제후와 백성들을
모두 발 아래 두셨거니와, 어찌하여 유독 너희 족속들만 복종하지 않고 불손하게도 감히
창칼을 들어 항거하는가?”
하고서,
“을지문덕은 들으라.
탁군을 출발한 황제의 군사가 무릇 수백만이다.
그대가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복종한다면 내가 나서서 황제께 천거하여
그대를 천자 나라의 장수로 삼을 것이지만 만일 불복하여 항전한다면
구족(九族)을 멸하여 후대의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그대는 제법 지략과 궁리가 있는 사람이니 내 말을 깊이 생각하여 장차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며 좋은 말로 회유하였다.
추범동이 돌연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 감히 우리 상장군의 존함을 입에 담는 것을 보니
해를 보고 짖었다는 촉나라 개의 신세는 가까스로 면한 모양이다만
아직도 그 분의 진면목을 알지는 못하는 듯하구나.
하기야 너 따위가 어찌 우리 상장군을 알겠는가?
그분은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만의 군사가 온다고 해도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분이시다!”
우문개는 비로소 그가 을지문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는 누구인가?”
“나로 말하자면 상장군께서 특별히 신임하여 요하의 방비를 맡긴 신성의 성주 추범동이다!
어찌 한 뼘의 땅인들 너희가 밟고 지나가게 하겠는가!”
범동은 말을 마치자 무섭게 장광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우문개가 급히 검을 뽑아 범동의 장광도를 막았으나 그 무게가 예상 밖이라
자칫 손에서 검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우문개의 칼은 대번에 잔등이 휘어졌다.
“네 이놈! 어디를 달아나는가?”
당황한 우문개가 말머리를 돌려 피하자 범동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하지만 우문개도 수나라에선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장수였다.
강기슭에 늘어선 부하들에게서 창 하나를 답삭 낚아채고는 급히 되돌아서서,
“내 어찌 너 따위를 겁내어 달아나겠느냐?”
하며 범동의 공격에 맞섰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말머리를 어우르며 30여 합 가량이나 치열한 공방을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수군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났다.
뒤늦게 부교를 건너온 소부감 하주가 검을 꼬나 잡고 달려오며,
“대군으로 어찌 소적을 멸하지 못하겠는가! 모두 진격하라!”
하고 소리치자 수군들이 요란하게 북을 울리며 일제히 창칼을 앞세워 진군했다.
요동의 강기슭에서는 이내 비명과 함성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고구려군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웠지만 강의 북쪽에서 꾸역꾸역 불어나는
수군의 숫자를 보자 점차 맥이 빠지고 두려운 느낌이 일었다.
아무리 눈앞의 적을 치고 무찔러도 계속해서 적군이 끝도 없이 밀고 내려오니
싸울 의욕이 급속히 사라졌다.
저대로 백만이나 되는 군사가 나타난다면 이길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아침부터 시작한 싸움은 중식 때를 훨씬 넘길 때까지 엎치락뒤치락 계속되었지만
고구려군은 시간이 갈수록 세가 밀렸다.
장광도를 휘두르며 홀로 종횡무진 적진을 유린하던 추범동도 고함을 지르느라
목이 쉬고 결국에는 기운도 빠졌다.
그는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10리를 밀려 내려오자
그제야 비로소 문덕의 군령이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아, 내 어찌 상장군의 영을 따르지 않았더란 말인가!”
범동은 크게 탄식했지만 이미 아군은 1만여 명이나 사상자를 낸 뒤였다.
그는 급히 진중에 퇴주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군사들을 수습해 신성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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