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12 회
장수 세 사람을 모두 잃은 수군은 그야말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3만의 선발대 가운데 항복한 2백여 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전사했고,
개중 몇 명이 얼음장 위를 달려가서 차가운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을 뿐이었다.
요하에서 벌어진 여수대전(麗隋大戰)의 첫 접전은 이렇듯 신성 성주 추범동이 이끄는
고구려군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요서의 양광은 요하를 건너기도 전에 3만에 달하는 군사를 잃자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했다.
첫 교전에서 패한 대군의 사기도 사기지만 특히 이들 3만은 수나라 군대 중에서도
용졸과 맹부들로만 이뤄진 정병들이어서 타격은 더욱 심했다.
“내 기필코 요동의 오랑캐들을 토벌하여 그 왕이란 것의 뇌와 창자를 씹어먹으리라!”
그는 공부상서 우문개에게 흘러온 배다리를 당장 다시 놓도록 지시했다.
이때 우문개를 따라온 소부감(小府監) 하주가 양광을 만류하며,
“부교가 쉽게 떠내려 온 것은 다리의 끝이 건너편의 뭍에 닿지 않고
얼음 위에 간신히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교의 길이가 짧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강물이 녹지 않았기 때문이요,
따라서 다시 다리를 놓는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볕이 살아나고 기후가 따뜻하여 만물이 소생하고 있사오니
그동안 배를 만들며 언 강물이 모두 녹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고, 우문개 역시 같은 말로 거듭 간하므로 양광은 심히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휘하의 신하 가운데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형부상서 위문승(衛文昇)을 불렀다.
수나라 조정에서 지용을 고루 갖춘 최고의 장수는 단연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이었다.
하지만 우문술은 문제 양견(楊堅)이 누구보다 아끼던 신하이기도 하여 양광으로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하면 형부상서 위문승이나 우익위대장군 우중문(于仲文)은 양광 자신이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속엣말을 나눠오던 오직 자신만의 충직한 신하였다.
“위공의 뜻은 어떠한가?”
양광이 묻자 위문승은 별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신의 생각 또한 하주나 우문개와 비슷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뒤로 해만 지면 강 건너편에 횃불이 열을 지어
밤새껏 오락가락하는 것이 반드시 무슨 계책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섣불리 군사를 내기보다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적의 동태를 완전히 파악한 후에
대책을 세워 강을 건너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양광 역시 밤이 되면 현란하게 움직이는 요동의 불빛을 수상히 여기던 터였다.
“대체 요동을 지키는 적장은 누구이며 그는 어떤 자라고 하던가?”
“신이 듣기로는 을지문덕이라고 합니다.”
“을지문덕?”
양광은 눈을 휘둥그래 치켜떴다.
“을지문덕이라면 지난 무오년에 우리 대병의 보급로를 막아 애를 먹였다던
바로 그 젊은 장수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위문승이 허리를 굽혀 공손히 대답했다.
“신도 을지문덕과는 싸워본 바가 없어 그의 무예와 지략은 알 길이 없으나
무오년에 살아 돌아온 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그는 늘 엉덩이만 흰 검은 말을 타고
무인지경 전장을 누비는데, 대적하여 살아남은 장수가 아무도 없을 뿐더러 3합 이상 겨뤄본
이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때 양량(楊諒)은 패수에서 을지문덕의 이름만 듣고도 중군에 급히 퇴각을 명하였고,
북살수에서는 검은 말만 보면 허겁지겁 달아났다고 하니 가히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지 싶습니다.
신이 보기에 30만 대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과 수백 기로 우리 진중에 깊숙이 들어와
장졸을 다 같이 불안에 떨게 하였으니 제법 신출귀몰한 구석이 있는 자가 틀림없습니다.”
양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을지문덕이라…… 잡석에도 더러 옥돌이 섞인다더니
소추의 무리 가운데도 그런 자가 있구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소부감 하주를 불렀다.
“너는 떠내려간 부교를 상류로 끌어올리고 얼음이 녹을 것에 대비해 끝을 길게 잇도록 하라.”
하주가 복명하고 물러나자 양광은 제장들을 불러모으고 명령을 고쳐 내렸다.
“그대들은 전열을 새로 정비하고 짐의 지시를 기다려라!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짐은 저들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나서 충분한 계책을 세워 비로소 요수를 건널 것이니라!”
하주는 공부에 배속된 역부들을 동원하여 이틀 만에 부교를 완성하고 기다렸으나
양광은 한동안 군사를 내지 않고 강가에 머물며 요동의 정세를 눈여겨 관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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