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13장 요하(遼河) 1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4. 18:06

 

제13장 요하(遼河) 13

 

 

그러구러 날짜는 흘러 3월 초순이 되었다.

더러 살을 에는 듯한 차고 매서운 날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북방 동토(凍土)에도

봄은 찾아들어 낮이면 볕이 따사롭고 땅에서는 파릇파릇 새싹이 움텄다.

강물은 주야로 해빙과 결빙을 거듭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두께가 얇아지면서

양지에서는 얼음 조각들이 맥없이 부유하기도 했다.

지면이 열을 받자 두껍게 얼어붙었던 강가의 얼음장들이 오히려 더 빨리 녹아 허물어졌다.

회원진에 머물던 양광은 하루 날을 택하여 강변을 시찰한 뒤에 제장들을 모아놓고

그간 관찰한 요동의 동향을 물었다.

부교는 2월 하순에 이미 만들어졌으나 선뜻 군사를 내지 못한 까닭은 요동의 수상한 불빛 때문이었다.

수나라 장수들 가운데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이었다.

“신이 보기에 밤마다 건너편의 불빛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만일 그것이 무슨 계책이라면 매일 그 움직임과 명멸하는 것이 판에 박은 듯이 같을 리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가 보름간이나 꼼짝하지 않았는데도 불빛만 보일 뿐 어떤 다른 징후도 나타나지 않으니

이는 을지문덕이 우리로 하여금 수상쩍은 느낌을 갖도록 하여 시일을 끌어보자는 수작입니다.

이제 강물도 녹아 능히 부교를 설치할 만하니 당장 강을 건너는 것이 옳겠습니다.”

우문술의 말이 끝나자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이 반박하였다.

“을지문덕은 궁리가 많고 술책을 부리기 좋아하는 자입니다.

매일 밤 불빛이 원근을 달리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남북으로 오락가락하고

또 이를 자세히 보노라면 그 움직임에 제법 절도가 있고 신묘한 구석이 없지 않으니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흉악한 간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고로 대병을 움직이는 데는 새가 날아가는 것과 바람이 부는 것도 살피는 법이올시다.

어찌 조그만 일인들 소홀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헤엄에 능한 자들을 뽑아

쪽배에 태우고 야음을 틈타 요동의 정세를 살핀 후에 복병이 없는 쪽으로 부교를 설치하고

출병을 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백만 대병의 좌우 수장(首長) 격인 두 장군의 의견이 맞서자 양광은 잠시 갈등하다가

우중문의 말을 좇기로 하고,

“만사가 불여튼튼이다.

수부 몇 사람을 요동으로 보내어 복병이 있는지 살피게 하고 안전한 곳에 깃대를 꽂아

그쪽으로 부교를 설치하라.”

한 뒤 밤에 가만히 정탐꾼을 태운 밀선을 내었다.

한편 요동의 추범동은 2월 하순이 지나 강의 얼음이 녹으려 하거든 군사를 거두어

신성으로 가라는 을지문덕의 군령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며

강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추범동은 문덕의 휘하에 있을 때부터 무예가 절륜하기로 이름난 장수였다.

특히 그가 사용하는 장광도(長廣刀)는 길이가 아홉 자요,

무게가 백 근이나 나가서 보통사람은 들지도 못하는 것이었으나 범동은 이를 한 손으로

젓가락 쓰듯이 가볍게 휘둘렀으므로 대개는 그 중량 때문에라도 웬만한 창칼은 두 동강이 나곤 했다.

게다가 3만에 달하는 적군의 선발대를 물리치고 적장 세 사람의 목을 베고 나자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었다.

범동은 휘하의 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 상장군께서 나에게 요하를 맡길 적에 수군이 강을 건너오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해 막으라 하셨고, 아울러 이 싸움은 금년 여름까지 시일을 끌어야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하셨다.

다만 2월 하순에 강물이 녹기 시작하면 신성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은 그 참뜻이 우리를 염려하신 데

있지 어찌 아무 일도 없는데 요하를 포기하라는 것이겠는가?

우리가 이곳에서 하루라도 더 버틴다면 그만큼 상장군의 계략에 보탬이 되는 것이요,

양광에게는 그만큼 해를 입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우리 군사들은 부교를 건너려던 적의 선발대를 물리치고 그 사기가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백만이 한꺼번에 넘어온다고 한들 어찌 두려울 것인가?”

하고서 수군이 건너오기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야음을 틈타 요서에서 출발한 밀선이 강물을 소리 없이 저어 요동의 북편 기슭에 닿은 것은

바로 이럴 무렵이다.

밀선에 탄 사람들은 모두 헤엄에 능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건너편에 닿자 고구려 보초의 눈을 피해 부유하는 얼음을 헤집고 강변을 돌아다니며

요동의 정세를 염탐하였다.

고구려 초병들은 횃불을 밝힌 채 강변을 지키고 있었지만 날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뿐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자 조금씩 경계심이 무뎌져서 그 기세가 처음과 같지 않았다.

밤의 한기를 눅이려고 어유(魚油)로 밝힌 횃불을 쬐며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더러는 술병을 숨겨와서 나눠 마시며 어서 신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추범동을 원망하기도 했다.

수나라 염탐꾼들이 이들의 눈을 피해 부교를 대기 좋은 장소에 깃대를 꽂기란

진땅에 말뚝을 박기보다 손쉬운 노릇이었다.

그리고는 도로 밀선을 소리 없이 저어 요서로 건너가서 양광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낱낱이 아뢰었다.

양광은 크게 기뻐하며 이튿날 날이 밝자

우문개와 하주로 하여금 당장 부교를 설치토록 하고 이들에게 각기 5만의 군사를 주어

요동의 길을 열도록 했다.

아울러 장수들을 불러 모으고 노하와 회원 양진의 군사들을 모두 동원하라는 영을 내렸다.

“요동은 지세가 험준하고 성곽이 많아 단숨에 지나치기 어려운 땅이다!

지금부터 양진의 군사를 아홉 갈래로 나누어 각기 길을 정하여 줄 터인즉,

제장들은 모든 군사들에게 사람과 말이 백일 동안 먹을 양식을 공평히 나눠주고,

각군마다 방패며 갑옷, 길고 짧은 창과 모, 몸을 데울 천과 전쟁에 사용할 기재들과

진을 칠 수 있는 장막 등속을 골고루 배당하여 한 사람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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